■ 보학 1744

권국재(權菊齊)의 만사(挽詞) - 이제현

익재난고 제4권 ■ 문정공(文正公) 권 국재(權菊齊)의 만사(挽詞)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청화한 관직 거쳐 상태에 이르니 / 揚歷淸華到上台 임금은 오로지 동량같이 여기네 / 君王獨倚棟樑材 시서는 집에 가득해도 번소 같은 첩이 없고 / 詩書滿屋無樊素 잠리가 많은 중에 노래 같은 자손이 있네 / 簪履盈門有老箂 천세의 학은 삼교의 달에 돌아갔고 / 千歲鶴歸三嶠月 구연의 용이 오경의 우뢰(雨雷)에 변했네 / 九淵龍化五更雷 재주 없어 높은 덕을 명할 수 없고 / 才疏未足銘淸德 옥경대 옛 생각에 눈물만 뿌리네 / 淚酒當年玉鏡臺 평생에 덕망과 지위를 겸전하였고 / 平生德爵已雙全 수명은 곽분양(郭汾陽)보다 일 년이 더하네 / 壽比汾陽更一年 좌망이지 질병은 아니라 여겼는데 / 將謂坐忘非示病 시해하여 도선할 줄 어이..

익재선생 촉직시(益齋先生 促織詩)/이제현

■ 익재선생 촉직시(益齋先生促織詩 : 귀뚜라미) ↑서예가 이진우(李眞雨)/1982년 작 - 필자소장품 ■ 촉직(促織 : 귀뚜라미) 李齊賢 :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베 짜라 재촉하고 또 베 짜라고 재촉하는데 / 促織復促織(촉직복촉직) 슬픈 울음 왜 그리 딱해 보이나 / 哀鳴何惻惻(애명하측측) 밤새도록 베 짜는 소리 찰칵거렸어도 / 終夕弄機杼(종석롱기저) 아침에 보면 한 치의 베도 없네 / 平明無寸縷(평명무촌루) 홀어미 이 소리 듣고 눈물이 샘솟듯 하고 / 嫠婦才聞淚似泉(이부재문누사천) 출정한 군사들도 한 번 들으면 얼굴에 주름살 낀다오 / 征夫一聽凋朱顔(정부일청주주안) 봄바람 따뜻할 때 꽃은 열매를 맺고 / 春風融暖花着子(춘풍융난화착자) 여름 날씨 길 때는 제비도 집을 짓는데 /..

전병순(田秉淳)과 부계정사(扶溪精舍)

부계정사(扶溪精舍)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오늘날 이따금씩 수재가 나면 상부전의 마을 회관과 함께 이 곳도 조난대피소로 지정 운영되고 있다. ↑1987년 부계정사(扶溪精舍) 입구에 세운 부계(扶溪) 전병순(田秉淳)선생의 신도비(神道碑)이다. ■전병순(田秉淳) 1816년(순조 16)~1890년(고종 27)의 조선후기의 재야학자(在野學者)로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 겸와(謙窩), 전석채(田錫采)의 아들로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그는 동생 전시순(田蓍淳)과 함께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 전우(田愚) 등과 교유하였으며, 매문오현(梅門五賢)으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평생 동안 경남 함양의 부계정사(扶溪精舍)에서 강학(講學)하며 사도(斯道)를 수호하는데 기여한 ..

우부대언(右副代言) 이담(李擔)의 졸기/이제현의 증손

국역조선왕조실록 >태종 5년 을유(1405년, 영락 3) >4월23일 (무자) > ■ 우부대언 이담의 졸기/이제현의 증손 미친개에 물려죽다. 우부대언(右副代言) 이담(李擔)이 그의 집 미친개에게 물리어 죽었다. 부의(賻儀)로 종이 1백권, 쌀· 콩 아울러 30석, 그리고 관곽(棺槨)을 내려 주고, 사람을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담(擔)은 고려(高麗) 문하 시중(門下侍中) 제현(齊賢)의 증손(曾孫)이다. 계유년 을과(乙科)에 세째로 과거에 올라, 글씨를 잘 쓰는 까닭으로 항상 상서사(尙書司) 벼슬을 맡고, 좋은 요직(要職)을 갖추 지내었다. 아들이 하나이니 이안경(李安敬)이다. [자료 : 조선왕조실록] 【원전】 1 집 325 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중국의 이씨연원과 발전.

■ 중국의 이씨연원과 발전(中國의李氏淵源 發展) ◎이씨의 연원에 관한 몇 가지 학설. 1. 영성(嬴姓)에서 기원했다는 설이다. 요(堯)임금 때 황도[臯陶 : 일명-구요(咎繇)]가 일찍이 대리大理(士라고도 함)라는 관직을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백익 [伯益(일명-大費)]이 영성을 사성 받았다. 그 후 자손들이 우(虞), 하(夏), 商(상), 三代에 걸쳐 대리라는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그 자손들의 당시의 풍습에 따라 관직으로 성씨를 삼아서 이씨(理氏)라 하였다. 理氏를 李氏로 바꾼 사람에 관해서는 이이정(李利貞)이라는 설과 이귀(李耳)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이정(李利貞)이 은나라 말기에 紂王의 폭정을 피하여 어머니 계화씨(契和氏)와 함께 伊侯之墟(지금의 하남성 ..

북한의 국보 제21호부터 제41호까지

북한의 국보(제21호 부터~제41호 까지) ↑제21호 ~ 박천(博川) 심원사 보광전(心源寺普光殿) 평안북도 박천읍(博川邑)에서 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심원산(봉린산)의 제일 봉우리를 배경으로 하고, 그 동서 양쪽에 발양산과 부흥산이 둘러선 아늑한 곳에 박천 심원사가 자리잡고 있다. 심원사(心源寺)에는 중심건물인 보광전과 전등루, 향로각 등이 관리, 보존되고 있는데 보광전은 막돌로 면을 맞추어 쌓은 기단위에 정면 3간(10.85m), 측면 2간(7.2m)으로 세운 합각집으로 9세기에 처음 지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368년에 고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고려말기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귀중한 건물로서 우리나라 중세건축술 발전의 한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제22호 ~ 묘향산의 보현사..

함광헌고(含光軒稿) - 이미(李瀰)의 문집

■ 함광헌고(含光軒稿) 조선 후기의 문인 이미(李瀰)의 문집. 8권 5책. 필사본. 저자 생전의 필사로 보인다. 서와 발이 없어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다. 《함광헌고》 권1·2는 외종제 이중호(李仲浩)의 시 700여 수, 권3∼8은 시 1,250여 수, 소차(疏箚) 16편, 서(書) 5편, 상량문 1편, 설(說) 1편, 전(傳) 2편, 교서 6편, 서(序) 8편, 제문 6편, 묘지 2편, 비명 2편, 애사 2편, 발(跋) 1편, 치제문 2편, 시 300여 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함광헌고》의 시 가운데에 〈대명구궁인인 大明舊宮人引〉·〈등석사 燈夕詞〉·〈미인사 美人詞〉·〈잠부사 蠶婦詞〉·〈규원 閨怨〉·〈영미인창 詠美人牕〉 등의 여러 작품은 적절한 비유와 함축이 돋보이며 서정성이 짙다. 〈실세탄 失勢歎〉..

탁계집(濯溪集)-金相進(朝鮮)

■ 탁계집(濯溪集)/金相進(朝鮮) 著 간행년대: 1828년(순조28) 金相進(1736·1811)의 詩文集으로 1828년(純祖 28) 손자 直信이 저자의 從弟 相韶와 門人 李元肅이 모아놓은 유고를 발간한 것이다. 그의 자는 士達, 호는 濯溪, 본관은 金海. 報恩 濯谷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濯溪라 號하였다. 愼窩 洪命元에게 受學하였으며 默窩 李徵麟의 제자인 洪光一· 李晦根과 더불어 童年 英才로 불리었다. 일찌기 生員試 初試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山溪間에 茅屋을 지어놓고 農桑과 독서에 매진하여 ≪朱子大全≫ ≪朱子語類≫를 깊이 연구하였다. 1791년에는 땅을 사서 義田宅으로 하고 門約宗盟 家塾節目을 만들어 宗人들에게 가르치며, 朱子의 家政, 家訓, 家居要言 등도 反覆 論諭하였다. 평..

삼부팔모설(三父八母說) - 성해응(成海應) 著

三父八母說 余甞疑三父八母之說難解。夫一繼父而析而爲三。曰繼父同居也。曰始同居今不同居也。曰原不同居也。周公制禮。爲繼父同居者服齊衰不杖期者。所以待天下之鮮民也。然其始同居。今不同居者。以其恩義之殺也。服齊衰三月。至若原不同居者。恩義不相接。故無服。此視之路人也。朱子家禮何爲不早分別。而渾列於本宗五服圖之下哉。夫旣原不同居而無服則列之有服。不已贅乎。徐乾學曰三父八母之說。出於元典章圖。苟然則朱子家禮。安得預先載之。信齋楊氏又不可得而爲圖也。楊氏有儀禮圖。具載本宗外族母黨妻黨及天子諸侯服圖。後人妄以爲儀禮有繼父服及乳母之屬皆當服。故薈萃爲一篇曰三父八母。以著儀禮圖之所未及者。又有妄人混置於家禮利本者無疑也。皇朝會典削其原不同居之服。易之以從繼母嫁。儀禮杖期之篇。固有父卒繼母嫁從爲服之文。盖所服者繼母也。典章圖改云繼母所嫁夫與同居繼父不同居繼父並列焉。大明律刪去夫字則得矣。而圖則自如也。又..

이목구심서 3(耳目口心書三)

청장관전서 제50권 ■ 이목구심서 3(耳目口心書三) 사람이 재리(財利)에 급급해하는 것은 자신의 성명(性命)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용렬한 사람은 도리어 성명을 가볍게 여기니 또한 어리석지 않은가. 우리 집이 삼포(三浦)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허리에 돈 10민(緡)을 차고서 얼음이 풀리려는 곳을 건너다가 미처 반도 건너지 못해서 드디어 빠지고 말아 그의 상반신이 얼음 위에 걸렸다. 마침 강가에 있던 사람이 급히 외치기를, “당신 허리에 찬 돈을 풀어 버리면 살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며 그 말을 듣기는커녕 두 손으로 돈을 움켜쥐고 잃어버릴 것만을 걱정하다가 그대로 빠지고 말았다.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절로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은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