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172

낙상지(駱尙志)-명나라의 장수

작성일 :2020. 7. 25. 22:40 ■ 낙상지(駱尙志)-명나라의 장수 낙상지(駱尙志)는 절강성 여요「余姚/오늘날 위요시余姚市)」출신으로 당나라 때 초당 4걸로 유명한 낙빈왕(駱賓王)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 이여송의 좌참장(左參將이)으로 조선에 왔다. 그는 이성량(李成梁, 1526년~1615년, 명나라 후기의 무관/고려 전객부령 이천년의 6대손)의 집안을 섬겼고 어려서부터 용력이 대단했고 성실했으며 완력이 대단하여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천근이나 되는 바위를 집어 올려 군대 내에서도 낙상지 대신 낙천근(駱千斤)이라고 불렀다. 뛰어난 검술은 혼자서도 7~8명은 거뜬히 상대했다. 군관이 되었지만 그는 무과 출신도 아니고 군벌가문도 아니며 연납(捐納: 돈을 내고 벼슬을 삼)으로 군관이 된 사..

무오사화(戊午史禍)의 전말 - 1498년(연산군 4)

작성일 : 2016. 12. 31 무오사화의 전말은 당대를 살았던 학자들의 문헌에서 다수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본 자료는 탁영 김일손선생 문집의 부록에 수록된 자료입니다. ■ 무오사화(戊午史禍)의 전말 1498년(연산군 4) 탁영 김일손선생의 문집원본에는 이란 제목 하에 유자광 등이 날조한 내용과 연산군(燕山君)이 내린 교지 두 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김종직 일당을 대역무도 죄로 처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독자의 혼란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이를 삭제하고《자계서원지(紫溪書院誌)》에 수록한 로 교체하였다. [1]이극돈(李克墩)은 일찍이 선생께서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으로 있을 때 엄중한 탄핵을 받은 바 있고, 《성종 실록(成宗實錄)》을 편수할 때 당상관이 되어 ..

역사란 무엇인가?

작성일 : 2013. 03. 13 ■ 역사란 무엇인가? [저자] 정기문 지음 [출판사] 민음인 | 2010-11-12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다!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근본적인 물음... ------------------------------------------------------------------------------------------------------------------ 역사를 영어로 '히스토리(history)'라고 하는데,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로 '히스토리아'는 '조사하여 알아낸 것'을 뜻한다. '역사의 아버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 책 이름을 라고 ..

철종(哲宗)

작성일 : 2020. 10. 09. 22:13 ▲철종 영정ⓒ 利用者:Eggmoon | CC BY-SA ■ 제25대 철종(哲宗) ◈생년 : 1831년(순조 31) ◈졸년 : 1863년(철종 14) 12월 8일 ◈본명 : 이변(李昪), 이원범(李元範) ◈본관 : 전주(全州) [목차]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 강화도령 ◈아저씨가 조카를 잇는다. ◈절정에 달한 삼정의 문란과 민란의 확산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다. ◈철종의 가게도 -------------------------------------------------------------------------------------------------------------------------------------- 아무런 준비 없이 ..

단종(端宗)의 비운(悲運)

작성일 : 2016. 09. 11. ▲경복궁 근정전의 천청 문양 조선의 6대 왕 단종 대왕(1441~1457) 이홍위는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 임금이다.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이라 말한다. 할아버지인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은 단종대왕이 10살 되던 해에 승하하였다. 할머니인 세종대왕의 왕비 소현왕후는 단종대왕이 6살 되던 해에 승하하였다. 아버지인 조선의 5대 왕 문종대왕은 단종대왕이 12살에 되던 해에 승하하였다. 어머니인 현덕왕후(추존)는 단종대왕을 낳고 돌아가셨다. 단종은 후궁들의 손에 의해 커왔다. 조선의 6대 왕으로 등극한 단종대왕의 옆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어린 왕 단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해..

숙종(肅宗)과 갈처사(葛處士)

작성일 : 2021. 5. 3. 01:08 ■숙종(肅宗)과 갈처사(葛處士) 조선(朝鮮)의 제19代 국왕 숙종(肅宗, 1661년 9월 8일 ~ 1720년 7월 13일/제위 1674,~1720) 임금의 성은 이(李)요, 휘는 순(焞)이고, 본관은 전주(全州)로. 자(字)는 명보(明普) 이다. 그는 현종의 외아들로 모후는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74년 8월 23일 13세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해, 그때까지 가장 긴 기간인 46년 동안 재위한 끝에 1720년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다. 명릉(明陵.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소재)에 ..

임진왜란의 안시성 전투 - 이정암

작성일 : 2021. 8.. 17. 02:04 훗날 광해군은 연안성 전투를 임진왜란사의 ‘안시성전투’라고 표현하였는데, 연안성 전투에서의 승리한 사람은 의병장 이정암(1541~1600)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문무관료들이 공신을 책정하였는데, 선조와 함께 도망다녔던 신하들을 높여서 왕을 호위한 ‘호성공신’으로 86명을 책정하였고, 전쟁을 수행했던 영웅들을 ‘선무공신’으로 18명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선무공신에 ‘박진’, ‘황진’, ‘정기룡’ 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선무 1등공신은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원균(?)이었다. 2등공신에 진주대첩의 ‘김시민’, 그리고 전라우수영으로 이순신과 함께 많은 공을 세운 ‘이억기’, 그리고 연안성 전투의 ‘이정암’이 선정되었다. 이정암은 의병..

3번의 경목(驚目)

작성일 : 2022. 6. 28. 19:44 3번의 경목(驚目) 조선(朝鮮)의 백세지사(百世之師)요 동방(東邦)에 부자(夫子)이신 퇴계(退溪)선생께서 종명(終命) 하셔서니 조선 팔도(八道) 선비들이 상문(喪門)차 운집(雲集)하였다. 대 선생(大 先生)이 돌아 가셔서니 상례(喪禮) 절차에 따라 개 제주(改 題主)를 논의(論議)한다. 이것이 전통 유교(儒敎)의 법통(法統)인 것이다. 이 자리에는 나의 14대조 할아버지 탁계(濯溪)선생도 동참 하셔서니 전씨(全氏) 문중의 대표이시다. 퇴계선생의 제주(題主)를 선생으로 결정 하고 신주(神主)에 글을 쓰야하는데 많은 선비들이 갑론을박(甲論乙駁) 논의결과 어느 한 선비가 발탁(拔擢)되었다. 발탁된 이선비는 붓을잡고 온정성을 다하여 글자를 쓰는순간 주위의 많은 선비들..

정조의 어진은 정조가 아니다.

작성일 : 2015. 03. 16 선원보략(璿源譜略)에 수록된 정조의 어진 1927년 간행된 열성어진(列聖御眞)에 수록된 정조의 어진. 네모난 입과 각진 턱이 묘사된 기록과 어느정도 일치한 모습이다. 문무를 겸비해야 진정한 사대부라고 신하들을 갈궜던 정조는 신궁으로 50발을 쏘면 49발을 맞췄다고 하는데 마지막 1발은맞추지 않는게 관례인걸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신궁이다. ■ 정조의 어진은 정조가 아니다. 우당 이길범(1928년 9월 20일생/경기 화성 양감면 출신) 화백이 1989년에 제작한 정조의 표준 어진 상상도(想像圖) 우당 이길범 화백이 1989년에 그린 구군복(具軍服)을 입은 정조의 모습 당신이 알고 있는 조선 제22대왕 정조(正祖)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아마도 위의 좌측 모습이거나... 또는 ..

恨맺힌 반민(叛民)들 두 왕자와 대신들 잡아 적에 넘겨

恨맺힌 반민(叛民)들 두 왕자와 대신들 잡아 적에 넘겨 조선왕조에 반기를 들다. 일본 침공군 가운데 조선영토 북쪽 끝까지 가장 깊숙이 진격을 했고 가장 용맹했던게 가등청정(加藤淸正)의 2번대였다. 6월 17일 함경도 안변부(安邊府)를 떠난 가등청정은 가든 곳마다 성이 텅 비어있어 피흘리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여 함흥에 들어가 그곳에서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두왕자가 회령(會寧) 방면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왕자들을 뒤쫓았다. 함경도와 평안도 등 이른바 서북지방은 조선왕조 이래의 지역차별로 불만이 높았다. 함흥출신인 태조 이성계는 서북지방 무장들의 도움으로 고려의 王씨로부터 왕권을 빼앗아 李씨 왕조를 열었으나 개국후 "서북지방 사람들을 높이 쓰지 말라"고 후손들에 명했으며 세조때 일어난 이시애(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