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쌍죽재기(雙竹齋記)

출전>>두암집 쌍죽재기(雙竹齋記) 두암(斗庵) 김약련(金若鍊) [생졸년] 1730(연조 6)~1802(순조 2) 계축년 가을에 문중 사람인 김사묵(金士默)이 개성에서 두암(斗庵)으로 나를 찾아왔다. 서로 악수를 하고 친척간의 우의를 표하였다.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제 집 동쪽은 선죽교(善竹橋)와 가깝고, 서쪽은 죽림당(竹林堂)과 가깝습니다." 아! 포은 정몽주 선생의 순절 사적과 익재 이제현의 전장이 고을의 좌우에 있어서, 사람들이 포은· 익재(益齋) 선생을 함께 추모하고, 존경하고 있다. "당신은 무얼 하시면서 사시고 계십니까?" "저의 집은 가난합니다. 채소를 가꾸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분이 생기면 여종을 시켜 개성 성중(城中)에 가서 팔게 합니다. 성중은 저의 집에서도 가깝습니다. 또 성..

청주한씨 시조 한란선생 묘

■한란선생묘소(韓蘭先生墓所) 및 신도비(충북 기념물 72호) ▲한란선생 묘역 전경 고려의 개국공신인 태위(太尉) 한란(韓蘭, 853~916) 공을 안장한 묘소와 그의 위업을 기리는 신도 비이다. 원래의 묘소는 조선 효종(孝宗) 10년(1659)에 노봉(盧峯)에 의해 파손되었으며, 후손들이 숙종(肅宗) 16년(1690)에 봉분을 복원하였다고 전해진다. ▲한란이 태조 왕건에게 식수를 제공했다는 방정(方井) ▲방정 앞에서 바라 본 묘역(봉우리 안쪽 끝) 입구 전경 ▲한란선생 영정이 모셔진 사당 입구 삼문 모습 ▲사당 외부좌측에 위치한 최근에 조성된 비석들 묘소는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시대의 묘비와 상석 등이 현존하고, 효종때의 문인석과 용마석이 보존 되어 있다. 묘소 앞의 신도비는 후손인 한익모(韓..

조문할때 헌작하는 일은~~~

■ 조문하는 사람이 헌작하는 일은 자기가 술을 가지고 갔을 경우에 한해서 합니다. 문 : 조상(弔喪)할 때 분향(향을 살으는것)과 헌작(술을 올리는것)은 누구나 다 하는지 특정 관계자만 하는지 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답 : 고례(古禮)에 의한 조문(弔問) 법은 이성(異性)의 죽음에는 동성(同性) 상주(喪主)에게만 문상(問喪)하 고 동성(同性)의 죽음에는 죽은이에게 조상(弔喪)하고 동성(同性) 상주에게 문상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죽은이가 남녀(男女) 누구이던 영좌 앞에서 분향하고 상주에게도 인사 합니다. 헌작(獻酌)이란? 영좌에 술을 올리는 것인데 조문하는 사람이 헌작하는 일은 자기가 술을 가지고 갔을 경우에 한합니다.

양력제일(祭日). 간지(干支) 안쓰니까 날자대로

양력제일(祭日). 간지(干支) 안쓰니까 날자대로 [문] : 기제사를 양력으로 지낼 때 20일 오후 11시50분에 사망했으면 20일에 지냅니까? 21일에 지냅니까? [답] : 시각(時刻)을 간지(干支)로 말할 때는 밤 11시가 넘어면 다음날의 자시(子時)가 되니까 그런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 니다. 양력으로 기제사를 지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은 음력보다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음력은 일 년에 11일씩이나 틀려서 사망한 해와 제사 지내는 해가 절후가 틀리기까지 해서 불합리 하고 년 월 일 을 숫자로 쓸 때는 간지(干支)를 안 써도 되는 것임은 이미 언급한바 있습니다. 기왕에 합리적인 태양력(太陽歷)으로 기제사를 지내려면 간지(干支)를 쓸 필요도 없고 밤 12시를 변경 점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20일에 ..

崔直提學歸田詩卷跋 - 平陽後人朴彭年

■최덕지(崔德之) 최 직제학은 최덕지(崔德之,1384년(우왕 10)~1455년(세조 1)를 말하는 것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존양(存養). 최용봉(崔龍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참의 최담(崔霮)이며,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이다. ------------------------------------------------------------------------------------------------------------------------------------- 朴先生遺稿(박팽년) ■ 최 직제학이 전원으로 돌아갈 때 지어 준 시권 발문(詩卷跋文) 사람은 누구나 공명과 부귀를 얻으려고 하는것이 인지상정 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

구강서원 강당기(龜岡書院 講堂記)

■ 구강서원 강당기(龜岡書院 講堂記) 우리나라는 해 돋는데, 가까운 지역이다. 수. 화. 목. 금. 토(水火木金土)의 오행(五行)에 있어서는 목(木)에 속하는 땅이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四季節)에 있어서는 춘(春)에 속하는 땅이니, 문명(文明)한 운수가 사방(四方)의 다른 지역(地域) 보다도 앞설 것인데, 오히려 중국(中國) 보다도 뒤 떨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아마도 지역이 좁고 기운이 맞지 않아서, 삼광(日. 月. 星辰)과 오악(五嶽 : 한국의 이름난 다섯 산을 뜻 한다) 정기(精氣)가 흩어 저 모이지 않는 까닭이 아닌가 한다. 중국으로 말하면, 오제(五帝), 삼왕(三王)으로 부터, 진(秦), 한(漢). 진(晉). 수(隋). 당(唐). 송(宋)을 지나는 동안에 문화와 물질이 거의 전통..

신유한(申維翰)의 과거(科擧)

■ 신유한(申維翰) [생몰년] 1681년(숙종 7)∼1752년(영조 28). ● 문과시(文科試) 문과 : 숙종(肅宗) 39년(1713) 계사(癸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35위(45/51) [인물요약] ◇자 :주백(周伯) ◇호 : 청천(靑泉) ◇생년 : 신유(辛酉) 1681년(숙종 7) ◇졸년 : 임신(壬申) 1752년(영조 28) ◇본관 : 영해(寧海)/오늘날 경북 영덕군의 옛 지명. ◇거주지 : 고령(高靈)/출생지 : 밀양(密陽). [타과] ◇진사시 : 숙종(肅宗) 31년(1705) 을유(乙酉) 증광시(增廣試) 진사 2등(二等) 18위/25歲 입격 [이력사항] ◇전력 : 진사(進士) ◇관직 : 첨정(僉正) ◇부모구존 : 구경하(具慶下 : 부모가 모두 살아계심) [기족사힝] [부] ◇성명 : 신..

거칠부가 경주이씨인 이유

거칠부가 경주이씨인 이유 《북한산 진흥왕순수비》.《창령비(昌寧碑)》.《마운령비(磨雲嶺碑)》에 기록된 거칠부의 기록 훼(喙)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 사훼(沙喙) 거사부지(居社夫智) 이간(伊干) 사훼(沙喙) 심표부지(心表夫智) 급척간(及尺干) 사훼부(沙喙部) 령력지(령力智) 간( 干) 촌주(村主) 마질지(麻叱智) 술간(述干) 본부(本部) 가량지(加良知) 소사(小舍) 이상 표시한 것처럼 성(姓)은 없고 우리말로 된 이름 뒤에 그 사람의 본(本)이라 할 수 있는 소속부명 또는 촌명을 썼는데, 훼부(喙部)는 량부(梁部) 즉,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이요, 사훼부(沙喙部)는 급량부(及梁部) 즉,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요. 본부(本部)는 본피부(本彼部) 즉,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최해 묘지명(崔瀣 墓誌銘)

『가정집 제11권 / 묘지명(墓誌銘) 』 『동문선(東文選 卷124)』 ■ 최해 묘지명(崔瀣 墓誌銘) 1340년(충혜왕 복위 1년) 이곡 (李穀) 찬(撰) 대원 고장사랑 요양로개주판관 고려국 정순대부 검교성균관대사성 예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최군묘지 (大元 故將仕郞 遼陽路蓋州判官 高麗國 正順大夫 檢校成均館大司成 藝文館提學 同知春秋館事 崔君墓誌) 황조(皇朝)의 진사(進士) 출신으로 동방에 유명한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계림(雞林)의 최수옹(崔壽翁)이다. 처음에 개주 판관에 제수되었는데, 그 지역이 외지고 직무가 번잡스럽자 다섯 달 동안 있다가 병을 핑계로 동쪽으로 돌아와서는 황조에 복귀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국에서도 벼슬하기는 하였지만 재질이 기이하고 지조가 고상해서 시대에 용납되지 못하다가, 나이 54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