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그림,사진 등. 122

중국 황하강(黃河江)

강의 길이 5,464Km 중국에는 황하와 양쯔 강, 두 개의 큰 강이 있는데, 문명이 처음 싹튼 곳은 북쪽의 황하 유역(화북 지방)이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황하 유역의 기름진 황토 지대에는 한족(漢族 : 중국 민족)의 조상들이 나타나 조 · 수수 따위를 재배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개 · 돼지 같은 가축을 길렀으며, 나무와 돌로 만든 연모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칠고 투박한 회도(회색 토기)와 함께 아름다운 채도(채색 토기)도 만들어 썼다. 회도는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토기로, 그 중에는 다리가 3개 달린 ‘삼족 토기’도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자, 황하 하류 지방을 중심으로 큰 마을이 여러 곳에 생겨났다. 이들 마을은 차츰 읍(邑)이라 불리는 도시 국가..

압구정(狎鷗亭)

↑멀리 보이는 정자가 압구정(押鷗亭) 겸재 정선(鄭敾:1676~1759)의 화첩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실려 있는 그림 ‘압구정 (狎鷗亭)’. 한명회는 속세에 뜻이 없음을 표하기 위해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었으나 훗날 많은 문인 들의 조롱을 받았다. ■ 압구정동의 유래 오늘날 압구정동의 동명유래는 조선세조 때,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1415~1487)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원래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로서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근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뒤 압구정은 철종의 딸인 영혜공주와 결혼한 박영호에게 하사되었으나,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한 때 몰수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으나 언제 철거되었..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경매사상 최고액인 45억 2천만원에 낙찰된 박수근화백의 빨래터.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물감도 없고 캔버스도 없었던 한 무명 화가가 알고 지내던 미군 병사에게 일본에 갈 때마다 물감과 캔버스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화가의 사정을 딱 하게 여긴 미군 병사는 휴가로 일본에 갈 때마다 캔버스와 물감을 자기 돈으로 사다 주었다. 무명 화가는 미군 병사에게 은혜를 보답하려고 그림을 하나 그려 주었다. 미군 병사가 이 그림을 받을 때는, '저 무명 화가의 그림이 뭐 중요하겠어?' 하며 성의를 봐서 받았으나 본국에 돌아가 그냥 창고에 넣어 놓았다. 세월이 흘러 이 병사는 나이가 들어 너무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명의 화가 이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보관하고 있던 그림을 한국 시장에 내놓았..

옛 서울 모습(일제시대)

작성일 : 2010. 03. 10(수) ↑이 건물은 현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으로 1934년에 준공 되었다.지하 1층, 지상4층 연건 평 3,000여 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일제 강점기의 경성(서울) 종로2가 거리 모습 ↑조선은행(오늘날 한국은행 자리) 앞 광장 ↑경성 태평통(太平通) ↑경복궁 집옥제(集玉薺) ↑경성역(京城驛/서울역)에서 남대문방향 전경 ↑경성(서울)의 시가지 일부 모습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 일부 전경 ↑일제(日帝)가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京城東洋拓殖株式會社)를 1908년 12월 자본금 1천만 원으로 설립한 식민지경제수탈의 본거지(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이현직 신무문 편액과 선정비

■ 34世 이현직(李顯稷) [생몰년] 1797년(정조 21)∼1876(고종 13) [세계] 국당공후 문정공파 ※이현직(李顯稷)은 33世 광암공 이벽(曠庵公 李蘗/세례명: 요한세자)의 백부에게로 양자 입적했다. 17世 국당공 천(蒨)→18世 문정공 경중(敬中)→21世진사공타(佗)→23世 감정공 거(筥)→26世 지퇴당공 →27世 찰방공 이숙(李潚)→28世 묵암공 경상(慶相)→32世 동추공 부만(溥萬)→33世 격(格)→34世 계자 현직(顯稷) -------------------------------------------------------------------------------------------------------------------------------------------------------..

삼청동 도회화첩(三淸洞道會畵帖)

■삼청동 도회화첩(三淸洞道會畵帖) [요약] 1654년 음력 9월 5일(孝宗 五年) 이루어진 오늘날의 대구 경북권 생원 이상, 관직 역임자 26人의 계회 모습을 그린 계회도와 좌목으로 구성된 표제 『삼청동 도회화첩(三淸洞道會畵帖)』으로 절첩본이며 전반 2면에 古松이 둘러선 넓직한 터에 참석 인원 전체 26人과 악공, 무희, 시종, 마부 등 19人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6面에 걸쳐 26人의 직책, 성명, 字, 生年, 本貫, 居住地를 기록한 座目이 있다. 접은 상태 19.2×36 / 계회도 39×33c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