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제구의 종류(2)

작성일 : 2006. 04. 25. 06:06 ●재기(祭器) ●병풍(屛風) 화려한 채색이 된 병풍보다는 좋은 글귀가 쓰여진 병풍을 쓴다. ↑안평대군행초서신폭병풍. ⓒ국립중앙도서관(서울경제) ●돗자리 무늬가 없는 자리를 쓴다. ●교의(交椅) 신주나 지방을 모시는 자리이다. 병풍에 지방을 직접 붙일 때는 교의가 없어도 된다. ↑ⓒNaun Story ●제상(祭床) 다리가 높은 제상을 쓰거나 일반 교자상에 한지를 깔고 사용하기도 한다. ↑ⓒNaun Story ↑ⓒ청주 제례당 ↑ⓒ꽃님이 ●축판(祝板) 축문을 끼워 놓는 뚜껑이 붙은 판이다. 크기는 사방 30㎝면 적당하다. 오늘날은 결재판이나 흰 봉투로 대체 하는 것도 무방하다. ●촛대(燭臺) 2개 제상(祭床)의 초는 불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날이 밝으면 끈다. 따..

흘봉선생문집(屹峰先生文集)

작성일 : 2020. 12. 18. 11:59 ■ 흘봉선생문집(屹峰先生文集) 이빈망(李贇望,) 저 1694년(숙종 20)∼1773년(영조 49).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군겸(君兼)이고, 호(號)는 흘봉(屹奉)이다.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 출신으로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높았다. 부친은 이경배(李慶培)이고 어머니는 팔계(八溪) 정영주(鄭榮胄)의 딸이다. 처부는 벽진이씨(碧珍李氏) 이의연(李毅然)이다. 어려서 학문에 자질을 보여, 재종숙(再從叔) 모계(茅溪) 이명배(李命培: 1672(현종 13)∼1736(영조 12))에게서 수학하였는데, 모계는 『소학』이 학문하는 근본임을 그에게 가르쳤다. 이후 밀암(密庵) 이재(李栽),1657~1730)를 찾아가 뵈었다. 부모..

정운원종 공신록권(定運原從功臣錄)과 조몽길 추증 교지-내암 정인홍

정운원종 공신록권(定運原從功臣錄)과 조몽길 추증 교지 - 내암 정인홍. 정운원종공신록권(定運原從功臣錄)은 진주 단목 '단지 하협(丹池 河悏)' 종택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전 국회의원 하순봉(河舜鳳) 진양하씨 문중에서 경상대학교 문천각(文泉閣)에 기증했다. 단지 하협(丹池 河悏, 1583~1625) 묘갈명은 전(前) 정주목사 오계 조정립(梧溪 曺挺立, 1583~1660)이 1655년(효종 6)에 지었다. 오계는 '진사하공행적(進士河公行蹟)'도 지었다. 오계 조정립은 1728년(영조 4) 무신혁명 합천 주역인 조성좌(曺聖佐)의 고조부다. *이 블로그 '진주 단목, 단지 하협 묘갈명 : 오계 조정립 지음' 참조: https://blog.naver.com/antlsguraud/221479265771 진주 단목,..

개성의 옛 성균관 건물

■ 개성 성균관(開城成均館) 지금의 개성 성균관 자리에는 본래 고려 제11대왕 문종(文宗)의 별궁이 있었는데 순천관(順天館 : 외국 사신들이 들르던 숙소)·숭문관(崇文館 : 교육기관)으로 변천되어 오다가 1089년(선종 6) 국자감(國子監 : 최고 유교 교육기관)을 이곳에 옮겨왔으며, 1310년(충선왕 2) 성균관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1602년(선조 35)∼1610년(광해군 2) 사이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대성전(大成殿)과 서쪽의 재(齋)는 1602년에 짓고, 명륜당(明倫堂)과 동무(東廡)·서무(西廡)는 1605년(선조 38)에 다시 지었다. 개성 성균관은 약 1만㎡(3,030평)의 넓은 장방형 부지에 200여 칸의 건물이 들..

비에 대한 표현들 - 이순신 난중일기에서

■ 이순신 난중일기의 비에 대한 표현들. ◇비비(霏霏) : 부슬부슬 내리는 비나 눈발이 배고 가늚, 또는 비나 눈이 계속(繼續)하여 끊이지 않는 모양. ◇련우(煉雨) : 안개비 ◇세우(細雨) : 가랑비 ◇작우(作雨) : 조금 오는 비, ◇우(雨) : 적당한 비. ◇우우(雨雨) : 다소 많은 비, ◇대우(大雨) : 큰 비, ◇림우(霖雨) : 장맛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고전명구 공모전 당선작]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이롭답다고 하여 조급히 나아가서도 안되고, 위태롭다고 하여 용감하게 물러나서도 안된다. 不可以利躁進 不可以危勇退 (불가이리조진 불가이위용퇴) - 김시습『金時習, 1435년(세종 17)~1493년(성종 24)』 『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문집(梅月堂文集)」 권18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처신(處身)하는 데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중요한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두고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옛부터 처신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김시습은 고금군자은현론(古今君子隱顯論)에서 다음과 같은 지혜를 들려준다. ‘군자는 이롭답다고 하여 조급히 나아가서도 안되고 위태롭다고 하여 용감하게 물러나서도 안되며 오직 의리에..

한양 땅을 내려다보다 - 신유한

목멱산(木覓山)에 올랐다. 산의 높이는 수천 길이요, 서북쪽으로는 백악산(白岳山), 삼각산(三角山), 인왕산(仁王山)의 여러 산들이 바라보이는데 높은 산들이 모여서 하늘에 서려 서로 읍하는 듯 서로 껴안는 듯하다.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의 뻗어 나온 산기슭이 구불구불 내려가 남산과 합하였다. 산등성이를 빙 둘러서 성가퀴와 망루가 있어서 종소리와 북소리가 서로 들린다. 이 성안의 지세는, 가로 10여 리, 세로는 그 3분의 2가 된다. 이곳에 종묘사직, 궁궐, 곳집, 창고, 성균관, 정원이 다 들어서 있다. 그 외에 고관대작과 온갖 벼슬아치들의 관아이고 그 나머지는 수만 채의 가옥, 수백채의 가게, 수십 개의 저자거리이니, 이 모든 것이 또렷하게 손바닥 안에 있는 듯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옛 주나라 수..

농암 이현보 묘갈명(聾巖李賢輔墓誌銘)

聾巖先生墓誌銘 李家煥 撰 公諱賢輔。字棐中。其先永川人。自軍少尹諱軒。始寓居禮安縣。是爲高祖。曾祖義興縣監諱坡。贈兵曹參議。祖通禮門奉禮諱孝孫。贈嘉善大夫吏曹參判。皇考中訓大夫麟蹄縣監諱欽。贈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皆隱德卑官。委祉于公。妣貞夫人權氏。護軍謙之女。少養于外家金文節公。妣明習母道。配德娠賢。以成化丁亥七月卄九日。生公。是夜有神夢。告參判公曰。積善之家。必有餘慶。寤聞生小男。采其語。小名曰有慶。公少而穎發。弱冠始遊校庠。不煩提諭。日有開益。時金相銓宰宣城。大加器異。登乙卯司馬魁。擧館試。華聞彌播。戊午。登第。辛酉。選入翰苑。進言曰。載筆之任。必書君擧。請近方寸地。詳聞天語。凡時政皆直書不諱。十七年。移司書。尋爲司諫院正言。面陳輔養東宮之方及書筵官不職之事。坐失事體。流安奇驛。自戊午後。燕山滛虐日甚。動輒誅夷。朝紳縮頭。公獨抗辭奮筆。頗挺風栽。於是。追仇盡言。拘詔獄七十日。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