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조선사(朝鮮史) 63

병자호란 다시읽기(7)

작성일 : 2021. 7. 14. 18:51 병자호란이 일어나다 Ⅱ 1636년 12월10일 압록강을 건넜다. 이렇다 할 저항이 없었다. 그들은 곽산(郭山)과 정주(定州)에 사실상 무혈 입성했다. 홍타이지는 투항해 온 곽산과 정주의 군민들을 해치지 말라고 유시하는 한편, 그들의 머리를 깎아 치발(髮)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버일러 두도(杜度)에게 정예병을 뽑아 철산(鐵山)과 가도, 운종도(雲從島) 일대를 공략하라고 지시했다.15년 동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청을 배후에서 위협했던 가도의 동강진(東江鎭)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동요하는 조선 조정 청군이 이미 안주를 지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김자점의 장계가 조정에 들어온 것은 12월13일이었다. 인조는 대신들을 불러모았다. 영의정 김류는 경기 ..

병자호란 다시읽기(6)

작성일 : 2021. 7. 14. 13:37 (69) 후금 관계 파탄의 시초(Ⅱ) 용골대와 마부대 일행은 다목적 사절이었다.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사절이자, 인열왕후의 죽음에 문상하기 위한 조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선의 동참을 촉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홍타이지 명의의 국서말고도 후금의 여덟 버일러(貝勒, 만주 팔기의 우두머리)들과 몽골 출신 마흔 아홉 버일러들이 작성한 서신을 각각 1통씩 소지하고 있었다. 서신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내용을 담고 있었다. ▲ 창경궁 명정전의 모습. ●용골대 일행 명버리고 후금 선택 강요 후금의 버일러들이 보낸 서신은 먼저 몽골 각부의 버일러들이 심양에 모두 모여 홍타..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작성일 : 2019. 2. 24 ■ 중국 사신을 깨우친 이진택 ↑덕봉정사[德峯精舍/경주시 정자3길 11-6(마동 538)]는 이진택이 만년에 유식하던 장소로 원래는 경주 관광호 텔 뒤 송림가에 있었으나 1905년 그의 묘소 옆 연못가로 옮겼다. 경주시 마동소재 경북문화재자료 제313호 이진택[李鎭宅, 1738(영조 14)∼1805(순조 5)]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하며 막힘이 없었는데, 8세 때 닭싸움을 보고 “상앙의 법률로 논죄할 것 같으면, 이 닭은 당장 삶아 먹을 것을(若論商法 此.當烹食)…”이라는 글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1780년(정조 4)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성균전적·예조정랑·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헌부지평·장령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노비혁파를 주장한 상소를..

조선 역대 왕계표.

순번 왕 명 재위 연도 재위년수 혈통 관계 왕의 이름 1 태조(太朝) 1392년~1398년 6년 이자춘(子春)과 의혜왕후 영흥 최씨 2남 본명 이성계휘는 단(旦) 2 정종(定宗) 1398년~1400년 2년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2남 초명은 방과(芳果) 휘는 경(曔) 3 태종(太宗) 1400년~1418년 18년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5남 본명 방원(芳遠) 4 세종(世宗) 1418년~1450년 32년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3남. 형-양영대군, 효령대군 휘는 도(祹) 5 문종(文宗) 1450년~1452년 2년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장남 휘는 향(珦) 6 단종(端宗) 1452년~1455년 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장남 휘는 홍위(弘暐) 7 세조(世祖) 1455년~1468년 13년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전라좌수영 5관 5포(임진왜란 )

전라좌수영 5관 5포(임진왜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휘하 각 군 편제(이순신 장군) 구분 지역 지휘관 관할구역(현재 지명) 5관(육지행정구역) 순천도호부 부사(종3품) 여수시, 순천시 일원 광양현 현감(종6품) 광양시 일원 낙안군 군수(종4품) 보성군 벌교읍, 순천시 낙안면 보성군 군수(종4품) 보성군 일원 흥양현 현감(종6품) 고흥군 일원, 여수시 삼산면 5포(수군행정구역) 방답진 첨사(종3품)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사도진 첨사(종3품)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여도진 만호(종4품)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녹도진 만호(종4품)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발포진 만호(종4품)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여도진 현재의 모습 임진왜란 때 수군기지(지휘관 정4품의 만호의 장수가 지휘함) ↑다리건너 쪽이 여도 진 만호 성(오..

"동래부사(東萊府使)"에 대하여

"동래부사(東萊府使)"에 대하여 □ 개요 동래부사(東萊府使)의 정식 명칭은 동래도호부사(東萊都護府使)이며 동래도호부, 즉 동래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정상의 통치를 책임지는 관원이다. 지방관원은 고을의 수령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이기 때문에 목민관(牧民官)이라 불리기도 하며, 관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통치업무를 매일 수행하였다. □ 임명과 부임 및 해임 동래도호부는 일반적인 지방의 한 고을 단위로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일본 대마도(對馬島)와 마주한 중요한 변방지역으로서 국방과 외교의 일선으로서의 위상을 지닌 고을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중요성이 감안되어 책임 관원도 보통 종3품 당하관이 임명되는 도호부사와 달리, 품계가 높은 정3품 당상관(堂上官)이 임명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원래 『경국대전(經國大典)..

역대 경주부윤 역임자

■역대 경주부윤 명부[慶州郡官案] 1392년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이후부터 1894년(고종31) 까지 502년간 경주부윤으로 부임한 관원은 총 339명이다. 官案(高麗) 金魏英 太祖八年十二月敬順王來降爲州仍賜食邑以魏英爲本州長 崔顥 靖宗時爲副留守與判官羅旨說司錄尹廉掌書記鄭公翰等刻前後漢唐書以進各賜職賞 羅旨說 判官 尹 廉 司錄 鄭公翰 掌書記 鄭克永 仁宗朝留守 蔡靖 掌書記有淸德後東京與永川作亂朝廷 選副使以單騎赴任安撫 安院 太守 林均甫(明廟) 太守 王景義 太守 鄭克開 高宗朝太守 金公守 尙書 丁希允 大判 韓福儒 司錄 王猶 尙書 李乂 大判 李櫻 司錄 金世 岑 司錄 顧俊公 尙書 申宣必 判官 李善 司錄 洪均 尙書 朴述希 大判 任溫 司錄 038 宋珣 尙書 宋文柱 大判 吳升芮 司錄 趙修 太守 崔仁蔚 大判 權永 大判 全義 尙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