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사 이구준 묘지명 병서(都事李耈俊墓誌銘 幷序) 숭정(崇禎) 임오년(1642, 인조 20) 정월 23일, 나의 작은 외숙 도사공(都事公)이 이천(利川) 풍담(楓潭)의 치재(恥齋)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부고를 받고 달려가니, 염(殮)을 하고 입관하지 않은 터라 시신에 기대어 곡을 하였다. 물러 나와 가옥을 살펴보니 누추한 좁은 집은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이고,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무릇 상구(喪具)에 관련된 것은 염습에 필요한 의물(儀物)을 비롯해 관곽(棺槨)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교하고 치밀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는 음죽군(陰竹君, 이성기(李聖基)이 월제(月製)에 부지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뒤에야 외숙의 가정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