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묘지명(墓誌銘) 76

도사 이구준 묘지명 병서(都事李耈俊墓誌銘 幷序)

■ 도사 이구준 묘지명 병서(都事李耈俊墓誌銘 幷序) 숭정(崇禎) 임오년(1642, 인조 20) 정월 23일, 나의 작은 외숙 도사공(都事公)이 이천(利川) 풍담(楓潭)의 치재(恥齋)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부고를 받고 달려가니, 염(殮)을 하고 입관하지 않은 터라 시신에 기대어 곡을 하였다. 물러 나와 가옥을 살펴보니 누추한 좁은 집은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이고,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무릇 상구(喪具)에 관련된 것은 염습에 필요한 의물(儀物)을 비롯해 관곽(棺槨)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교하고 치밀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는 음죽군(陰竹君, 이성기(李聖基)이 월제(月製)에 부지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본 뒤에야 외숙의 가정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

영창대군 묘지명병서(永昌大君墓誌銘 幷序) 

■ 영창대군 묘지명병서(永昌大君墓誌銘 幷序) 부친을 대신하여 짓다. 영창대군이 화를 당한지 11년이 지난 모월(某月) 모갑(某甲)에 예에 따라 이장을 할 때에 임금께서 대군의 행적을 가지고 나에게 명하여 묘지명을 짓게 하였다. 신(臣)은 삼가 의거하여 한두 가지를 간추려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공의 휘는 의(㼁)로, 선조(宣祖) 소경대왕(昭敬大王)의 아들이며 모친은 소성정의왕대비(昭聖貞懿王大妃) 김씨(金氏)이다. 만력(萬曆) 병오년(1606, 선조39) 모월 모갑에 정릉동(貞陵洞) 행궁 정침에서 태어났다. 공은 타고난 자질이 남달랐으며, 유모의 품안에 있으면서 매일 양전(兩殿)에게 문안을 드렸는데, 혹 중궁(中宮)에게만 문안을 드린 경우는 하루 종일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선조가 병이 들어 지팡이를 ..

길창부원군 권협 묘지명(吉昌府院君權悏墓誌銘)

■ 길창부원군 권협 묘지명(吉昌府院君權悏墓誌銘) 공은 휘는 협(悏), 자는 사성(思省), 성은 권씨(權氏)로 고려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후손이다. 증조부 권욱(權旭)은 사도시 부정으로서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고, 조부 권진(權振)은 전생서 참봉으로서 호조 참판에 추증되고, 부 권상(權常)은 지극한 행실이 있어 선조 때에 선공감 정에서 통정대부로 특진하였고, 또 수고(壽考)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뒤에 은혜를 미루어 영의정 동흥부원군(東興府院君)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羅氏)인데 어모장군(禦侮將軍) 나운걸(羅云傑)의 딸로서 정경부인(貞敬夫人)에 추봉되었다. 공은 명나라 세종황제(世宗皇帝) 가정 32년(1553, 명종 8) 5월 24일에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특이한 자질이 있어서 재..

고려 순천군 채홍철 묘지명(高麗順天君蔡洪哲墓誌銘)

[생졸년] 채홍철『蔡洪哲, 1262년(원종 3) ~ 1340년(충혜왕 1)』 유원(有元) 봉의대부(奉議大夫) 태상예의원 판관(太常禮儀院判官) 효기위(驍騎尉) 대흥현자(大興縣子) 고려(高麗) 순성보익찬화 공신(純誠輔翊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우문관대제학 영예문관사(右文館大提學領藝文館事) 순천군(順天君) 채공(蔡公)의 묘지명 李穀(이곡) 찬(撰) 지원(至元) 6년 경진년(1340, 충혜왕 복위 1) 정월 10일 계해에 대흥현자 순천군 채공이 79세의 나이로 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차 예법에 따라 장례를 지내려고 할 적에, 그의 자서(子壻)가 공의 행장을 가지고 나에게 와서 명(銘)을 청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공의 행의(行義)는 한 시대에 높고, 공의 공덕은 온 나라에 드러났다. 그러니 명을 ..

대산 이상정 묘지명 병서(大山 李象靖 墓誌銘 幷序)

[생졸년] 이상정「李象靖, 1711년(숙종 37) ~ 1781년(정조 5)」 大山先生墓誌銘 幷序 柳道源 謹撰 大山李先生以明陵辛卯正月二十九日。生于安東之蘇湖里第。十四。就學于外大父密庵先生。二十五。俱中大小科。戊午。除連原察訪。己未。棄歸。辛酉。除徽陵別撿。壬戌。陞承文正字。丁卯。除典籍。遷禮兵郞。戊辰。遭先考喪。辛未。除禮曹正郞。不赴。癸酉。除延日縣監。乙亥。罷還。壬午。除司憲府監察。至嶺下歸。辛卯。除康翎縣監。呈病于吏曹。尋爲臺章所論遞。今上卽位之元年丁酉。除司諫院正言。䟽辭尋遞。庚子二月。除兵曹佐郞。病遞。九月。陞資拜兵曹參知。屢䟽辭。不許。十二月。遞拜禮曹參議。亦䟽辭不允。辛丑三月。移拜刑曹參議。上九條䟽。八月。又上䟽遞。十月寢疾。十二月九日丁丑。易簀。明年壬寅三月。葬于府北鶴駕山巳向之原。士林會者千二百餘人。嗚呼。先生氣貌英粹。資性端愨。自在幼穉。未嘗違忤父母。..

고려국 조위 묘지(高麗國 趙瑋 墓誌) - 이곡(李穀)

고려국 중대광(重大匡) 첨의찬성사 상호군(僉議贊成事上護軍) 평양군(平壤君) 조공(趙公)의 묘지(墓誌) [생졸년] 조위『趙瑋, 1287년(충렬왕 13) ~ 1348년(충목왕 4)』 / 향년 62歲 옛날 세황『世皇, 원 세조(元世祖)』이 해내를 통일하고 나서 요황(要荒)을 회유할 적에, 우리 충헌왕『忠憲王, 고종(高宗)』이 귀부(歸附)한 것과 충경왕『忠敬王, 원종(元宗)』이 근로한 것을 가상하게 여겨, 덕을 높이고 공을 갚는 은전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황제의 딸을 충렬왕(忠烈王)에게 이강(釐降)하였으니, 그 이실(貳室)의 은혜와 삼접(三接)의 총애는 천하에 비할 곳이 없었다. 이때를 당하여 현능한 자들이 한꺼번에 나와 분주히 보익하면서 삼한(三韓)의 기업을 크게 빛냈는데, 그중에서도 정숙(貞肅) 조공이 특히..

윤행임 묘지명(吏曹判書贈領議政尹公行恁墓誌銘)

[생졸년] 윤행임『尹行恁, 1762년(영조 38)~1801년(순조 1) / 40세』 이조판서 증 영의정 윤공 행임 묘지명(吏曹判書贈領議政尹公行恁墓誌銘) 정종 문성 무열 성인 장효대왕(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 정조)께서 승하하신 이듬해 신유년(1801)에 이조판서 석재(碩齋) 윤공(尹公)이 조정에 머무르는 것이 편치 못하여 호남 관찰사로 나가게 되었다. 얼마 후 더욱 맹렬한 화를 만나 유배지 신지도(薪智島)에서 돌아가셨다. 61년이 흐른 신유년(1861)에 공의 아들인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로 치사한 봉조하공(奉朝賀公)이 흰옷과 흰띠로 처음 돌아가셨을 때와 같은 슬픔을 머금고서, 공의 언행과 조정에 벼슬하던 본말을 기록하여 나에게 묘지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나는 사양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나는 ..

좌의정 춘성부원군 남이웅(南以雄) 묘지명 병서

[생졸년] 남이웅『南以雄, 1575년(선조 8) ~ 1648년(인조 26) 좌의정 춘성부원군 남이웅(南以雄) 묘지명 병서(左議政春城府院君南公墓誌銘 幷序) - 성호 이익 좌의정 춘성부원군 남공 묘지명 병서(左議政春城府院君南公墓誌銘 幷序) 근세에 용주(龍洲) 조 선생(趙先生)만큼 인물에 대한 품평을 잘하는 이는 없다. 선생이 찬한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 남 상공(南相公)의 신도비(神道碑) 비문은 가장(家狀)에 얽매이지 않고 평소에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을 스스로 기술하여 분명하게 드러낸 실제의 자취가 마치 눈앞의 일인 듯하다. 그 글에 이르기를, “공은 미목(眉目)이 서글서글하고 정신이 겉으로 드러났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서울에서 노닐었는데 사람들이 풍진 밖의 인물이라고 하였다. 이윽고 명성에 떠밀려 ..

縣監 李恒壽 墓誌銘 幷序 - 咸平人

생졸년 : 이항수『李恒壽, 1675년(숙종 1) ~ 1736년(영조 12)』 현감 이공 묘지명 병서(縣監李公墓誌銘 幷序) 미호 김원행 찬(渼湖 金元行 撰) 공은 휘는 항수(恒壽), 자는 여구(汝久), 성은 이씨(李氏)로, 그 선조는 함평(咸平) 사람이다. 고조 휘 배원(培元)은 황해 감사를 지냈는데, 정축년(1637, 인조 15)에 한로(汗虜)가 돌아갈 때 국경에서 영송(迎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죄를 받아 결국 파면되었다가 별세하였다. 증조 휘 침(沉)은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냈다. 조부 휘 정현(靖賢)은 장례원 사의(掌隷院司議)를 지냈다. 부친 휘 명상(命相)은 개령 현감(開寧縣監)을 지냈으며, 모친 정씨(鄭氏)는 예조 참판 휘 만화(萬和)의 따님이다. 공은 나면서부터 총명하였다. 9세 때 ..

문성공 율곡 이선생 묘지명

文成公栗谷李先生墓誌銘 栗谷先生之歿。今一甲子有十年矣。士林慕其學。朝廷思其道。斯民懷其澤。其間世變不一。以至寇戎交亂。倫常屢絶。則又相與言曰。栗谷之志。少行於當時。則庶幾無今日矣。嗚呼。此豈利以誘之。威以驅之而使然哉。傳曰。盛德至善。民之不能忘也。其先生之謂歟。先生姓李氏。諱珥。字叔獻。其曰栗谷者。學者之所稱也。系出豐德郡德水縣。上世有敦守。爲麗朝中郞將。厥後世有聞人。高祖抽。知郡事。曾祖宜碩。慶州通判。祖藏。贈左參贊。考元秀。監察贈左贊成。好善任眞。有古人風。妣平山申氏。己卯名賢命和之女。英秀貞靜。博通今古。善書畫。以嘉靖丙申十二月二十六日。生先生于江陵北坪里。申氏夢黑龍自大海騰入寢室。俄而先生生。故小字見龍。姿相異常。能言便知文字。三歲。見石榴。卽誦碎紅珠之句。五歲。申夫人疾亟。潛禱于祠堂。嘗見人渡水顚仆。人皆拍笑。先生獨憂形於色。其人獲免乃已。其孝親愛物之心。天性然也。七歲。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