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62

[한시]육신사를 배알하다 - 이중협(李重協)

창절서원소장 판각한시 8편중제5편<육신사를 배알하다 - 이중협李重協 창절서원 소장 판각 한시 8편 중 제5편 이중협(李重協) 嘗讀遜國記(상독손국기) / 일찍이 손국기遜國記를 읽을 때, 不禁廢卷淚(불금폐권루) /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눈물 흘렸네. 蒼黃亦苦心(창황역고심) / 창황한 겨를에도 적잖이 고심했으리. 闔族無噍類(합족무초류) / 일족 중에 살아남는 자 없을 테니. 哀哉六先生(애재육선생) / 서글프도다! 여섯 선생께서, 臣節終自遂(신절종자수) / 끝내 신하의 절의를 이루었네. 豈不識天命(기불식천명) / 어찌 천명의 추이 몰랐겠는가 마는. 盖欲扶人義(개욕부인의) / 그저 사람의 도리를 지키려 했을 뿐. 八賢同其趣(팔현동기취) / 여덟 현인이 그 뜻을 함께한 덕에, 三綱賴不墜(삼강뢰불추) / 삼강이 실..

이종성 간찰(李宗城 簡札) - 백사 5世孫

작성일 : 2008. 10. 23(목) 영의정 오천 이종성 간찰(領議政梧川李宗城簡札) 크기 : 45(가로) x 34센티(세로) ■ 30世 이종성(李宗城) [생졸년] 1692년(숙종 18)∼1759년(영조 35). [문과] 영조(英祖) 3년 (1727) 정미(丁未)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6위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37년 (171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1등(一等) 2위 ------------------------------------------------------------------------------------------------------------------------------------------- 조선시대 영조 때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고(子固)..

공조판서 이현직 간찰(工曹判書李顯稷簡札).

조선 후기의 무신, 이현직「李顯稷,1797년(정조 21)∼1876년(고종 13)」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백형(伯衡), 호(號)는 오산(梧山)으로, 양부(養父)는 1769년(영조 45) 무과에 올라 총관(摠管)을 지낸 이격(李格, 1748~1812)이고 양모는 안동김씨(安東金氏, 1748~1820)이다. 생부(生父)는 이욱「李稶, 1763(영조 39)~1807(순조 7)」이고 생모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다. 1865년 총융사가 되었고, 이듬해 어영대장과 공조판서로 있으면서 경복궁 중건을 감독하였다. 신미양요(1871, 고종 8/6월에 종료)가 거의 끝나갈 때 한성부판윤(1871. 05. 28)에 임명되었다. 간찰의 상태는 양호하며 크기는 가로 39cm, 세로 24cm이다.) ※선생의 종파는 경..

이집로 간찰(李集魯簡札) 2점

순조 7년(1807) 정묘 식년시에 급제한 이집로(李集魯)선생의 간찰 2점. ◈ 이집로(1769-?) 선생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예재(禮在)이다. 나주진병마첨절제사(羅州鎭兵馬僉節制使)를 지낸 통 훈대부(通訓大夫) 이후원(李厚源)의 아들로 39세에 순조(純祖) 7년(180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하였다. ◈ 상 태 : 양호. 크 기 : 24.5cm x 42cm등 (세로 x 가로) 크 기 : 24.5cm x 42cm등 (세로 x 가로)

생곡 이인환 선생 간찰

생곡 이인환(生谷 李寅煥) 경기도 관찰사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진천 출신 문신 이인환(李寅煥) 선생의 정축(1699)년 간찰 한 점으로 전체 배접이 되어있으며 가운데 부분 약간 손상 외 상태 양호하다. 이인환(李寅煥.1633~1699)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李寅爀)·이인욱(李璘煜)·이인찬(李寅燦)·이인희(李寅熹)·이인식(李寅烒)이 있다. 28세 때인 1660년(현종 1) ..

이유원이 수급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이유원이 수급자 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영천이씨 농암종택 신해년 12월에 이유원이 수급자미상에게 보낸 간찰(簡札) 이유원(李裕元)이 보낸 간찰이다. 현재 자신은 입산하여 독서에 전념하고 있음을 알렸다. 늘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고, 서찰을 전하는 것이 여의치 못해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이어 귀댁 가족의 근황과 안부를 궁금해 하였다. 자신은 현재 『논어(論語)』를 탐독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선조의 연보 교열 작업 근황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함께 조속히 상면하기를 기원하며 마무리했다. 入山讀書。是夙昔所推。而今日之會又不與吾座共之。居常歉悵。果何如哉。每欲奉尺素。以敍厥落白今執事者先之。示以誦什兩絶。其意味雋永淸越。讀之傳香人牙頰也。謹惟歲弊寒兇兩庭候。若序萬寧。餘力之學益懋乎素聞。日與季難。聯槧..

귤산 이유원 선생 간찰

귤산 이유원 선생 간찰 이유원[李裕元. 1814(순조 14)∼1888(고종 25)].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 묵농(默農). 이조판서 계조(啓朝)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규장각대교를 거쳐 1845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의주부윤·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고종 초에 좌의정에까지 올랐으나 흥선대원군과 반목하여 1865년(고종 2)에 수원유수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해 말 다시 영중추부사로 전임되어 『대전회통(大典會通)』 편찬의 총재관이 되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곧 영의정(領議政)이 되었고, 영중추부사( 領中樞府事)로 서임되었다. 흥선대원군과 반목, 대립하였고, 세자책봉문제의 이면에서 일..

이행민 간찰(李行敏簡札)

이행민 간찰(李行敏簡札) ■ 이행민(李行敏) [문과] 숙종(肅宗) 44년(1718) 무술(戊戌) 정시(庭試) 병과(丙科) 4위(7/13 [진사] 숙종(肅宗) 31년(170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1위(31/100)) [인물요약] ◇자(字) : 경눌(景訥) ◇생년 : 경신(庚申) 1680년 (숙종 6) ◇본관 : 경주(慶州) ◇거주지 : 과천(果川) [이력사항] ◇진사시 이력사항 : 100명 [一等5名‧/二等25名‧/三等70名] ◇전력 : 유학(幼學) ◇타과 : 숙종(肅宗) 44년(1718) 무술(戊戌) 정시(庭試) 문과(文科) 병과(丙科) 4위(7/13) ◇부모구존 : 구경하(具慶下/부모가 모두 살아 있어 기쁜 처지 [가족사항] ◇부(父) : 이창경(李昌慶) 관직 : 유학(..

만사 : 이영갑(李英甲) 撰

홍여하(洪汝河.1620~1674) 목재집(木齋集) 만사 : 이영갑(李英甲) 撰 이 세상에 온 인연 어째서 일찍 가버렸나 / 來緣底事去何爲 공께서 왔다 가신 이유를 나는 모르겠네 / 公去公來我未知 성군과 천재일우의 운수 몇 달 가지 못했으니 / 運千一逢不數月 오백 년 만에 나는 인물 오히려 기약하기 어렵네 / 間五百出尙遲期 장차 바른 문장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니 / 將敎正印傳諸後 문장만 가리켜 여기에 있다고 말하지 마오 / 莫指文章謂在茲 앞자리가 바야흐로 비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니 / 前席方虛還奄忽 애끊는 마음 나의 사사로움으로 곡할 뿐만은 아닐세 / 割腸非但哭吾私 [주-01]이영갑(李英甲) : 1622~? 본관은 경주, 자는 화언(華彦)이다. 상주(尙州) 함창에 살았다. [주-01]오백 년-----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