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국의전통문화 65

술의기원

술의 기원(起源)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誕生)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최초(最初)로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가 나뭇가지의 갈라진 틈이나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 저장 해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醱酵)된 것을 인간이 먹어보고 맛이 좋아 계속 만들어 먹었다. 이 술을 일명 원주(猿酒)라고 한다. 원시시대(약46억~약35억년 전)와 신석기시대(약8,000~9,000년 전) 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그러한 형태(形態)의 술이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노아의 시대에 대홍수가 일어나 전 세계가 물속에 잠겼을 때, 노아는 홀로 방주를 만들어 자기의 가족과 동식물의 원종(原種)을 싣고 아라랏트산에 도착(到着)하여 생물이 새출발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원종 가운데 ..

전국 5일장 일정표

작성일 : 2017. 09. 17 경기도 지 역 장날 명 날 짜 지 역 장 날 명 날 짜 성남시 동두천시 오산시 남양주시 | | 평택시 | | | | 이천시 파주시 | | | | | | 용인시 고양시 김포시 | | | | 안성시 | | | 모란장 동두천장 오산장 광능장 장현장 마석장 평택장 안중장 서정장 팽성장 송북장 이천장 장호원장 금촌장 문산장 봉일천장 법원장 신산장 적성장 용인장 백암장 일산장 김포장 하성장 마송장 양곡장 공도장 안성장 주례장 죽산장 4,9 5,10 3,8 4,9 2,7 3,8 5,10 1,6 2,7 3,8 4,9 2,7 4,9 1,6 4,9 2,7 3,8 5,10 5,10 5,10 1,6 3,8 2,7 4,9 3,8 1,6 3,8 2,7 3,8 5,10 가평군 | | 양주군 | |..

'文益漸에 木花씨' 神話가 깨졌다.

작성일 : 2013. 09. 25 ■'文益漸에 木花씨' 神話가 깨졌다. 800年 앞선 百濟時代 綿織物 確認- '文益漸의 木花씨' 神話가 깨졌다. 高麗末 文臣 文益漸(1329(충숙왕 16)~1398(태조 07)이 中國에서 木花씨를 숨겨 들어와 키우면서 이 땅에서 무명천(綿織物)을 처음 짜기 始作했다는 敎科書 內容이 事實과 다른 것으로 判明됐다. 最近 忠南 夫餘 陵山里에 6世紀 百濟 절터에서 나온 百濟山 織物이 國內에서 가장 오래된 綿織物 實物로 確認됐다. 國內 綿織物에 歷史가 800年 以上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國立夫餘博物館은 最近 陵山里 절터 出土品 分析 過程에서 1999年 調査 當時 遺跡 低濕地에서 木器類와 함께 나온 織物 덩어리(幅 2cm,길이 約 12cm·寫眞)가 國內 最古에 綿織物임을 確認했다고..

한지(韓紙)에 대하여

■ 한지(韓紙)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종이는 수제지(手製紙)와 기계지(機械紙)로 나눌 수 있는데 기계지는 보통 우리가 쓰는 종이를 말하며 양지라고 칭한다. 한지(韓紙)는 한국에서 손으로 뜬 종이로서 중국의 수제지인 화지나 일본의 수제지인 화지와 구별하여 지칭한 것이다. 옛날의 계림지·삼한지·고려지·조선지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명칭이 한지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례(前例)의 종이를 모두 한지로 통칭되고 있으나 중국 등지에서는 시대에 따라 계림지(鷄林紙)·고려지(高麗紙) 또는 조선지(朝鮮紙)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한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있어 고대부터 문물교류를 통해 중국의 제지기술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윤서형의 한지 공예전

무더운 여름을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서 그동안 소중히 준비했던 결실들을 선보이고자 윤서형 한지공예전 상응과 상생- 전통에서 길을 찾다를 준비하였습니다. 한지의 깊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약도 (우) 06153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406 (삼성동 112-2) 대표전화 : 02)3011-2175 Fax : 02)566-5954 E-mail : webmaster@chf.or.kr 출처 : 제시카 알바

망주석(望柱石)의 의미와 풍수

↑송강 정철 묘 망주석(望柱石)의 의미와 풍수 무덤 앞의 양쪽에 세워진 망주석(望柱石)은 망두석(望頭石), 망주석표(望柱石表), 석망주(石望主), 석주(石柱), 망주(望柱), 그리고 화표주(華表柱), 라는 다양한 명칭들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명칭과 같이 망주석(望柱石)은 우리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여러분의 선대 묘소에서도 몇 개쯤은 찾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왜 망주석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려진 내용이 없다는데 있다. 기껏해야 무덤 밖으로 외출했던 혼령이 자기 무덤을 찾아 올적에 식별하라고 세워 놓은 것이 망주(望柱) 문패라는 설명이 있는데 이것이 과연 옳은 말일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더불어 무덤은 죽은 자의 집이기에 음택(..

망주석(望柱石)

↑왕릉 망주석 ■ 망주석(望柱石) [정의] 무덤 앞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개설] 망주석(望柱石)은 멀리서 보아도 무덤의 위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표석(標石)이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괘릉(掛陵)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봉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웠다. 고려 태조의 현릉(顯陵)에서부터 망주석은 봉분 앞에 설치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도 전통이 이어졌다. 망주석은 시간이 갈수록 무덤을 상징하는 석물로 인식되어 사대부들의 묘에도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원래 묘의 석물들은 신분에 따른 규정이 있었는데 망주석은 당상관(堂上官) 이상의 높은 품계의 사대부 묘에만 세울 수 있었다. 17세기에는 서민들도 망주석을 설치하자 1637년(인조 15)에는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

상여소리

↑발인제(發靷祭) ↑발상 준비 ↑발상 출발 ■ 상여소리[발인곡]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서 상여를 메고 갈 때 상두꾼이 부르는 의식요. 개설 「상여가」는 장례 절차 중에서 출상 당일에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갈 때 선소리 상두꾼이 부르는 장례 의식요이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이승에서의 행적을 기리고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죽음을 인생무상, 슬픈 이별로 표현하는 「상여 소리」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김광순이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1리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이정세[남, 76]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상여가」는 선소리꾼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상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