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발 25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의 학문과 삶

벽오 이시발(碧梧 李時發)의 학문과 삶 이시발『李時發,1569년(선조 2) ~ 1626년(인조 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양구(養久), 호(號)는 벽오(碧梧). 후영 어은(後潁漁隱), 진사(進士) 이대건(李大建)의 아들이고, 이덕윤(李德胤)의 문인(文人)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 문과 병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제수(除授) 되었으나 스스로 학업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덕윤(李德胤)에게 나아가 경적(經籍)을 더욱 연구한 뒤 벼슬길에 나왔다. 어릴 적부터 경학(經學=유교의 경전)을 중심으로 학문의 바탕을 삼았고. 시경(詩經)에서 성정을 함양하고 서경(書經)을 통해 정치철학을 배우고 주역(周易)을 통해 우주의 섭리를 배우고 예기(禮記)를 통해 사회 규범을 배우고 춘추(春秋)를..

익재공 후 27世 오촌공. 28世 벽오공 부자분 묘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성균진사 이대건선생(좌)과 정경부인 안동김씨 묘(우) 400년이 지난 동자석, 석양, 망주석 등의 묘지 석물들을 2000년에 도난 당해 새로 세운 문인석 입니다. ↑형조판서 벽오 이시발선생(좌)과 정경부인 여흥민씨 묘(우)/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 ↑충익공 벽오 이시발선생 묘표 ↑벽오 이시발선생 계배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표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문인석 생곡 이인환 선생 묘 ↑쌍오비각(雙梧碑閣) : 충청북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142호 좌측비가 오촌 이대건 신도비이고 우측은 아들 벽오 이시발 신도비이다. ↑형조판서 증 영의증 충익공 벽오 이시발(1569~1626)선생 시제기념촬영(2016. 11. 04 (금요일)

이별의 통한

■ 이별의 통한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형제자매,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곡진한 조선 선비들의 가슴 절절한 통곡의 짧은 글 중에 삶을 공유했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이야말로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중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죽어 슬픔을 묘사하는 말에는 대부분 아픔을 의미하는 '통(痛)'자가 붙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城)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 ‘서하지통(西河之痛)’ 역시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을 전할 때 쓰입니다. 서하라는 지방에 살던 공자의 제자 자하가 아들이 죽자 너무 상심하여 눈이 멀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

오촌공. 벽오공. 정경부인 고령신씨 시제봉행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성균진사 이대건선생(左)과 정경부인 안동김씨 묘(右) ↑형조판서 벽오 이시발선생(좌)과 정경부인 여흥민씨 묘(우)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6-11 ↑충익공 벽오 이시발선생 묘표. ↑벽오 이시발선생 계배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표. ↑정경부인 고령신씨 묘 문인석 ↑정경부인 고령신씨 망주석 ↑쌍오비각(雙梧碑閣) : 충청북북 지방 유형문화재 제142호(1984년 12월 31일 지정) 좌측비가 오촌 이대건 신도비이고 우측은 아들 벽오 이시발 신도비이다. ↑소재지 :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번지 ↑형조판서 증 영의증 충익공 벽오 이시발(1569~1626)선생 시제기념촬영(2016. 11. 04(금요일) [경주이씨 종보 제301호 기사..

이시발 필서간(李時發 筆書簡)

↑이시발 필서간(李時發筆書簡)/크기 : 25.8㎝(가로) x 21.6㎝(세로) ◈품명 : 이시발 필서간(李時發 筆書簡) ◈용조 : 서간류(書簡類) ◈크기 : 25.8㎝(가로) x 21.6㎝(세로) ◈소장처 : 국립순천대학교 박물관 ◈유물번호 : 순천대(순천대) 208341-000 [작가] 이시발『李時發, 1569년(宣祖 2)∼1626년(仁祖 4)』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또는 후영어은(後潁漁隱),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한 후 전적(典籍), 정언(正言) 등을 지내며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 1601년(선조 34) 경상도관찰사, 1604년 형조참판(刑曹參判), 이듬해 함경도관찰사가 ..

이시발 선생 간찰

■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낸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 선생 간찰(簡札) 1569(선조 2)-1626(인조 4) 문신으로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慶州人이다. 1589년 문과를 급제하여 여러벼슬을 거치고 임진왜란때 활약하였으며 경상감사. 평양감사를 지냈다. 광해군때 폐모론에 반대하였으며 한성판윤, 형조판서를 거쳤고 이괄의 난리때 공을 세웠다. 저서로는 벽오유고(碧梧遺稿)가 있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이 간찰은 선생의 연세 36세때인 1604년에 쓰신 간찰로 서너자의 탈자가 있으며 크기는 가로 19cm, 세로 25cm 이다.

충신 이경선선생 묘

↑제33대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12대 조이기도 하다. ↑충신 예조참의 이경선선생 묘(산소뒤는 중부고속도로이다) ↑이경선선생 묘비/소재지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22-18 ↑이경선선생 묘역(촬영 : 2012. 04. 22(일요일) 좌측에 보이는 묘소는 참의공 이경선의 7대손 규오(圭五)와 배위 진주유씨 쌍분이다. ↑1730년(영조 6) 9월에 왕명으로 내려진 충신정려(忠臣旌閭) 원판(原版) ↑이경선 선생 충신 정려문 편액 1636년(인조 14) 1월 1일 남포 현감에 부임 재직 중, 그해 12월 9일 청나라 태종(2대) 홍타이지가 이끄는 14만의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포 현감 이경선은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가 이끄는 충청도 근왕병의 참모관으로 참전, 경기도 광주 ..

익재선생문집(益齋先生文集)

◈ 품 명 : 익재선생문집(益齋先生文集) ◈ 크 기 : 18.5Cm x 28.5Cm ◈ 판 사 항 : 목판본(木板本 ) ◈ 발행사항 : 慶州 : 鷄林府, 肅宗 19(1693)刻, [後刷] ◈ 형태사항 : 10卷3冊 : 四周雙邊 半郭 20.1 x 15.8 cm, 有界, 半葉10行18字 註雙行, 內向2葉 花紋魚尾 ; 30.2 x 20.2 cm ◈ 저 자 : 이제현(李齊賢:1287~1367) ◈ 주기사항 : ◇備考 : 第1-4張 落 ◇益齋는 李齊賢의 號임 ◇刊記 : 崇禎丙子後伍拾染年癸酉(1693)正月鷄林府重刊 ◇重刊識 : 癸酉(1693)...許경書 ◇紙質 : 楮紙 ◇表題 : 益齋先生文集 益齋亂藁. 卷1-10 / 李齊賢(高麗) 著 10권 4책. 저자가 살아 있을 때인 1363년(공민왕 12) 아들 창로(彰路) ..

왕의 호칭

왕의 호칭 각하(閣下) 사극에서 폐하(陛下) 또는 전하(殿下)라고 하는 호칭을 듣게 됩니다. 폐하는 섬돌 폐자에 아래 하, 섬돌 아래라는 뜻이고, 전하는 전각 전자에 아래 하, 전각 아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섬돌 아래나 전각 아래에서 올려다 보아야 하는 고귀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밖에 집 아래를 뜻하는 합하(閤下)라든가 각하(閣下)라는 호칭도 같은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폐하는 황제, 전하는 황제보다 한 등급 낮은 국왕, 각하는 국왕 아래에 있는 고위관료를 지칭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던 1590년,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통신사로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당시 일본의 관백(關白)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국왕에게 전달하는 국서(國書) 한 통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김성일은 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