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몽골 김씨. 태국 태씨

2007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했을 때 한국인 못지않게 기뻐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중국 허난성(河南省) 싱양현의 반씨(潘氏) 집성촌 사람들이었다. 반 총장 조상은 고려 충렬왕의 아내가 된 원나라 공주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김방경(金方慶, 1212∼1300 ) 장군의 일본 정벌에 공을 세워 기성(崎城=거 옛 지명)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는 벼슬을 다한 후 거제로 내려가 여생을 보내 한국'거제반씨((巨濟潘氏)'의 시조가 됐다. 1995년 '화산이씨(花山李氏)' 종친회가 베트남을 찾자 베트남 정부는 그들을 베트남 왕손으로 모셨다. 화산이씨 시조 이용상(李龍祥-13세기 초)은 베트남 첫 독립국가의 왕족이었다. 그는 1226년 베트남에 정변이 일어나자 일족을 배에 태우고 탈출했다. 고려 고종(高麗 高宗) 은 ..

익재공의 호에대하여

익재공의 호(號)에대하여.... 당호(堂號)란 옥호(屋號) 라고도 하며, 작가 자신의 호와는 달리 사는 집 또는 작업실 등에 당(堂). 헌(軒). 재(齋). 정(亭). 각(閣). 루(樓). 실(室) 등의 글자를 넣어 그 집의 이름으로 삼는다. 익재공(益齋公)의 당호는 더할 “益”에 집을 뜻하는 “齋”이시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당호가 “더하는 집”이란 말 뜻 인데 그렇다면 무엇을 더하는 집이라는 뜻일까? 이렇게 접근해서는 당호를 풀 수가 없다. 본래 집이란? “齋(재계할 재)= 齊(가지런할 제) + 小”가 아니라, “齋= 齊 + 心”바른 글자이다. 이러한 글자가 바로 우리 선조들이 만든 갑골문의 본 글자다. 이와 같이 “齋”는 집에서 마음을 재계한다는 의미의 뜻을 가지고 있다. 본래 우리말의 “집”은 “짓..

구천 이공[이세필] 화상기 - 곤륜 최창대 씀

昆侖集卷之六 三陟龜川李公 世弼 畵像記 己亥 陟之爲州。地瀕海。限以大嶺。去王都逴遠。其人樸魯而少文。不事經典之業。不習禮義之敎。今上甲申。龜川李先生。出莅是州。旣平徭薄征。以寬其民。則以興學校振文敎爲先務。築書室於州北龍山之趾。居其子弟之誦讀者。手定學規數十事。日親講授而勖 率之。至期歲益勤無倦。於是一方嚮風。人樂以勸四隣。稱爲絃誦之鄕。先生旣歸有年。學子懷慕不怠。爲建數楹於書室之北。圖所以奉先生像。以永其瞻式。而先生不可。竊窺而貌之。見者皆病其未似。諸生贏糧越險。往返勤苦。歲丁酉。謀於畵師秦再奚而改貌之。屬余記之。夫三代之敎人備矣。侯王邦國。旣有泮水辟雍。而下至鄕黨酇遂之間。雖比戶之閭。十室之聚。莫不有居業之地。名其宮爲庠塾。斯有其所矣。春秋而禮樂。冬夏而詩書。朝暮焉養之以舞蹈。游之以投射。斯有其業矣。閭胥族師黨正之屬。書其德義。而 鄕大夫致仕之老。羣其人而誨之。斯有其師資矣。其..

율곡선생 남매분재기(栗谷先生男妹分財記)

■ 율곡선생 남매분재기 (栗谷先生 男妹分財記) -------------------------------------------------------------------------------------------------------------------------------------- [지정번호] 보물제477호 [지정 연월일] 1968년 12월 19일 [시 대] 1566년(조선국 명종 21) [수량] 1축 [재료] 저지 [소유자] 건국대학교 [소재지] 서울시 광진구 모진동93 건국대학교 박물관 율곡선생남매분재기(栗谷先生男妹分財記)는 이원수(李元秀)의 자녀인 율곡 이이(李珥)의 형제자매들의 재산분배에 대한 화회문기(和會文記)이다. 화회문기는 부모가 죽은 뒤 형제자매들이 모여 합의하여 유산을 분재(分財)하..

단양우씨세계도(丹陽禹氏 世界圖)

■ 단양우씨세계도(丹陽禹氏世界圖) 1世 현(玄) ㅣ 2世 신(臣) 호장공(戶長公) ㅣ 3世 인가(仁可) 목사공(牧使公) ㅣ 4世 잉순(仍順) 호장공(戶長公) ㅣ 5世 경절(慶節) 호장공(戶長公) ㅣ 6世 중대(仲大) *중시조(中始祖) 시중공(侍中公) ㅣ 7世 천규(天珪)-천계(天啓)-천석(天錫)-천우(天佑)-천성(天成) 시중공 판서공 시중공 군기윤 낭장공 (侍中公) (判書公) (侍中公) (軍器尹) (郎將公) ㅣ 8世 탁(倬)-제(제)-칭(稱)-팽(팽) ㅣ ㅣ ㅣ ㅣ ㅣ 복생(福生) 9世 ㅣ ㅣ ㅣ 길생(吉生)-국진(國珍) ㅣ 出系 탁(倬)后 문강공(文康公) ㅣ 系子 추후 시간되면 작성계획임

우국진(禹國珍) - 단양우씨 문강공파 파조

■ 단양우씨(丹陽禹氏) 9世 우국진(禹國珍)선생 단비(壇碑) ↑충북 충주시 산척면 ●우국진(禹國珍) ◇8世 우칭의 둘째아들 ◇시호(諡號) : 문강(文康), ◇관직(官職) : 의금부판서(義禁府判書), 公이 여말에 나셔서 문과에 급제하시고 참판을 거쳐 의금부 판사, 그리 고 이조판서를 지내셨다.문행록을 대략적으로 보면 충심으로 임금을 섬기고 명을 의로서 관계를 지속하였으며 유교와 불교를 엄 중히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 그게 바로 올바른 道 라고 하셨다. 外史氏 찬성하여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의 오상고절한 뜻(夷齊之志)과 야음과 목음의 빼어난 학행(冶牧之學)이 라 하여 그 뜻을 높이 사셨다. ---------------------------------------------------------..

역동 우탁선생 묘(易東 禹倬先生 墓)

↑역동 우탁 선생 묘(易東 禹倬先生 墓)/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정산2리 /寫眞: 丹陽禹氏獎學會 ↑역동 우탁선생 신도비(易東 禹倬先生 神道碑) ↑易東 禹倬先生 神道碑閣/寫眞: 丹陽禹氏獎學會 ↑易東 禹倬先生 墓域 오르는길/寫眞: 丹陽禹氏獎學會 ↑寫眞: 丹陽禹氏獎學會 ↑易東 禹倬先生 齋室 鼎井齋 後景)/寫眞: 丹陽禹氏獎學會 ↑易東 禹倬先生 齋室 鼎井齋 ⓒ자즐보 ↑정정재(鼎井齋) 정면 모습 ↑정정재(鼎井齋) 측면모습 ↑정정재(鼎井齋) 경내의 영모실(永慕實) ↑강의당(講誼堂) ⓒ6매 : http://blog.daum.net/kil0930/245 ⓒ6매 : :수산 원문보기▶ 글쓴이 : 군계일학 -------------------------------------------------------------..

급암시집서(及菴詩集序) - 이제현(李齊賢)

급암시집(及菴詩集) - 민사평(閔思平) 著 ●급암시집 서(及菴詩集序) - 이제현(李齊賢) 吾先君昔掌試。取知名士二十有三人。其至大官若朴密直仁幹。▣▣▣▣▣▣▣▣▣▣▣▣▣▣▣君所愛重性坦▣▣▣▣邊幅。每酒酣。輒爲詩。無塵俗語。無子。有金氏二甥齊閔齊顔。及庵歿。齊閔拾遺詩若干首。編以示予。讀其詩。想見其平生。不覺霑▣▣▣▣▣▣益少。況先君所▣▣▣乎。嗚呼。誰怪乎吾涕之無從也。東庵後人李齊賢題。 -------------------------------------------------------------------------------------------------------------------------------------- 급암시집(及菴詩集) > 及菴詩集年譜 > ●급암 만사(及菴挽詞)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哲人淪喪路人驚..

각진국사 비명(覺眞國師碑銘)/제정집

제정집 제3권 / 묘지명(墓誌銘) 고려 왕사(高麗王師) 대조계종사(大曹溪宗師) 일공정령 뇌음변해 홍진광제 도대선사(一邛正令雷音辯海弘眞廣濟都大禪師) 각엄존자(覺儼尊者) 증 시 각진국사(贈諡覺眞國師) 비명(碑銘)과 서(序) 지원(至元) 14년(1355, 공민왕4) 을미년에 왕사(王師) 각엄 존자(覺儼尊者)가 열반에 들었다. 5년이 지난 뒤에 그의 무리 원규(元珪)가 전하께 아뢰기를, “우리 왕사의 행적이 묻혀 사라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원컨대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에 주상께서 신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였다. 신이 명령을 받은 후에 가만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옛날에 달관한 사람은 일생을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으로 여기고, 명예와 지위를 헌신짝같이 보았다. 더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