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244

홍직필(洪直弼)

■ 홍직필(洪直弼) [생년] 1776년(영조 52) [졸년] 1852년(철종 3) / 壽87歲 [자(字)] 백응(伯應), 백림(伯臨), [본관] 남양(南陽) [호(號)] 매산(梅山), 문경(文敬) [저서] 『매산집(梅山集)』 52권이 있다. 매산 홍직필(梅山 洪直弼)은 많은 수량의 전장(傳狀)과 비지(碑誌)를 창작하였다. 본고는 이들 작품의 양상을 살핀 후에 그 의의를 검토 하였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선비로서, 그는 당대의 세상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응하여, 이로써 현실을 바르게 개선하기 위해 노력 하였다. 매산이 살고 있던 19세기 전반은 시대의 상황이 다른 시대와는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말세를 치유하는 처방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 하였다. 그는 이런 시기에 충(忠). ..

성여신(成汝信)

■ 성여신(成汝信) [생졸년] 1546년(명종 1) ~ 1632년(인조 10) /壽 87歲 [본관] 창녕(昌寧) [거주지] 진주(晉州) [저작] 부사집(浮査集) [가족사항] ◇부(父) : 성두년(成斗年)/관직 : 참봉(參奉) ◇형(兄) : 성여충(成汝忠) ◇형(兄) : 성여효(成汝孝) [과시(科試)] [진사] [진사] 광해(光海) 1년(1609) 기유(己酉)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34위(64/100) [생원] 광해(光海) 1년(1609) 기유(己酉) 증광시(增廣試) [생원] 2등(二等) 7위(12/100)/합격연령 64세 ----------------------------------------------------------------------------------------------..

이홍우(李弘宇)

■ 이홍우(李弘宇) [자(字) 계용(季容) [호(號)] 모재(茅齋) [생년] 1535년(중종 30) [졸년] 1594년(선조 27) [본관] 광산(光山) 1535년(중종 30)∼1594년(선조 27).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계용(季容), 호는 모재(茅齋), 부친은 이수(李樹)이고 형은 이홍기(李弘器), 이홍량(李弘量)이다. 형들과 함께 김우옹(金宇毋), 김면(金沔), 이기춘(李基春), 오건(吳健), 최영경(崔永慶) 등과 사귀며 학문을 논하였다. 이들 삼형제의 효행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1668년(현종 9)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삼처사유허비『三處士遺墟碑/1845년(헌종 11) 정재 유치명이 찬한 묘갈명』를 세웠다. □ 삼처사유허비(三處士遺墟碑) 1845년(헌종 11) 정재 유치명이 찬한 묘갈명임.

이경창(李慶昌) - 처사(處士/선비)

■ 이경창(李慶昌) [생년] 1554년(명종 9) [졸년] 1627년(인조 5) [본관] 문의(文義) [저작] 『서촌집(西村集)』.『원리기설(原理氣說)』·『천인설(天人說)』·『주천도설』 개성 출신. 본관은 문의(文義). 자는 언급(彦及), 호는 서촌(西村). 유학자 이양세(李揚世)의 아들이다. 12세 때부터 외할아버지 밑에서 철리(哲理)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뒤에 서경덕(徐敬德)의 학문에 심취하여 경전(經典)·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였고, 만년에는 특히 『주역』을 연구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주천도설(周天圖說)』에서 논급한 주천설은 그의 우주관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가 제작, 시험하였다고 전하여지는 선기옥형(璿璣玉衡)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제기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서에 『서촌집(西..

권상일(權相一)

■ 권상일(權相一) 생졸년 : 1679년(숙종 5)~1759년(영조 35)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은 조선 후기 숙종 ‧ 영조 연간에 활동한 영남 퇴계학파의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로, 아버지는 권심(權深)이고 어머니는 이달의(李達意)의 딸) 경주이씨 이다. 경상도 상주(尙州)의 근암리(近嵒里 : 현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안동, 자는 태중(台中), 호는 청대(淸臺), 시호는 희정(僖靖)이다. 권상일의 6대조 인재(忍齋) 권대기(權大器(1523~1587)와 5대조 송소(松巢) 권우(權宇(1552~1590)는 대대로 안동에 살면서 퇴계 이황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그러다가 권상일의 고조부 권익린(權益隣)이 예천으로 이주했고, 증조부 권구(權坵)가 예천에서 상주 근암리로 옮겨와 자리를..

玉山傳[李瑀] - 李端夏(이단하) 撰(찬)

◇옥산(玉山)은 신사임당의 아들이고 율곡 이이의 아우임. ◇금번 한은총재 이창용 후보가 옥산 이우 선생의 15대손임. 玉山傳[李端夏] 玉山公。諱瑀。字季獻。栗谷先生之弟也。生于嘉靖壬寅。十歲。丁內憂。執喪如成人。辛酉。丁外憂。三年不脫衰絰。手備祭膳。冬月則手爲之凍裂。丁卯。陞上舍。己卯。除御容殿參奉。不赴。癸未。除氷庫別檢。時創修欽敬閣。以公曉星學。特兼敎授。甲申。遷司僕主簿。轉司憲府監察。除比安縣監。秩滿以民人借寇。留一年。己丑冬。除監察。轉尙衣判官。壬辰。除槐山郡守。言官論以驟陞四品。上答以有才行人。不可拘以常例。終不允。乙未。病遆。庚子。除古阜郡守。壬寅。以監司親嫌遆歸。乙巳。除軍資監正。病未赴。己酉五月。卒。壽六十八。公天資仁厚。才調出人。文詞高古。兼工書畫。天文地理星命卜筮之法。無不精通。嘗再中庭試。皆以字誤拔去。乃歎曰。此天也。更不赴擧。嘗隨栗谷先生。京鄕進..

이동명(李東溟)

■ 이동명(李東溟) [문과] 효종(孝宗) 3년(1652) 임진(壬辰)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위(11/33) [생원] 효종(孝宗) 3년(1652) 임진(壬辰)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21위(51/100) -------------------------------------------------------------------------------------------------------------------------------------------------------------- 조선후기 경주부윤, 예조참의, 서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지금의 경기도 개풍). 자는 백종(百宗), 호는 학정(鶴汀). 이우(李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절(李景節)이다. 아..

이정화(李鼎華)

■ 이정화(李鼎華) [진사] 숙종(肅宗) 9년(1683) 계해(癸亥)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66위(96/100) ------------------------------------------------------------------------------------------------------------------- 공(公)의 본관은 덕수(德水)로 신사임당의 둘째 아들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고손(高孫=4대손)으로 자(字)는 신지(新之)이고, 경인(庚寅) 1650년(효종 1) 생원(生員)으로 어모장군(禦侮將軍) 행훈련원판관(行訓鍊院判官)을 역임한 이동유(李東維)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부(養父)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홍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洪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지낸 이동명(李東溟)이..

정무공 최진립(崔震立) 선생에 대하여

정무공 최진립(崔震立) 선생에 대하여 외 후손 인동 장달수 총론 생졸년 : 1568년(선조 1)∼1636년(인조 14) / 69세. ------------------------------------------------------------------ 조선 중기 선조~인조 때의 무신으로, 때 의병장(義兵將)이고, 때 전사한 무장. 행직(行職)은 참판(參判)·수사(水使), 증직(贈職)은 병조판서이다.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경상도 경주 견곡촌(見谷村) 출생이다.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증직된 최신보(崔臣輔)이고, 어머니 평해황씨(平海黃氏)는 정언(正言) 황정(黃汀)의 손녀다. 청백리(淸白吏)에 선임되었다.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와 친구 사이였다. 선조 시대 활동 ..

안동지방에 수령의 선정비가 없는 이유

대가들은 조선왕조가 선량하고 현명한 관료들이 이끄는 도덕적인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일례를 들면 그들은 퇴계의 조언에 따라서 지방 수령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송덕비를 세우지 않기로 하였다. 임내신이 1543~1549년 사이에 예안의 수령으로 선정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선정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자 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퇴계는 모든 수령이 선정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므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불필요하고 낭비가 디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윤리적인 정부와 윤리적인 지역사회에 대한 퇴계의 유교사상에 따라서 안동의 대가들은 자신의 마을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안동 지역에서 가장 번화하고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부내에 있는 수령의 아문(衙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마을에서는 대가들이 마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