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각진국사 비명(覺眞國師 碑銘)/동문선

동문선(東文選) 제118권 / 비명 왕사 대조계종사 일공정령 뇌음변해 홍진광제 도대선사 각엄존자 증 시 각진국사 비명[병서] 王師、大曹溪宗師 一邛正令 雷音辯海 弘眞廣濟 都大禪師 覺儼尊者 贈 諡 覺眞國師 碑銘[幷序] 이달충(李達衷) 찬(撰) 지원 14년 을미년에, 왕사(王師) 각엄존자(覺儼尊者)가 적멸하였다. 5년이 지난 뒤에 그의 무리 원규(元珪) 등이 임금께 아뢰기를, “우리 스승님의 행실이 묻히어 없어지게 버려둘 수 없으니, 원하옵건대, 비석을 세워 기록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에 임금이 신에게 명령하여 비문을 지으라고 하였다. 신이 이미 명령을 받고 가만히 생각하니, 옛날에 달관한 사람들은 몸 담은 세상을 여관으로 생각하고, 명예와 지위를 헌 신짝 같이 본다고 하였다. 더구나 부도씨(浮屠氏)는 유..

이생 반(李生蟠)에게 주는 서 - 양촌 권근

양촌선생문집 제15권/권근 저 이생 반(李生蟠)에게 주는 서 내가 급제(及第)하였을 때 나의 할아버지 성재공(誠齋公)이 경계하기를, “선군(先君) 국재(菊齋) 문정공(文正公)이 공거(貢擧)를 맡았을 적에, 익재(益齋) 이문충공(李文忠公) 이제현(李齊賢)이 20미만의 나이로 급제하였으나 끊임없이 학문을 좋아하므로, 공이 아름답게 여겨 드디어 사위로 삼았었는데, 문충공은 누가 어느 글을 잘 다룬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가서 수업(受業)하고, 누가 무슨 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빌려다가 읽되, 날마다 부지런히 하여 밤을 낮삼아 하였으며, 가끔 손님이 오게되 면 벽하나 사이라, 글읽는 소리가 손님과의 대화를 방해하므로 선군께서 중지하라 명하셔도 오히려 소리만 낮추고 중지하는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동유록(東遊錄) -담헌 이하곤(澹軒李夏坤)

동유록(東遊錄) [지은이]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 [생졸년] 1677년(숙종 3) ~ 1724년(영조 즉위년) 금강산으로 향하다 갑오년(1714년, 숙종 40년) 3월 19일.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서 풍악(楓嶽)으로 향했다. 이유발(李惟發)과 영수암(靈水庵)의 승려 삼임(三稔)과 청담(淸潭)의 승려 신숙(信淑)이 뒤따랐다. 도마치(倒馬峙)를 넘어서 삼승촌(三升村)을 지났는데, 이곳은 이동상(李東相)이 사는 곳이다. 이동상이 항상 산수의 아름다움이 금계(金溪)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용정(龍亭)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점심 때 음성(陰城)에 도착했다. 현감(縣監) 이세기(李世機)가 그 아들 이묵(李黙)을 데리고 찾아왔다. 저녁에 유곡(柳谷)의 별장(別將) 집에서 잤다. 금강산으로..

유금강록(遊金剛錄) - 이원(李黿)

■ 유금강록(遊金剛錄) 금강산 유람을 떠나기로 하다. 금강산(金剛山)은 강원도(江原道)의 진산(鎭山)으로, 북쪽으로는 안변(安邊)에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강릉(江陵)에 닿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임하고, 서쪽으로는 춘천(春川)의 경계로 통한다. 흡곡(歙谷), 통천(通川), 고성(固城), 간성(杆城), 회양(淮陽), 금성(金城), 양구(楊口), 낭천(狼川)등 여러 군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땅을 나누어, 삼백여 리에 뻗쳐있는 내외의 금강산 산록에 들어 있다. 고개를 경계로 삼고, 내외 수참(水站)을 정하여 서쪽을 내산으로 삼고, 동쪽을 외산으로 삼는다. 금강산은 도가와 승려들이 모이는 곳이며, 시인과 문장가가 왕래하며 노닐며 감상하는 곳이다. 나의 먼 조상인 고려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

오윤함(吳允諴)

■ 오윤함(吳允諴)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생원진사시] 광해군(光海君) 5년(1613) 계축(癸丑)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26위 ●인적사항 [자] 여침(汝忱) [생년] 경오(庚午) 1570년 [합격연령] 44세 [본관] 해주(海州) [거주지] 경(京) ●이력사항 ○유학(幼學) ○양시(兩試) [타과] [과목(科目)] ●가족사항 [부] ○성명 : 오희문(吳希文) ○ 관직 : 전행선공감감역관(前行繕工監監役官) ○ 품계 : 봉훈랑(奉訓郞) [형] 성명 : 오윤겸(吳允謙) *영의정 [형] 오윤해(吳允諧) [제] 오윤성(吳允誠) [출전(出典)]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柳車達) 묘 발견

“北” 산천군서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 묘 발견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북한 사회과학원이 최근 `문화류씨(文化柳氏)' 시조인 유차달(柳車達)의 묘를 발견해 국가보존유적으로 등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전했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이 묘는 황해남도 삼천군 달천리 구월산 기슭의 달천온천 인근마을에서 4개의 비석, 망돌(맷돌), `묵방사라는 건축물' 등과 함께 발견됐다. 북한의 역사기록에는 류씨 시조 묘라는 뜻을 가진 `류릉'이란 용어가 있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었다. 이 통신은 "묘의 비문을 해독한 결과 이번에 발견된 유적들이 고려건국에 기여한 류차달을 제사 지내기 위한 것들로 확인됐다"면서 "류차달이 문화(현재의 삼천군) 일대에서 큰 세력을 형성해 고려의 통일에 이바지..

목은 이색 가족묘역

↑목은 이색선생 묘(충남 기념물 제89호)ㅣ소재지 :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산1-1 ↑이색선생 묘역 내의 석물들고려 후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색 선생의 묘소는 문헌서원의 좌측 기린산(麒麟山) 중턱에 있는데, 묘자리는 무학대사가 정한 것이라 한다. 무덤의 형태는 원형이며, 무덤 앞에는 망주석·문인상·마상(馬像)이 각각 2기씩 양쪽에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 비석이 서 있다. 비는 단순한 형태이며 앞면에 ‘목은선생 이색지묘(木隱先生 李穡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헌서원 입구에 있는 재실 ↑서원 ..

우리나라의 옛 관직명

■우리나라의 옛 관직명 관직명 해 설 가감역관(假監役官) 조선시대 때 토목(土木), 영선(營繕)을 담당하던 종9품의 임시관직 가덕대부(嘉德大夫) 조선시대 때 종1품의 종친에게 주던 관계(官階). 가선대부(嘉善大夫) 조선시대 때 관계(官階). 종2품으로 문 무반, 종친이 받음. 가의대부(嘉義大夫) 조선시대 때 관계(官階). 종2품으로 처음에는 가정대부(嘉靖大夫)라 하였다 각간(角干) 신라의 최고 관급(官級). 상대등(上大等)과 같이 17개 관등과는 별개의 관급. 감관(監官) 조선시대 때 관아(官衙), 궁방(宮房)에서 금전의 출납 맡아보던 관리. 감군(監軍) 조선의 군직(軍織)으로 군인들의 순찰을 감시하던 임시 벼슬 감목관(監牧官) 조선의 외관직(外官織), 지방의 목장(牧場)일을 맡아 보았다. 감무(監務) ..

우리나라 옛 역대 관청 소개

이재훈 관청 명 해 설 경시서(京市署) 고려와 조선 때 중앙에 있는 시장과 도량형(度量衡), 물가조절 등 상업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 경연청(經筵廳) 조선 때 유교경전(儒敎經典)의 강론(講論)을 맡고 임금과 함께 사상(思想)을 토론하는 일을 맡은 관청. 공부(工部) 고려 때 상서성(尙書省) 소속의 6부중 하나로 공업과 농업을 맡아 관장하는 기관이며 지금의 통상산업부, 농림부. 공조(工曹) 조선 때 6조의 하나로 공업 또는 공사(工事) 영선(營繕:건축물을 신축하고 수리하는일)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 하는 지금의 건설교통부. 관상대(觀象臺) 조선 때 천문(天文), 책력, 기후, 누각(漏刻:시간 측정) 등을 맡아보는 관청 지금의 기상대. 교서관(校書館) 조선 때 경적(經籍) 등을 간행하고 반포 하며 향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