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이재훈) 54

가을을 남기고간 사랑 - 패티 김

◇ 본 명 : 김혜자[패티김] ◇생 년 : 1938년 2월 28일 ◇출생지 : 서울 ◇데뷔 : 1958년 미8군 무대 가을을 남기고 간사랑 작사, 작곡/박춘석 노래/패티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 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이상설선생 생가와 숭렬사 등,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

독립운동가 이상설선생, 진천의 생가와 숭렬사 등 국가현충시설로 지정 보훈처 결정…기념관건립 등 지역숙원사업 추진 '파란불'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마을에 건립될 이상설선생기념관투시도 충북 진천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가인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의 생가와 사당, 새로이 건립될 기념관 등이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14일 군에 따르면 보훈처는 이날 심의위원회를 열어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선생의 생가와 인근의 숭렬사(충북도 기념물 제77호), 묘소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일제강점기 헤이그 밀사 3인으로 유명한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들으며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를 터득했다. 1906년에는 중국 옌볜 룽징춘에 항일..

현민 유진오 박사(玄民 兪鎭午 博士)

■ 유진오(兪鎭午) [간략정보] ◈한자 : 유진오(兪鎭午) ◈분야 : 정치·법제·행정 ◈성격 : 법조인|교육가|정치인 ◈출신지 : 서울 ◈성별 : 남 ◈생년 : 1906년 ◈몰년 : 1987년 ◈본관 : 기계(杞溪) ◈저서(작품) : 헌법해의/헌법강의/양호기/구름 위의 만상 ◈대표관직(경력) : 법제처장/고려대학교 총장/신민당 총재 ------------------------------------------------------------------------------------------------------------------------------------- 1906년∼1987년. 법학자·교육 행정가·정치인. 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현민(玄民). 서울 출생이다. 아버지는 궁내부 제도국 참사관..

홍임(洪任) 묘 - 희빈홍씨의 조부

■ 희빈홍씨(熙嬪 洪氏) / 중종의 빈(嬪) [생년] 1494년(성종 25) 4월 14일 [졸년] 1581년(선조 5) 11월 6일 /壽88歲 [본관] 남양(南陽) [부친] 홍경주(洪景舟) [어머니] 안동권씨 [자녀] 장자 : 금원군 이령 차자 : 봉성군 이완 [백부] 홍경림(洪景霖) /공조판서 [조부] 홍임(洪任) / 영암군수 [조모] 양천 허씨『허손(許蓀)의 딸』 [백모] 함양 여씨『여충보(呂忠輔)의 딸)』 -------------------------------------------------------------------------------------------------------------------------------------- 조선 중종의 후궁. 아버지는 이조 판서를 지낸 홍경주(洪..

1.21사태, 무장공비 생존자....김신조 목사 인터뷰

1.21사태 때,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무장공비~~~김신조 목사 인터뷰 “김일성은 당시 남한의 산업발전이 박정희대통령의 공로라는 걸 인정했어요. 더 시간이 지나면 한국의 공산화가 힘들 것이라고 판단해 빨리 죽이려고 한 겁니다. 김신조 일당은 1968년 1월 21일 밤 청와대 약 300여m 앞에서 최규식 당시 종로경찰서장에게 저지당하자 총격전을 시작했다. 김목사는 “당시 수경사 30대대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는데, 이 부대와의 교전에서 께지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생포될 당시의 상황에 대해 “내가 수류탄을 깠는데 불발이 되서 잡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냥 손들고 나온것”이라며, “당시 26세인데 김일성을 위해 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고 했다. ▲ 김신조 목사 인터뷰 동영..

박용만과 그의시대(책 내용중에 평한 이상설)

'박용만과 그의 시대' -칼을 어루만지며 길게 노래하며 (25) 애국동지 대표회 연해주대표 이상설 (2) 이상설은 원래가 조용한사람이었다. 아무 때나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동지들은 합심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광복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고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버리고 내 제사도 지내지 말라." 이상설이 남긴 유언이었다. 자괴의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서전평야(瑞甸平野)에 설립된 ‘서전서숙’은 만주에 독립지사가 세운 최초의 신식 교육기관이었다. 1917년 그가 우수리스크에서 병으로 죽자 동지들은 화장한 재를 강물에 뿌렸다. 공중으로 흩어지고 강물에 흘러간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20..

[동영상]La pioggia(라 피오쟈=비)-질리올라 칭퀘띠(Gigliola Cinquetti)

'La Pioggia'(비)-Gigliola Cinquetti 우리나라에서는 펄시스터즈에 의해 '비'라는 곡으로 사랑을 받기도 한 이곡은 1964년 'Non Ho L'eta(나이도 어린데)'란 곡으로, 산레모 가요제와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를 동시에 석권해버린 질리올라 칭케티(Gigliola Cinquetti)가 부른 곡입니다. 그녀가 이곡을 1969년 'La Pioggia' 로 산레모 가요제에 다시 도전하였으나 Bobby Solo e Iva Zanicchi 에게 우승을 빼앗기고 입상자 명단에만 오르는데 만족해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승곡 'Zingara'란 곡보다 더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였고 당시 한국에서는 그녀의 이전곡 'Non Ho L'eta' 를 비롯하여 'La Pioggia', 'Di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