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薰 113

존경받는 명문가들의 특별한 내력

■ 존경받는 명문가들의 특별한 내력 글; 조용헌 명문가(名門家)는 왜 필요한가? 오랫동안 나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명문가는 필요하다. 사회가 혼란기에 처했을 때 명문가의 존재가 드러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경제 위기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상황이 되었거나, 이념의 갈등으로 사회적 분열이 심화되었을 때 명문가의 존재가 부각된다. 명문가가 명문가인 이유 명문가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집안을 가리킨다. 존경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존경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한 역사적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평소에 존경이 축적되어 있어야만 난세에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론을 통합시키는 힘이 있다. 존경이 없으면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적 위기야말로 사회적 지..

사당의 위폐에「선생(先生)」 뒤에는 「신위(神位)」 라는 글자가 없다.

사당(祠堂)의 위폐에「선생(先生)」 뒤에는「신위(神位)」라는 글자가 없다.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 239-1에 소재 태화서원(太和書院)에서 향사를 지냈다. 다리가 있는 제상 위의 작은 의자에 모셔진 '신주(神主)'에 모두 '표암 이선생(瓢巖 李先生)' 소판 이선생(蘇判 李先生)' '열헌 이선생(悅軒 李先生)' . '동암 이선생(東菴 李先生)' '익재 이선생(益齋 李先生)' '백사 이선생(白沙 李先生) 이라 씌여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 부군 신위(學生府君神位)' 에서와 같이 '신위(神位)' 라는 글자가 씌어 있지 않다. 양호 단소에도 위패(位牌)인 '신주(神主)'에 '신위(神位)' 라는 글자가 빠져있고 대신 '독(櫝)'자가 씌어 있다. 복야공 열헌선생 독(僕射公 悅軒先生 櫝), 문정공 동암선생 독(文定公..

병자록(丙子錄)/나만갑 저

병자록(丙子錄) 정묘사월십구일(丁卯四月十九日) 朝鮮國王臣。姓諱。右伏以神旌遄曰方玆滌瑕 ● 042 之澤。壤奠雖微。敢效執深之誠。謹備。黃細苧布。三十匹。白細苧布二十匹。兩色綿細一百匹白布一百匹。白木綿一千匹。龍文簾席二張。黃花席一十張。滿花席二十張。雉采花席一十五張。豹皮一十張。獺皮三十張。白綿紙一千卷。粘六張。厚油紙三部。粘四張。厚油紙三部。黃毛筆一百枝。油煤墨五十張。乾柿子三十貼。黃栗十五十。乾鰒魚一十貼。乾□魚一十尾。右件物等。製送非精。名般不腆。雖自表其衷悃。豈足稱於享儀。臣無任兢惶激切之至。謹隨封表。進聞。朝鮮國王臣姓諱。謹備中宮殿下。進獻禮物。紅細苧布。二十匹。白布三十匹。滿花席一十張。絹彩花席一十張。右件物等。謹奉進以聞。伏以至大無外。旣荷穹昊之仁。繼以有臨。特行重雷之澤。心肝含感。頂踵知榮。伏念臣鯷岑。僻居蛙井陋識。襲先祖之壁轍久矣。執迷致王師之□征。安所逃命。..

항일투쟁의 원로 이상설선생.

■항일투쟁의 원로 이상설선생. 글(1972. 01) : 광복회 회원 이용화 이상설(李相卨, 1870(고종 7)∼1917)선생은 당시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우리나라 독립기관의 최고 지도자였으므로 북경. 상해. 북간도. 미주등지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이곳으로 오면 으례 선생을 찾고, 국권회복을 위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의논하였다. 네델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참석하려던 밀사의 사명이 싪패로 끝나자, 이상설선생은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호소하고 국권(國權)을 회복하기 위해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때 이상설선생은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후대를 받았는데, 루우즈벨트 미국대통령은 사견례(私見禮)로써 면접을 하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 한교(在美韓僑)들..

이성서(李成瑞) - 고려

■ 이성서(李成瑞) 1319년(충숙왕 6) ∼1379(우왕 5).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부(鷄林府) 출신으로 1351년(충정왕 3)에 밀직부사가 되고, 이듬해인 1352년(공민왕 1)에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해에 동지밀직사사에 승진되고 다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거쳐 1361년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남행(南幸)하게 되자 양광도도순문 겸 병마사(楊廣道都巡問兼兵馬使)가 되어 이를 막아 싸웠다. 1363년에 일어난 흥왕사(興王寺)의 변(變) 때 최영(崔瑩)과 함께 이를 토벌한 공으로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고, 흥왕토적공신(興王討賊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왕이 안동으로 남행하였을 때 호종(扈從)한 공으로 다시 첨병보좌공신..

이씨의 대표적인 관향

■ 이씨의 대표적인 관향 李氏의본관은 문헌에 451본 또는 546본이 전해지나 시조가 밝혀진 것은 120본 안팎이며, 100본 정도가 현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 주요한 것은 경주(慶州)·전주(全州)·연안(延安)·전의(全義)·광주(廣州)·한산(韓山)·덕수(德水)·용인(龍仁)·여주(驪州)·성주(星州)·벽진(碧珍)·고성(固城)·우봉(牛峰)·진성(眞城)·함평(咸平)·영천(永川)·평창(平昌)·합천(陜川)·인천(仁川)·청해(靑海)·공주(公州)·양성(陽城)·부평(富平)·단양(丹陽)·수안(遂安)·광산(光山)·원주(原州)·재령(載寧)·우계(羽溪)·청주(淸州)·성산(星山)·함안(咸安)·안성(安城)·흥양(興陽)·홍주(洪州)·신평(新平)·덕산(德山)·고부(古阜)·청안(淸安)·수원(水原)·하빈(河濱)·안악(安岳)·진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재임기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재임기간 대(代) 대통령 성명 생졸년 재임기간 본관 초대 이승만 (李承晩) 1875.04.18~ 1965.07.19 1948.07.24~ 1952.08.14 전주(全州) 2대 1952.08.15~ 1956.08.14 3대 1956.08.15~ 1960.04.24 과도내각 허 정 (許 政) 1896.04.08~ 1988.09.18 1960.04.20~ 1960.06.16 김해(金海) 〃 곽상훈 (郭尙勳) 1896.10.21~ 1980.01.19 1960.06.17~ 1960.06.22 현풍(玄風) 〃 허 정 (許 政) 1896.04.08 ~ 1988.09.18 1960.06.23~ 1960.08.11 김해(金海) 4대 윤보선 (尹潽善) 1897.08.26~ 1990.07.18 1960..

구 안동김씨(舊 安東金氏).

■ 구 안동김씨(舊 安東金氏) [유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충렬공 김방경(金方慶)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으로,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계 파] 김방경의 6세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제학공파(提學公派) : 김익달(益達)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 김사렴(士廉) ◇의익원공파(翼元公派) : 김사형(士衡) - 조선개국 1등공신. 태종때 좌정승에 올랐다. ◇군사공파(郡事公派:) : 김칠양(七陽) ◇대사..

신 안동김씨(新 安東金氏)

■신. 안동김씨 [유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전주이씨 시조 이한 묘 조경단(肇慶壇)

■조경단(肇慶壇)의 유례 전라북도 기념물 제3호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후 전주이씨의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만들기 위하여 그의 22대조가 되는 시조 사공(司空) 이한(李翰)의 묘가 전주의 건지산(100.5m) 기슭 어딘가에 에 있다는 설에 따라 많은 지사들과 사람들을 동원하여 찾도록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후 역대 왕들도 시조공의 묘를 찾기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영조는 묘지를 찾지못하자 유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영조 47년(1771) 시조 이한과 배위 경주김씨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祠堂)을 오늘날의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慶基殿) 경내에 건립하였다. 조경단(肇慶壇)은 덕진에서 약 1km 들어간 건지산(乾止山, 103m)에 있으며, 광무 3년(1899년) 5월에 이곳에 단을 쌓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