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성씨별관향

신 안동김씨(新 安東金氏)

야촌(1) 2013. 7. 4. 00:15

■신. 안동김씨

 

[유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 장정필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시조 권행과 김선평, 장정필을 모시기 위해 983년(고려 성종 2년)에 세운 삼태사묘는 경북 안동시 북문동 24번지에 있으며 매년 2월과 8월에 제향한다.

 

[계 파]

지철파, 원수파, 열파 등 3파가 있다.

 

[대표적 인물]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비유로 삼는데, 특히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더 알려졌다.

 

●김계행(金係行) : 세종13(1431년) ~ 중종(1521년), 조선의 문신. 호는 보백당, 세종29년 진사(進士)가 되고 김종직과 교유,성주/충주의 교수(敎授)등을 지냈으며 그후 삼사(三司)의 벼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안동의 묵계서원 (默溪書院)에 제향, 시호는 정헌(定獻)

 

●김 영(金 瑛) : 성종6(1475년) ~ , 조선의 문신. 호는 삼당, 중종1년 별시문과(別詩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승지(承旨)를 거쳐 1527년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김 번 : 성종10(1479년) ~ 중종39(1544년), 조선의 문신. 연산군 4년 진사가되고,중종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사관을 거쳐 1515년 전적(典籍), 이듬해 정언(正言)을 지냈다. 1518년 공조정랑(工曹正郞)을 지낸후 평양서윤(庶尹)으로 나갔다.


●김상준(金尙寯) : 명종16년(1561년) ~ 인조13년(1635년), 조선의 문신. 호는 휴암, 선조15년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뒤 병조좌랑,해주목사, 축주부사를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며, 글씨를 잘썼다.


●김상용(金尙容) : 명종16년(1561년) ~ 인조13년(1635년), 조선의 문신. 호는 선원,풍계,선조15년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丙科)에 급제, 검열(檢閱)에 등용되어 상신 정철(鄭撤), 판서 김찬(金瓚)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있었다. 선조32년 정주,상주의 목사를 역임하고, 광해군때에 승지,대사헌,형조판서를지냈다.

 

인조 10년 우의정에 임명되자, 노령으로 거듭 사임할 것을 청하여 마침내 하락받았다.

글씨에 뛰어났고, 서체는 이왕체를 본뜨고 전(篆)은 중체를 겸했으며, 시조는 유고(遺稿)로 오륜가 5편,훈계 자손가 9편,그 밖에 '가곡류'등에 여러편이 있다.

 

강화의 충렬사, 양주의석실서원, 상주의 서산서원, 안변의 옥동서원, 정주의 봉명서원에 제향(祭享), 시호는문충(文忠)이다.


●김상헌(金尙憲) : 선조3년(1570년) ~ 효종3년(1652년), 조선의 문신. 호는 청음,석실산인, 선조2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1608년(광해군 즉위) 문과중시에 을과로 각각 급제, 정언,교리,직제학 등을 역임, 대사간,도승지,대사헌,대사성, 대제학을 거쳐 예조,공조,형조,이조의 판서를 거쳐 좌의정을 역임했다.

 

글씨는 동기창체를 잘썼다. 효종(孝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김광욱(金光煜) : 선조13년(1580년) ~ 효종7년(1656년),조선의 문신. 호는 죽소,선조2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예문관검열을 거쳐 광해군3년 정언이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 형조판서를 지냈다.


●김중청(金中淸) : 명종22년 ~ 인조 7년, 조선의 문신. 호는 만퇴헌,구전, 광해군 2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전적, 예조 정랑을 역임. 봉화의 반천서원에 제향

 

●김광환(金光煥) : 선조12년 ~ 인조 20년, 조선의 문신. 호는 수북, 광해군 4년 생원,진사 두시험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으로 문과를 단념,162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관으로 추천되었다. 청주목사로 있으면서 청나라 연호가 적힌 문서에는 서명을 하지 않았다. 전서,해서를 잘썼다.


●김수익(金壽翼) : 선조33년 ~ 현종14년, 조선의 문신. 호는 청악,현령, 인조 2년 사마시에 합격 참봉이 되고,163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적,예조랑,지제교 등을 역임했다. 시호는 충경(忠景)

 

●김중일(金重鎰) : 선조35년~조선의 문신. 인조 2년 사마시에 합격, 참봉이 되고 163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전전적으로 등용되었다. 인조23년 전적으로 보직되고 이어 3사,세자시강원의 벼슬을 거쳐 승지, 뒤에 풍덕부사에 이르렀다.


●김광혁(金光爀) : 선조23년 ~ 인조 21년, 조선의 문신. 호는 동림, 일찌기 진사가 되었으나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보고 벼슬을 단념했다. 인조1년 참봉을 거쳐 이듬해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기용, 뒤에 설서를 지내고, 예문관,홍문관의 수찬,교리를 역임했다.


●김주우(金柱宇) : 선조31년 ~ 인조 22년, 조선의 문신. 호는 이면, 15세에 사마시에 합격, 인조2년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지평을 거쳐 울진 현령에 재직중 죽었다. 글씨에 능했다.


●김수항(金壽恒) : 인조 7년~숙종 15년, 조선의 문신. 호는 문곡, 인조 24년 사마시를 거쳐 1651년 알성문과에 장원, 1656년 무과중시에 을과로 급제, 정언,교리등 여러 청환직을 거쳐 이조정랑,대사간에 오르고 1659년 승지가 되었고 현종 2년(1661) 이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대제학에 특진, 예조판서,대사헌,이조판서 등을 거쳐 1672년 우의정이 되었다.

 

이어 좌의정을 지내고, 이듬해 판중추부사가 되어 사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1년 '현종실록'편찬 총재관을지냈다. 전서를 잘 썼으며, 현종 묘정에 배향, 영평의 옥병서원에 제향, 시호는 문충(文忠)


●김창협(金昌協) : 효종 2년 ~ 숙종 34년, 조선의 문신. 호는 농암, 현종10년 진사가 되고, 숙종8년 증광문과에 장원 이조정랑,수찬,교리,지평,집의,헌납,대사간,동부승지,대사성 등을 역임, 문학과 유학의 대가로 문장에 능했고, 글씨도 잘썼다.

 

학설은 이기설에 있어서 이이보다는 이황에 가까왔고, 호론을 지지했다. 시호는 문간, 숙종의 묘정에 배향, 양주의 석실서원, 영암의 녹동서원에 제향

 

●김창집(金昌集) : 인조 26년 ~ 경종 2년, 조선의 문신, 노론의 4대신의 한 사람. 호는 몽와, 현종 13년 진사가 되고, 숙종 7년 내시교관을 지낸후 1684년 공조좌랑으로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언,병조참의를 역임했다.

 

숙종 31년 지돈령부사를 거쳐 이듬해 한성부 판윤,우의정, 이어 좌의정을 지내고, 1721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 1717년 영의정에 올랐다. 영조의 묘정에 배향, 과천의 사충서원, 거제의 반곡서원에 제향, 시호는 충헌(忠獻).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초현리와 율촌리에는 7대, 8대, 9대, 10대조 묘소 등이 소재한다)


●김창흡(金昌翕) : 효종 4년 ~ 경종 2년, 조선의 학자. 호는 삼연, 현종14년 진사가 되고,1684년 장악원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경종 2년 세제시강원진선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성리학에 밝아 형 창협과 더불어 이름이 있었으며 형제가 모두 이이 이후의 대학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 강릉의 호해정 영당에 제향,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김조순(金祖淳) : 영조 41년 ~ 순조 31년, 조선의 문신. 호는 풍고, 정조 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 규장각 대교를 거쳐 1792년 동시겸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서 직각, 1798년 이조참의, 1800년 승지가 되었다.

 

순조 즉위 후 부제학(副提學)·행호군(行護軍)·병조판서·이조판서·선혜청제조(宣惠廳提調) 등 여러 요직이 제수되었으나 항상 조심하는 태도로 사양하였다.

 

순조2년 총융사,양관대제학 등을 역임, 이 해 딸이 순조의 비(순원왕후)로 봉해지자 영돈령부사가 되고 영안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철종 때의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문장에 능하고, 죽화를 잘그렸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 양주의 석실서원,여주,이천의 현암서원에 제향, 시호는 충문(忠文)


●김 입(金 笠) : 순조 7년 ~ 철종 14년, 조선의 방랑시인.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순조 11년 홍경래의 난 때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 항복한 죄로 폐족되고, 자손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젊어서부터 전국을 방랑, 재치있는 시구로써 세상을 풍자했으며,도처에서 해학과 풍자가 담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들로부터 여러차례 귀가를 권유받았으나 방랑을 계속, 전라도 동복(화순군)에서 객사, 강원도 영월에 묻혔다.


●김병덕(金炳德) : 순조 25년 ~ 고종 29년, 조선의 문신. 호는 약산, 헌종 1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고, 고종 4년이후 세 번 이조판서를지냈으며, 1880년 통리기무아문 당상, 이어서 평안도 관찰사,수원부유수, 독판군국사무,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1885년 좌의정, 후에 총리군국사무가 되어 고종 28년 치사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김병시(金炳始) : 순조 32년~광무 2년, 조선의 대신. 호는 용암, 철종 6년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철종 11년 교리, 1862년 이조참의 등을 지내고, 철종13년 총융사,어영대장,무영도통사 등의 무관직을 역임했고, 고종 7년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1896년(건양1) 아관파천으로 왕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들어간 직후 친로파 중심의 내각이 조직되어 내각 총리대신에 끝까지 개국을 반대했고, 1895년의 단발령에도 특진관으로 있으면서 반대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김성근(金聲根) : 헌종 1년(1835) ~ 1919, 문신, 서예가. 호는 해사, 철종 1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에서 홍문관 벼슬을 거쳐 도승지,전라도 관찰사,이조참판,내무독판,예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했다.

 

고종31년 동학혁명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광무2년(1898) 특진관에서 의정부참정에 승진, 1901년에 장례원경,의정부찬정,규장각학사,홍문관 학사를 지냈으며, 1902년 탁지부대신이 되었다.

 

1904년 기로소에 들어가고,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자작이 되었다.

청렴 결백했고 서예에 뛰어났으며 필체는 미남궁체였다.


●김석진(金奭鎭) : 헌종 9년~융희 4년(1910) 조선의 문임, 의열사. 호는 오천, 철종1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후 종친부벼슬을 거쳐 사과,전적 등을 역임. 1896년 특진관, 이어 비서원경,장례원경,귀족원경 등을 역임하고 1901(광무 5)년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의 상소를 하여 조약에 찬성 날인한 5적신의 처형을 주장했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음독 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김가진(金嘉鎭) : 1846년(헌종 12년) ~ 1922년,정치가, 항일운동가. 호는 동농, 고종 2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수찬, 주차일본공사관참찬관,장령,사복시정,동부승지 등을 거쳐 주일본 판사대신으로 수년간 동경에 주재했다.

 

귀국하여 공조판서,농상공부대신,황해도 관찰사,중추원의장,대한협회 회장등 많은 내외 요직을 지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에 의해 남작이 되었으나 거절하고 독립운동에 투신, 3.1운동에 참가했다.

 

그후 대동단에 가담하여 고문에 추대되고, 1920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하다가 병사했다.

한학에 능통하고 서예에도 뛰어났다.


●김옥균(金玉均) : 철종 2년(1851) ~ 고종 31년(1894), 조선의 정치가. 호는 고균,고우,고종9년 알성문과에 장원, 전을 거쳐 1874년 교리,정언을 역임했다. 1881년 일본의 선진 문물을 돌아보고 귀국, 이듬해 수신사 박영효 일해의 고문으로 다시 도일,일본에서 17만원의 차관을 얻고 1883년에 돌아왔다.

 

서재필등 청년들을 일본에 유학시키고 박영효,서광범,홍영식과 함께 박규수 집에 모여 교유하며 국가의 개화를위한 방안을 토의하다가, 1884년(고종21) 도일하여 군인양성을 위해 일본에 3백만원의 차관을 교섭했으나 실패했다.

 

개화당 정치인들을 규합하여 신축되는 우정국 낙성연을 계기로 수구파를 제거할 것을 계획하고 비밀히 고종에게 개혁안을 상주하여 신임을 얻었다. 이 해 일본공사 다께조에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고 이를 배경으로 우정국 낙성연에서 한직등 수구파들을 제거하고 정변(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날 조직된 새 내각에 호조참판으로 국가 재정의 실권을 잡았으나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 10년간 본국 정부의 자객들을 피해 일본 각지를 방랑한 후 1894년 상해로 건너갔다가 동화양행 객실에서 본국 정부의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당했다.

 

시신은 본국으로 옮겨져 양화지에서 능지처참 되었다. 갑오경장으로 개화당 내각이 조직된 이듬해 법무대신 서광범과 총리 김홍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되고,1920(융희4)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 시호는 충달(忠達)이다.


●김복한(金福漢) : 철종 11년(1860) ~ , 의사(義士). 호는 지산, 고종29년(1892)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사서,대사성,형조참의,승지가 되었으나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설,안병찬 등과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피체, 서대문 감옥에 수감, 이듬해 특지로 석방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설과 함께 이완용 등 매국 5적을 참수하라고 상소하여 다시 투옥, 뒤에 석방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후에는 두문불출, 1919년 3월 유림 대표로 곽종석 등과 함께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발송했다가 피체,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김좌진(金佐鎭) : 고종 26년(1889) ~ 1930, 독립운동가. 호는 백야, 15세때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여 근대화에 앞장섰으며 이듬해 호명학교를 설립했다.

 

을사조약 체결후 상경하여 대한협회,기호학회, 청년학우회 등의 간부를 지내고, 1913년 대한공복단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하는 중 1915년 체포되어 3년간 복역했다.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를 선봉, 1919년 서일 등과 군정부를 조직하고 이를 북로군정서로개편, 총사령관에 취임하고, 왕청현 십리평에 사관연성소를 설치하였다. 이듬해 북로군정서의 군대를 동원하여 청산리전투를 총 지휘 일본군 제19,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독립군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그 후 부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 이동, 대한독립군단을 결성, 부총재로 취임하고,일본군의 보복작전을 피애 1921년 노령 자유시에 이동했다가 이듬해 흑하사변으로 타격을 받고 다시 만주로 들어왔다.

 

1925년 영안에서 신민부를 조직,군사집행위원장이 되고 이어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정예군 양성에 공헌, 그 동안 임시 정부로부터 군무총장,국무위원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 오직 독립군 양성에만 전력했다.

 

1929년 한족연합회를 결성, 주석이 되어 항일투쟁과 동포의 단결에 힘쓰다가 이듬해 과거의 부하였던 고려공산청년회의 김일성,박상실 등에게 영안현 중동로 산시역 자택앞 정미소에서 암살당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 훈장중장이 수여되었다.

 

[근대인물]

◇김성진 (서울의대교수, 전 보사부장관, 국회의원)

◇김성진 (전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문공부장관)

◇김익진 (전검찰총장, 대법관)

◇김정진 (통일원 기획관리실장)

◇김수한 김대진 김성락 김중한 김익기 김두한 김시현 (전 국회의원)

◇김방한 (서울대교수)

◇김흥한 (국무총리비서실장, 변호사)

◇김노한 (강원,경북도지사, 부산시장, 서울대법대 교수, 문교부차관)

◇김복동 (광업진흥공사사장)

◇김영동 (신동아화재해상보험대표이사)

◇김동명 (육군 준장)

◇김동회 (종근당 대표이사)

◇김충현 (서예가, 오산학원이사장)

◇김명년 (서울지하철본부장, 서울시부시장)

 

[기타]

[인구]

47,702명(2000년)

 

[항렬표]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28세
순(淳) 근(根) 병(炳) 규(圭) 진(鎭) 한(漢) 동(東)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현(顯),묵(默) 년(年) 일(鎰) 구(求) 모(模) 연(然) 배(培)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선(銑) 원(源) 영(榮) 사(思) 준(埈) 선(善) 택(澤)
43세 44세 45세



식(植) 환(煥) 철(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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