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문왕(文王) 이름은 대흠무(大欽茂). 무왕의 아들이다. 1980년에 발견된 정효공주묘비(貞孝公主墓碑)에 의하면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 (大興寶曆金輪聖法大王)의 존호를 사용하였다 한다. 737년에 즉위하여 연호를 대흥(大興)이라 하였고, 774년(대흥 38) 보력(寶曆)으로 개원(改元)하였다가 다시 대흥의 연호를 쓰게 되어 병몰할 때까지 그 연호를 지켰다. 1948년 돈화현(敦化縣) 육정산(六頂山)에서 출토된 정혜공주묘의 비문을 보면 ‘보력’이라는 연호가 7년 이상 쓰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왕은 고왕 대조영(大祚榮)이래 30년간의 수도였던 지금의 돈화분지(敦化盆地)안에 있는 오동성(敷東城)의 비좁은 지역을 벗어나 두만강 하류로 흘러들어가는 해란하(海蘭河)유역에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목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