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발해 인물

제3대 문왕(文王) - 재위 737∼794

야촌(1) 2013. 9. 17. 23:28

제3대 문왕(文王)

 

이름은 대흠무(大欽茂). 무왕의 아들이다. 1980년에 발견된 정효공주묘비(貞孝公主墓碑)에 의하면 대흥보력금륜성법대왕 (大興寶曆金輪聖法大王)의 존호를 사용하였다 한다.

 

737년에 즉위하여 연호를 대흥(大興)이라 하였고, 774년(대흥 38) 보력(寶曆)으로 개원(改元)하였다가 다시 대흥의 연호를 쓰게 되어 병몰할 때까지 그 연호를 지켰다. 1948년 돈화현(敦化縣) 육정산(六頂山)에서 출토된 정혜공주묘의 비문을 보면 ‘보력’이라는 연호가 7년 이상 쓰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왕은 고왕 대조영(大祚榮)이래 30년간의 수도였던 지금의 돈화분지(敦化盆地)안에 있는 오동성(敷東城)의 비좁은 지역을 벗어나 두만강 하류로 흘러들어가는 해란하(海蘭河)유역에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목단강(牧丹江)유역에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그리고 지금의 혼춘현(琿春縣) 반랍성(半拉城)에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구축하여 천도를 거듭하였다.

 

《신당서》 발해전에 ‘구국(舊國)’으로 적혀 있는 오동성은 주위의 길이가 1,000m에 못 미치는 넓이이므로 이미 그 부근뿐 아니라 무왕 때 연해주 남부까지 합쳐 해상으로 일본과 통교하던 발해국의 수도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비하면 747∼751년경에 천도하여 755년까지 수도였던 중경현덕부는 철과 포(布)·쌀의 생산으로 발해국의 산업중심지였으며, 755년에서 문왕이 약 30년간 수도로 하였던 상경용천부는 뒷날 다시 수도가 되어 발해국이 멸망할 때까지 약 130년간의 수도가 된 곳이다.

 

그리고 다시 785년경에 천도한 동경용원부는 《신당서》 발해전에 일본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상교통의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왕 때의 천도는 발해국의 성장에 따라 그에 상응한 보다 넓은 지역에 자리잡은 수도의 건설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경·상경·동경의 위치가 동부 만주지역인 것은 곧 발해국의 발전방향을 나타내주고 있다.

문왕 대흥 25년(762)에 당나라가 종래 ‘발해군’이라고 호칭하던 것을 ‘발해국’으로 바꾸고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책봉하였던 것은 그러한 발해국의 성세를 인정함이었다. 문왕의 재위기간중 일본과 수차례에 걸쳐 사신이 내왕하였다.

 

[참고문헌 : 新唐書]

◇唐代渤海上京龍泉府遺址(陳顯昌, 文物, 1980―9)

◇唐代渤海貞惠公主墓志和貞孝公主墓志(王承禮, 社會科學戰線, 19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