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소서노(召西奴) - 백제 건국왕 온조의 어머니

■ 백제의 소서노(召西奴) ◇시대 : 백제 ◇생몰년 : 미상 ◇활동분야 : 비류, 온조의 어머니 생몰년 미상. 백제건국설화에 등장하는 비류(沸流)· 온조(溫祚)의 어머니. 백제의 건국설화로는 온조왕을 시조로 한 것과 비류왕을 시조로 한 것 등이 있는데, 그는 비류왕을 시조로 전하는 건국설화에만 등장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그녀는 졸본인(卒本人) 연타발(延陀勃)의 딸로서 처음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 우태(優台)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죽은 뒤 한동안 졸본에서 과부로 살다가, 부여에서 이곳으로 도망해와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朱蒙)과 재혼하였고, 고구려의 창업을 위하여 많은 내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혼인한 예씨(禮氏)의 소생 유류(儒留, 일명 類..

김일손선생년보발(金馹孫先生年譜跋)

서숙고탁영선생년보발 (書叔考濯纓先生年譜跋) 金大有(朝鮮) 編 이 글은 무신 1548년(명종 3)에 삼족당 김대유(三足堂 金大有)가 지은 것이다. 삼족당의 숙부인 김일손(金馹孫)의 년보(年譜)에 붙은 발문으로,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선생은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의 문하에서 성리를 탐구하고 문장을 익혔다. 한원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주계군 이심원(朱溪君 李深遠)과는 도의로 사귀었고, 재사당 이원(再思堂 李黿), 망헌 이주(忘軒 李冑)와는 문장으로 사귀었고, 동봉 김시습(東峰 金時習)ㆍ추강 남효온(秋江 南孝溫)ㆍ안정 신영희(安亭 辛永禧)ㆍ소총 홍유손(篠叢 洪裕孫)은 山林의 친구이며, 무풍정 이종(茂豊正 李摠=秀泉과는 음률(音律-음악의 ..

黃江의 아침 - 全斗煥

[1] 黃江의 아침 全斗煥 前大統領의 출생과 가정환경 全斗煥 前大統領은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慶南 陜川郡 栗谷面 內川里) 264번지에서 아버지 전상우「全相禹, 일명 相祐, 1898(고종 35). 01. 08~1966, 03. 02」와 어머니 김점문「金点文, 1898년(고종 35). 01.09~1978. 04. 10」사이에 5남 4녀의 9남매중 여섯번째로 태어났다. 全斗煥 前大統領의 本寬은 완산(完山=全州)으로서 백제 온조(溫祚) 때의 개국공신인 도시조(都始祖) 환성군(歡城君) 전섭(全聶)의 52世손이며, 이태조(李太祖)를 도와 홍건적(紅巾賊-중국 원나라 말기에 일어난 도둑의 무리)을 물리친 完山君(諡號 忠貞) 집(集)의 23世손이다. 또 임진왜란때 영산현감(靈山縣監-從六品)으..

유일한(柳一韓)

■ 유일한(柳一韓) 1895년∼1971년의 실업가. 평양 출생. 아버지는 상인이었던 기연(基淵)이며, 어머니는 김확실(金確實, 개명 후 김기복)로 9남매 중 맏아들이다. 주식회사 유한양행(柳韓洋行) 창업자이다. 1904년 9세 때 선교사를 따라 미국에 건너갔다.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상학석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스탠포드대학원에서 3년간 법학을 전공하였다. 학업을 마친 뒤 전자회사 사원으로 잠시 근무하다가, 1922년 자립하여 숙주나물을 취급하는 라초이식품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25년까지 50여만 달러의 거금을 벌었다. 1926년 3월에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귀국하였다. 그해 12월 유한양행을 설립하였다. 1934년에는 독일의 도마크(Domagk, G. )박사에 의하..

이종준(李宗準)/경주이씨 월성군파

■ 27世 이종준(李宗準) [생졸년] 이종준『李宗準, 1458년(추정) ~ 1499년(연산군 5)』 [본관] 경주(慶州) [자] 중균(仲均) [호] 용재(慵齋) [출생지] 안동(安東) 금계(金溪) [생졸년] 1454년(세조 元年)∼1499년(연산군 5). [분묘소재지] 안동(安東) 금계(金溪) [과거] 1477년(성종 8) 진사시(進士試) 합격, 문과> 성종(成宗) 16년 (1485) 을사(乙巳) 별시(別試) 일등(一等) 2위 [내관직]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외관직] 북평사(北評事), 의성현령(義城縣令) [증직 및 기타]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

이성서(李成瑞) - 고려

■ 이성서(李成瑞) 1319년(충숙왕 6) ∼1379(우왕 5).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부(鷄林府) 출신으로 1351년(충정왕 3)에 밀직부사가 되고, 이듬해인 1352년(공민왕 1)에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해에 동지밀직사사에 승진되고 다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거쳐 1361년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남행(南幸)하게 되자 양광도도순문 겸 병마사(楊廣道都巡問兼兵馬使)가 되어 이를 막아 싸웠다. 1363년에 일어난 흥왕사(興王寺)의 변(變) 때 최영(崔瑩)과 함께 이를 토벌한 공으로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고, 흥왕토적공신(興王討賊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왕이 안동으로 남행하였을 때 호종(扈從)한 공으로 다시 첨병보좌공신..

안향(安珦) 문하(門下)의 육군자(六君子)

■ 안향 문하의 육군자(安珦 門下의 六君子) 성리학의 본향인 송나라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송조육현(宋朝六賢)이라고 부른다. 이는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 주희(주자)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문하에 이름난 여섯 학자를 육군자라고 해 추앙해 마지않았다. 육군자는 국재 권부((菊齋 權溥) , 동암 이진(東菴 李瑱), 역동 우탁(易東 禹倬), 매운당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이재 백이정(彝齋 白頤正), 덕재 신천(德齋 德齋)등을 일컫는다. 고려 말의 대학자요. 정치가였던 익재 이제현이 동암의 아들이며, 국재 권부의 사위며, 백이정의 문인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안향의 학문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안향이 세상을 떠날 때 백이정, 권부 등 문인들에게 “나는 학문이 그대..

안향(安珦)

■ 안향(安珦) [개설] 1243년(고종 30) ~ 1306년(충렬왕 32), 경상북도 흥주(興州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초명은 유(裕)였으나 뒤에 향(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아버지는 밀직부사부(孚)이며, 어머니는 강주 우씨(剛州禹氏)로 예빈승(禮賓丞) 성윤(成允)의 딸이다.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1260년(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郎)이 되고, 이어서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자리를 옮겼..

이전인(李全仁)

■ 이전인(李全仁) 여과아자야(汝果我子也) : 너는 과연 내 아들이니라.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은 젊은 시절에 정을 둔 기생(妓生)이 있었다. 그녀가 임신(姙娠)한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지사(知事: 知中樞府事 등 정2품부터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종3품까지의 벼슬)로 있던 조윤손(曺潤孫)이 그녀를 보고 마음에 들어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해산달이 되어 아들을 낳자, 조윤손은 이름을 '옥결(玉缺)'이라 지었고, 장성(長成)하자 후사(後嗣)로 삼고 집과 논밭, 노비(奴婢)들을 문서(文書)로 작성하여 주었다. 이언적이 조윤손에게 장난삼아 말했다. "첩(妾)이야 공이 마음대로 가지지만, 아들놈은 어째서 돌려보내지 않습니까?" 조윤손은 그저 한 차례 웃을 뿐이었다. 조윤손이 죽자 조옥결(曺玉缺)은 장례를 치르고..

수로왕(首露王)

가야국 제1대 수로왕(首露王) 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다.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族長)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