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조선 왕조 계보도

■조선왕조 계보도(1392년~1910년/518년간, 총27대) 대 왕명 재위기간 업적 및 사건 1 태조 1335-1398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 1398-1400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뜻이 없었으나 이방원의 뜻으로 왕이 됨. 3 태종 1400-1418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고 조선왕조의 기틀 마련함. 4 세종 1418-1450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 연구, 훈민정음 창제, 장영실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 5 문종 1450-1452 세종대왕의 장남. 병약하여 왕위에 오른지 3년 만에 사망하였다. 6 단종 1452-1455 아버지 문종이 단명하여 12세에 보위에 올라 왕권이 위태로웠다. 7..

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 망국 보고서/량치차오

중국인이 쓴 통한의 조선 망국 보고서 한겨레신문 2014.08.10 이토히로부미와 함께 있는 황태자 영친왕. 이토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순종을 세운 뒤, 초대통감 자리를 내놓고, 영친왕의 태사가 되어 마치 보모처럼 데리고 다녔다.(글 항아리 제공)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최형욱 엮고 옮김 ㅣ 글 : 항아리·1만5000원 “나는 눈물이 눈썹에 넘쳐흐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 지금부터 세상에 조선의 역사가 다시 있을 수 없고, 오직 일본 번속 일부분으로서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눈물의 주인공은 조선 백성이 아니다. 눈물은 청나라 말기 변법유신파의 지도자였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의 뺨에 흘렀다. 량치차오는 캉유웨이(康有爲)의 제자로서 무술..

조선의 인구조사

■ 조선의 인구조사 조선의 호패법은 조선 태종 때 이루어졌는데, 조선초의 건국 혼란을 감안하더라도 인구가 7십2만 명으로 나와 있는 기록은 착오인듯하고 약 2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호패법은 현종, 숙종, 영조, 정조대까지 실시되면서 아마 정조대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본다. 병자호란 이후 4백만 명이던 인구가 30년 만에 1백5십만 명이 증가하여 5백5십만 인구로 증가되었다. 태종 12년 18만 246호 x 4명= 약 72만 984명 정도 태종 때의 호구조사 정확하지 않은 듯하다. 조선의 인구는 물론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15-16세기까지 인구가 고속성장을 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다시 평화와 농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무렵 다시 인구가 고속성장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조선의 호구조사는..

역대 339명의 ‘경주부윤’ 탐관 보다 목민관 귀감 많아

역대 339명의 ‘경주부윤’ 탐관 보다 목민관 귀감 많아 2015년 01월 23일 [코리아뉴스넷] ↑목민관의 귀감으로, 부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세워진 경주부윤 선정비가 황성공원 안에 남아 있다.ⓒ (주)경주신문사 천년동안 경주의 중심부요 관아의 심장부였던 경주동헌(慶州東軒). 경주의 수장이었던 부윤이 머물렀던 경주읍성의 중심부로 부민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을 그 곳!. 동부동에 무심히 세워져있는 담배인삼공사 경주지점과 경주상공회의소를 바라본다. 이곳에 경주동헌 ‘일승정(一勝亭)’이 있었다. “유서 깊은 역사를 회고해보면 어찌 깊은 시름과 감흥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는 소당 조철제 선생의 표현이다. 조선시대 경주의 행정, 조세, 세무 병무, 사법의 권한뿐만 아니라 문예를 진흥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사변 ▲명성황후영정(명성황후 생가소장품) ▲명성황후 시해 사건 가담자들>>>이들 중 신문사사장, 장관이 된 일본 지성인도 가담 했다. ▲경운궁 대안문을 나서는 명성황후 장례 행렬. 사진 뒤에 ‘황후의 운구 장면’이라고 적혀 있다. 명성황후(1851~1895) 국장(國葬) 사진 3장이 나왔다.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건축학)는 미국 럿거스대가 소장한 그리피스 컬렉션에서 명성황후 국장 사진을 발견해 7일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새로 발견된 사진은 경운궁 대안문(大安門)을 나서고 있는 장례 행렬, 명성황후의 신백(神魄)을 모신 신련(神輦 : 신주를 모시고 가는 신주가마), 행렬을 따르고 있는 곡궁인(哭宮人)들의 모습이다. 대한제국 선포(1897년 10월12일) 한 달 뒤 치러진 명성황후 국장 사진은 러시아 ..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음양진풍수지리연구소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선인부사도강형(仙人浮楂渡江形) 우리 일행은 선인부사 도강형을 답사하기 위해 천내리(川內里) 입구에 있는 제원교(濟原橋) 옆, 아래 주차장에 차(車)를 세우고 왕릉(王陵)의 예정지로 지정(指定)하여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을 세워둔 곳에서 내력(來歷)을 알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과연 동국(東國)의 제2지라 할 만큼의 국세(局勢)라고는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는 형세(形勢)이니, 하물며 후학인(後學人)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20년 전에 둘러보았던 산(山)하고 지금의 산천(山川)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산(山)을 보고 다니는 사람은 그 산의 특징적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가 보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병오룡(丙午龍) 5得 2破,(5得 ..

금산 부사도강형(錦山 浮楂渡江形)

양박사 2010.02.27. ■금산 부사도강형(錦山 浮楂渡江形 ) ●출발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은 만산도의 결록에도 언급되고 있고 또 東方 第二地라고 評價되고 있는 대혈( 大 穴)이여서 世人들의 관심이 크다. 그동안 國內의 수많은 風水人들이 이곳을 찾을 려고 다녀갔지만 천장비비(天藏地秘-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깊이 묻혀 있음)여서 "결록에는 있지만 사실은 없다", "결록이 틀렸다"는 등 모두 虛事였다. 그러나 故 張益鎬 先師는 1983년 6월 이곳을 답산(踏山)하고 유산록(遊山錄)을 통해 부사도강형(浮楂渡江形)과 차혈(次穴)을 記錄해 놓았으며 浮楂渡江形은 아직 그대로 健在하고 主人을 기다리고 있다. 筆者는 2009년 1월 10일 만산도와 張 先師의 記錄을 바탕으로 錦山郡 濟原面 川內里에 있는 "仙人이 뗏목..

사대사화(四大士禍)

영남파와 기호파로 나눠진 훈구와 사림의 파벌과 사대사화. "기호(畿湖)"란 경기와 호서(충청도).호남(전라도)을 아울러 지칭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기호 지방이라고 하면 전라도도 포함되는 것이다. 영남 지방에는 고려 말에 정몽주(영천 출신), 길재(선산 출신), 정도전(본이 영주 봉화 출신), 하륜(진주) 등의 대학자들이 출현하여 많은 유학자들을 양성하였다. 그 후에도 김숙자(거창, 김종직의 아버지). 김종직(밀양 출신), 김굉필(현풍 출신), 정여창(진주), 이언적(경주), 이황(안동) 등 수 많은 유학자들이 배출되어 추로지향(鄒魯之鄕 : 공자 맹자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성리학이 발달하였고, 영남지방은 사림파의 온상이 되었다. 서울. 경기에는 워낙 벼슬하는 학자,.관료들이 많아 주로 관학적..

삼한지에서 배우는 7가지 리더십

삼한지(三韓誌)에서 배우는 7가지 리더십 ■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사람들이 했던 일에 대한 기억이 없어지는 것을 막고 그들이 받아야 할 당연한 영광의 보상을 소실시키지 않기 위해 ‘역사’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그 전쟁의 책임이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후대 사람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할 목적으로 ‘역사’를 썼다. 키케로는 “역사는 생의 스승이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만일 태어나기 전의 일들을 알지 못한다면 영원히 어린이로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만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동물의 생존방식이 아주 먼 옛날부..

사로6촌(斯盧六村)

■ 사로6촌(斯盧六村) 구 분 (區分)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자산진지촌 (觜山珍支村)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6부명 (6部名) 급량부 及梁部 사량부 沙梁部 본피부 本彼部 점량부 漸梁部 한지부 漢祗部 습비부 習比部 촌장 (村長) 알평 謁平 소벌도리 蘇伐都利 지백호 智伯虎 구례마 俱禮馬 지타 祗陀 호진 虎珍 강림지 (降臨地) 표암봉 瓢巖峰 형산 兄山 화산 花山 이산 伊山 명활산 明活山 금강산 金剛山 후손성씨 (後孫姓氏) 이씨 李氏 최씨· 소씨 崔氏 ·蘇氏 정씨 鄭氏 손씨 孫氏 배씨 裵氏 설씨 薛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