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상복(喪服)

■ 상복(喪服) ◈참최(斬衰) 상례(喪禮)에서 규정한 오복제(五服制) 중의 하나로, 상복 가운데 가장 중하게 여긴다. 참(斬)은 ‘애통함이 심하다’는 뜻이다. 최(衰)는 상(裳)과 반대되는 ‘상의(上衣)’를 말한다. 참최복의 재료로는 베 가운데에서 가장 굵은 생포(生布:가공하지 않은 베)를 사용한다. 참(斬)이란 마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참최복은 생포의 가장자리를 바느질하여 마무르지 않은 채 만든 상복을 말한다. 공자는 '상이 3년에 불과한 것은 백성에게 끝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이라 하였고 『중용(中庸)』에서는 '3년의 상은 천자에 이르기까지 귀천없이 한결같다'고 하였다. 3년은 천하지중(天下之中)에서 상법(象法)을 취한 것이니 3년은 윤(閏)을 형상하고 기(期)는 1년, 9월은 세 계절에 사물이 ..

대 조선 독립단(大朝鮮獨立團)

■ 대 조선 독립단(大朝鮮獨立團) ◈설립자 박용만(朴容萬) ◈설립일시 1919년 3월 ◈해체일시 1933년 박용만(朴容萬)이 1919년 미국 하와이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운동단체로, 호놀룰루에서 단원 350명을 규합하여 1919년 3월에 조직하였다. 이 단체의 목적은 독립운동에 한국민족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원동(遠東)의 각 단체와 더불어 대동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운동자금을 모금, 각지와 연락하여 군사운동을 후원하며, 출판과 외교사업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또, 1919년 갈리히연합회에서 창간한 ≪태평양시사 太平洋時事≫를 인수하여 기관지로 삼았다. 1919년박용만은 하와이를 떠나 중국 북경(北京)에 가서 군사운동단체들과 연락하며 군사통일회를 조직, 군사운동에 노력..

제1차 세계대전시기(1914-1918)의 극동지역 정세

■ 제1차 세계대전시기(1914-1918)의 극동지역 정세 중국-전쟁 중립선언 제1차 세계대전은 열강들 사이의 식민지재분할을 위한 투쟁을 무력적 수단에 호소하게 된 것으로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국제적인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즉 19세기 말부터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독일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세력관계와 영토관계에 심한 불균형이 일어나자 세계적인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은 유럽대전의 발발과 동시에 전화(戰禍)가 자국에게 파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14년 8월 3일 대총통 원세개의 이름으로 중국의 영토, 수역 또는 조차지 등에서의 전투행위 억제를 교전국에 요청했다. 이어 8월 6일 중립규칙 24개조를 발표하고 1차 세계대전에서의 중립입장을 선언했다. 일본-독일의 조차지 산동..

조선총독부 청사(朝鮮總督府廳舍)

제목 조선총독부 청사(朝鮮總督府廳舍) 시기 1929년 장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세종로 1-91) 경복궁 대상 조선총독부 청사 설명 조선총독부청사는 당시 일본과 식민지 통틀어 가장 큰 건축물이며,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이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미 군정청청사 인민군청사 정부청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거쳐 민족정기회복 위해 해체되었다. 경과 1912 설계 1916.06.25 땅의 신에게 공사의 안전과 건물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의식 지진제 거행 1916.07.10 착공 1920.07.10 정초식 거행 1923.05.17 상량식 거행 1926.01.04 완공(일본과 식민지 통틀어 가장 큰 건축물,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축물) 1926.01 남산 왜성대의 구청사에서 경복궁의 신청사로 이전 192..

만주,연해주의 항일독립운동 단체들

SOY한국사/일제시대 http//desert>tistory.com l 2012. 06. 06 [일제] 8. 항일 독립 전쟁 (신민회, 남만주, 삼원보, 경학사, 밀산부 한흥동, 신한촌, 중광단, 대한독립단, 동제사, 신규식, 신한 혁명당, 대동 단결 선언, 신한 청년단, 부민단, 서로 군정서, 한족회, 대한 독립군, 대한 광복군 정부, 대한 국민의회, 이상설, 성명회, 권업회, 구미 위원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홍범도, 대한 통의부, 3부,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 미쓰야 협정, 보천보 전투, 민족 혁명당, 한국광복군) ●항일독립전쟁 [1]독립운동 기지의 건설 1. 신민회의 활동 2. 독립운동 기지의 설치 목적 (1) 항일 독립운동 거점 마련 (2) 무장 독립 전쟁 수행 (간도, 연해주) a)..

위장 간첩 이수근 체포

1969.1.31 위장간첩 이수근 체포 ▲위장간첩 이수근 체표 압송 장면 개그맨 이수근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가 TV를 보시다가 무심코 한 마디 하셨다. “이수근 이수근 하니까 난 그 이수근이 생각이 나서.............” ‘그 이수근’이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한 북한 중앙 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었다. 그에게는 ‘위장간첩’이라는 별칭이 아호처럼 따라붙는다. 위장간첩 이수근.....그의 탈출은 영화와 같았다. 정전 회담을 취재차 판문점에 왔던 그는 한국측 인사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고 이에 미군 장교가 갖다 댄 차에 날쌔게 올라탄 후 북한측의 차단봉을 뚫고, 아차 하는 순간 분계선을 넘는다. 인민군은 총을 쏘며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20초 정도에 전광석화처..

안중근 유해, 이토 히로부미 무덤아래 있다?

■ 안중근 유해, 이토히로부미 무덤아래 있다? Phogrho | 2015. 09. 15. 00:01 [서평] 김월배 교수의 서울 효창운동장에 있는 안중근의사의 가묘(假墓) 사진을 본다. 정면 오른쪽에 흑대리석으로 된 안내석이 서 있다. "이곳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셔질 자리로 1946년에 조성된 가묘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유해가 없는 '가짜 무덤'이 가묘다. 안 의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가묘는 '주인'을 맞을 수 있을까. 안 의사의 사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에 집행되었다. 105년이 지났다. 1세기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안 의사는 이국 땅 차디찬 곳에 묻혀 있다. 국민들로부터 독립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유해봉환을 위한 정부의노력은 눈에 띄는 게 ..

조선의 고려역사 지우기

■ 조선의 고려역사 지우기 세조 7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5월 26일(무자) 3번째기사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신한혁명당

■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신한혁명당 1. 제1차 세계대전 전후 국내외 독립운동의 양상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에 휩싸이게 된 러시아와 그 영향권에 있는 중국은 유화적인 대한인(對韓人) 정책을 철회하고 당시까지 합법적 한국독립운동단체조차도 해산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전까지 러시아령·서북간도 등 각지의 독립운동기지에서 독자적으로 한인자치 및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단체인 권업회(勸業會),·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북간도의간민회(墾民會)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해 해산 당했다. 또한 서간도의 부민단(扶民團)과 신흥학교(新興學校)도 백두산서편으로 이동해 백서농장(白西農場)으로 위장한 채 유지될 정도로 운영이 어려워졌다. 1910년을 전후해 애국지사들이 이들 지역에 망명해서 심혈..

역사의 흔적은 앞날을 내다보는 희망의 디딤돌

사진 한 장이 열 편의 글보다 낫다 박도 글/ 우담기념관 엮음 이종찬(lsr) 기자 2005-11-08 17:44 l ⓒ OhmyNews 역사의 흔적은 앞날을 내다보는 희망의 디딤돌 ↑박도, 우담기념관 ⓒ2005 눈빛 한 시대 역사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의 모든 것을 줄기차게 이어주는 생명의 숨결이다. 한 시대 역사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이 지구촌 위에 쏟아낸 땀방울과 피, 삶과 문화가 고스란이 들어 있다. 한 시대 역사는 그 나라와 그 민족이 살아낸 지난 날의 흔적이자 앞날을 내다보는 희망의 디딤돌이다. 한 시대 역사의 기록은 아무나 대충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 누군가의 편향된 잣대에 의해 분명코 피부로 겪었던 역사의 흔적을 적당히 묻어 버리거나, 이리 구부리고 비틀어서도 아니 된다. 또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