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권균(權鈞) 선생 묘역

↑세조에서 중종대까지의 관료로서 우의정까지 지낸 권균선생 묘역전경. ■ 우의정 권균(右議政權鈞)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경(正卿), 호는 유연당(悠然堂). 할아버지는 권미(權彌)이고, 아버지는 현감 권형무(權逈武)이며, 어머니는 박윤문(朴允文)의 딸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진사가 되고, 148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를 지내면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연산군 때에 장령·사간·도승지를 역임하며 연산군을 잘 보필하였다 하여 금대(金帶)를 하사받는 등 신임이 두터웠다. 그러나 연산군의 실정이 심해지자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 4등에 녹공되고, 영창군(永昌君)에 봉해졌다. 그 뒤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1508년(중종 3) 형조판서를 지내고..

영창대군 묘(永昌大君 墓)

▲소재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운리 ▲ 영창대군 묘 후경. ●영창대군(永昌大君) 1601(선조 34)~1614(광해군 6) 조선 제14대왕 선조의 적자(嫡子). 이름은 의(㼁). 어머니는 연흥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후(仁穆王后)이다.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다.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은 적장자가 아닐 뿐더러 명(明)의 책봉도 받지 못했다는 명분상의 약점이 있었다.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유영경(柳永慶) 등의 척신과 소북(小北) 세력이 세자의 개봉(改封)을 건의했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선조는 임종 전에 유영경·한흥인(韓興寅)·신흠(申欽)·박동량(朴東亮) 등 7대신에게 영창대군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뒤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

아첨의 기술/이하곤(李夏坤),

■ 아첨의 기술 王於我足矣。 而帝以何德堪之。 왕어아족의。 이제이하덕감지。 [국역] 왕이라는 명칭이면 나에게는 충분하니, 황제라는 명칭이야 내가 무슨 덕이 있어 감당하겠느냐? 글쓴이 : 이하곤(李夏坤),〈아첨하는 여우 이야기[媚狐說],/《두타초(頭陀草)》 ----------------------------------------------------------------------------------------------------------------------------------- [해설] 여우는 호랑이에게 아첨을 잘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먹던 것을 여우에게 남겨주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호랑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두들 당신을 ‘산중의 왕’이라고 부르지..

묘련사 중흥비(妙蓮寺重興碑)

■묘련사 중흥비(妙蓮寺重興碑) 지은이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을 송산『崧山 :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송악(崧嶽)을 송산(崧山)이라 하였다.』 이라고 한다. 그 산 동쪽 산등성이가 남으로 뻗어나 눕혀져서 서쪽으로 꺾이었으니, 낮게 숙인 것은 적고 우뚝 일어난 곳은 많으며, 또 나누어져 남쪽으로 세 개의 재(峴)가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마치 봉(鳳)이 높이 솟은 것 같다. 이러한 용의 배에 해당한 위치에 웅거하고, 봉의 날갯죽지에 해당한 위치에 붙어서 절이 있는데 묘련사(妙蓮寺)라고 한다. 우리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더불어 부처를 높이 신앙하였다. 불법에 들어가는 길은 《법화경(..

강민공(剛愍公) 이완(李莞) 묘역(이순신 장군의 조카)

■ 강민공(剛愍公) 이완(李莞) 묘역 답사기 강민공(剛愍公) 이완(李莞)의 묘역은 아래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싶이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 산 20번지 1호에 있다. 이곳은 고기초등학교가 있는 손기부락의 서쪽 산속 손골(上蓀谷)로 넘어가는 산길 옆에 위치 한다. 지금은 영덕 - 양재간 자동자 전용도로 건설로 인하여 공의 묘역이 속해있는 덕수이씨 종중산이 잘리어 나간체 한창 공사중이다 . ▲강민공 이완 정려각剛愍公李莞旌閭閣) 당초에는 덕수이씨 강민공파 종손댁(이재억씨 작고) 집 앞에 있던 것을 2003년도에 이곳 선산으로 옮긴 것 이다. ▲정려각의 편액 [원문] 忠臣 贈資憲大夫 兵曹判書兼 知義禁府事行嘉善大夫義州府尹 義州鎭兵馬僉節制使 贈諡剛愍公李莞之閭 崇禎紀元再甲周立 上之十八年春重修 癸未年 秋 築造.(충신 증 ..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경향신문 >매거진X> 책 2002. 5. 17 [천년벗과의 만남] 스스로 쓴 묘지명 큰 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검토하다 보면 좀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문집에서는 그 문집 주인공의 생애를 정리한 묘지명이 실려 있게 마련인데 다산의 경우에는 그 묘지명을 자기 자신이 써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라는 제목으로 싣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은 묘지명이란 뜻의 이 글은 남이 내 생애를 정리하고 평가하지 않고, 내 스스로 내 생애를 정리하고 자신을 평가한다는 특별한 행위를 담아내고 있다. 다산이 그렇게 자신이 썼다는 점을 밝힌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묘지명이란 본래 타인이 죽은 자를 위해 쓰는 글이기에 굳이 그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사람이 죽어 무덤에 묻을 때에는 묘지명..

인간이 지켜야 할 조목 24가지

■ 인간이 지켜야 할 조목 24가지 글 : 취운 이원우(翠雲 李元雨) 1.선조를 밭 뜸『봉선(奉先)』 선조를 밭 뜸은 효도하려는 생각에서 우러난 것이다. 제사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생존한 것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영역(瑩域: 山所)은 반드시 전답(田畓)을 두어야 하고 관리인이 있어야 하며 재실(齋室)을 세우는 것은 잠을 자기 위한 것이고, 비석을 세우는 것은 표시하기 위한 것이며 벌송(邱木: 무덤가에 있는 墓木)을 심은 것은 벌 안을 가꾸기 위한 것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날마다 성묘를 할 것이요, 멀면 매월 초하루에 한번씩 성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선조님에게 아름다움이 있으면 들추어 내야 할 것이며, 간혹 선조의 얼이 있으면 서술을 하여 잠시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2...

장유의 형님에 대한 제문(張維의 祭伯氏文)

형님에 대한 제문[祭伯氏文] 계곡 장유 찬(谿谷 張維 撰)문(祭文) 아 / 嗚呼 우리가 형제 된지 / 我爲兄弟 어언 사십년 / 今四十歲 우리 집 어려움 많기도 하여 / 吾家多難 일찍부터 흔단(釁端)이 모여들었네. / 早鍾釁戾 해년(亥年) 축년(丑年) / 歲在亥丑 연거푸 큰 슬픔 당했을 때 / 大戚洊摯 형님은 갓 십오세요 / 兄纔成童 나는 한 살 아래였네. / 弟少一齒 영락한 집안 살림 / 零丁孤露 함께 어머니 모시면서 / 共奉慈侍 위로 할머니와 / 上有王母 아래로 동생들 돌봤지요. / 下有弟妹 형님은 가장(家長)으로 / 兄爲家督 집안일 꾸려 가며 / 門戶不墜 모시고 돌보는 그 여가에 / 事育之暇 함께 공부 했었지요. / 共治文字 시원찮은 음식에 피나는 정진 / 食淡攻苦 서로들 격려하며 닦아갔는데 / 以相..

신라 문무왕릉비 윗조각 찾아.

빨래판으로 써온 신라 문무왕릉비 윗조각 찾아 중앙일보 2009년 09월 04일(금) 오전 03:08 중앙일보 이경희 조선시대에 발견됐다가 사라진 신라 제30대 문무왕릉비(문무왕 재위 661~681) 조각(사진)이 20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경주시 동부동 한 주택 수돗가에서 문무왕릉비 상단(上段) 부분을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시멘트로 발라 고정시킨 뒤 빨래판으로 쓰던 비석 조각을 수도 검침원이 발견해 신라문화동인회 김윤근(65) 부회장에게 제보하면서 실물이 확인된 것이다. 조선시대 경주부윤(오늘날 시장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낸 홍양호(1724~1802)는 자신의 문집 『이계집(耳溪集)』에 “682년 경주 사천왕사에 세워진 문무왕릉비 조각들을 정조 20년(1796년) ..

보학연구가 서수용

“팔고조도(八高祖圖) 그려보면 우리 모두 친척이죠” 조용헌 江湖 東洋學 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cyh062@wonkwang.ac.kr/사진 김형우 기자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집안은 물론 다른 집안의 족보에도 해박해야 제대로 된 양반으로 대접받았다. 지금도 영남지역, 특히 유교문화의 뿌리가 남아 있는 안동에서는 족보를 연구하는 보학의 유풍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40대의 젊은 보학 연구가인 서수용 선생은 영남의 집안과 문집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인물로 인정받는다. 그는 “전통을 읽어내는 독해법 중 하나가 보학”이라며 “보학을 알아야 한국 사회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학 (譜學)’이라는 것이 있다. 보학이란 족보학을 말한다. 그 사람의 족보가 어떻게 내려왔는가, 조상이 어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