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전국 서원소재지

■ 전국 서원소재지 001. 가호 서원 (佳湖書院) :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002. 간곡 서원 (艮谷書院) :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114 003. 갈천 서원 (葛川書院) : 경남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1146 004. 강고 서원 ( 書院) : 005. 강덕 서원 (康德書院) :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시목리 006. 강성 서원 (江城書院) : 전남 장흥군 장흥군 유치면 늑룡리 월천부락 007. 강현 서원 (書院) : 008. 검계 서원 (儉溪書院)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1구 009. 검암 서원 (儉岩書院) : 충청북도 가덕면 병암리 010. 겸천 서원 (謙川書院)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죽림리 401 011. 경광 서원 (鏡光書院)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012. 경남..

춘천 박씨 중시조 박항(春川 朴氏 中始祖 朴恒)

■ 춘천 박씨 중시조 박항(春川 朴氏 中始祖 朴恒) ◇박항(朴恒 1227∼1281(고종 14∼충렬왕 7)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춘천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로서 박, 신, 최, 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춘천박씨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춘천신씨, 춘천최씨, 춘천 허씨를 만나보지 못했다. 풍수학을 하는 사람들은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에 위치한 춘천박씨 중시조 박항의 묘소가 명당이기 때문에 27개 파까지 나뉠 정도로 가문이 번성했다고 말한다. 춘천박씨 중시조의 묘소를 답사해 보면 가문의 계승과 흥망성쇠가 풍수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음 리로 넘어가는 배후 령을 사이에 두고 마적 산을 좌청룡, 수리봉을 우백호로 삼아 유택을 마련했다. 묘소에서 바라보면 넉넉하게 펼쳐진 우두 벌 건너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기제사지내는 절차

■ 기제사지내는 절차. ●옛 말 에 가가례란 말이 있듯이 우선 제사의 상차리기 및 제례절차는 가정마다 약간씩 다를 수 있음을 첨언해 둔 다. 1. 상차리기 제사상에 음식을 차린다. 지방 혹은 사진을 모신다. 2. 강신 조상님께서 오시기를 청하는 절차이다. 모든 참석자는 제사상 앞에 선다.제주(아들)가 제사상 앞 중앙 향로 앞에 꿇어 앉아 향(3개)을 피워 향로에 꽂은 후제주만, 두번 절한다. 제주가 다시 꿇어앉고 집사가 상 위의 술잔(빈잔)을 제주에게 주고(잔 받침대까지) 술을 조금(30% 정도)따라주 면 향위를 거쳐 퇴주 그릇에(큰 빈그릇) 조금씩 세 번 기울여 다 붓는다.(왼손으로 잔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잔을 잡고)상위의 잔으로 했으면 그 빈 잔을 집사( 옆에 서서 제사진행을 돕는 사람)를 통해원 ..

패가망신을 염려하면서

■ 패가망신을 염려하면서 - 왕달애비 조선시대의 영남지방에 글하는 선비들이 특히 많았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니까, 조금은 덜 알려진 선비의 글을 소개하는 것쯤은 별난 일이 아닐 터이다. 이백년 쯤 전 경상도 동북쪽 바닷가 고을인 영해(寧海)에 호가 면운재(眠雲齋)인 이주원(李周遠,1714∼1796)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는 영남지방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학자였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인 이휘일(李徽逸,1619~1672)의 증손자이니까, 생가 증조부는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1627~1704)이다. 증조부(曾祖父) 형제만큼 큰 명성과 학문적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주원도 소년시절부터 문재가 있어 그 종조부(從祖父) 밀암 이재(密菴 李栽,1657~1730)로부..

조문과 추모행사

(1) 조문 1) 조상(弔喪)과 문상(問喪) 조상(弔喪)은 죽은 이의 영좌에 죽음을 슬퍼하며 예를 드리는 것이고, 문상(問喪)은 상주에게 위문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문(弔問)'은 죽은이에게 예를 들이고 상주를 위문하는 모든 것이다. 고례(古禮)에 의하면 죽은 이가 남자이면 영좌에 조상하고 상주에게도 문상하지만, 죽은 이가 여자이면 영좌에 조상은 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문상했다. 그러나 요사이는 남녀의 상을 가리지 않고 영좌에 조상하고 이어서 상 주에게 문상한다. 2) 조문 시기 예전에는 시체를 염습하고 상주들이 복을 입는 성복(成服)전에는, 좌가 설치되지 않았으니까 영좌에 조상도 않 고, 상주가 총망중이라 상주에게 문상도 않으며, 다만 호상소에 인사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구별이 없어지는 추세에 있다...

이인손 선생 묘.

↑이인손 묘(李仁孫 墓)/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신지리 237-1 ↑이인손 묘의 후경 1395(태조 4)∼1463(세조 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중윤, 호는 풍애. 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이고, 아버지는 참의 지직이며, 어머니는 이원보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 검열에 발탁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1429년(세종 11)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형조좌랑·예조좌랑·집의·판군자감사·예조참의·경상도관찰사·형조참의·대사헌·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한성부윤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거쳐, 1454년수양대군이 정권을 잡..

임원준 묘 - 임사홍의 아버지

↑사우당 임원준(四友堂 任元濬. 1445~1500)의 신도비. ↑조선 전기의 문신 임사홍의 아버지 임원준선생 묘역이다. 묘역 주변에 울타리가 둘려져 있어서 입구를 찾느라고 한참 애먹었다. ↑임원준선생 묘역에 세워진 석물. 문인석도 무인석도 아닌 것이 크기는 왕릉의 석물보다도 더 큽니다. ↑아들 임사홍의 무덤에서 바라 본 임원준선생 묘역 원경 ↑훈구파의 거물로 갑자사화를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임사홍 묘역 전경. ◇배위(부인)와 상 하 부후묘(附後墓)로 되어있으나 잘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표주박 형으로 부인의 묘가 뒤에 바로 붙어있는 묘를「부후묘(附後墓)」라 한다.

민진후의 묘 - 인현왕후의 오빠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들이며,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 묘역 전경 민진후 신도비 민진후(閔鎭厚) 1659년(효종 10)~1720년(숙종 46).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정순(靜純), 호는 지재(趾齋). 민기(閔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숙종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유수 민진원(閔鎭遠)과 현감 민진영(閔鎭永)의 형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81년(숙종 7) 생원이 되고,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기사환국이 일어나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 친척들과 함께 관작을 삭탈당하고 귀양살이를 ..

민치록(閔致祿)의 묘. -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閔致祿, 1799년 ~ 1858년 09월 17일)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척신으로 자는 원덕, 호는 서하이다. 인현왕후의 오빠이자,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아들인 민진후의 현손이다. 명성왕후의 부친으로 고종의 장인이자 순종의 외할아버지이다. 음서로 벼슬에 올라 장악원과 사도시의 첨정을 지냈으며, 딸이 왕비로 간택되면서 영의정에 추증되고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에 추봉되었다. 본관은 여흥, 시호는 효정공(孝貞公), 순간공(純簡公)이다. ▲민치록(閔致祿)의 묘 ▲민유중의 5대손이며,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의 묘역 후경. ▲민치록 신도비/여주 ▲민치록 거사비/경기도 과천시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