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기타 金石文

묘련사 중흥비(妙蓮寺重興碑)

야촌(1) 2009. 9. 17. 04:31

■묘련사 중흥비(妙蓮寺重興碑)

 

지은이 :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을 송산『崧山 :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송악(崧嶽)을 송산(崧山)이라 하였다.』 이라고 한다. 그 산 동쪽 산등성이가 남으로 뻗어나 눕혀져서 서쪽으로 꺾이었으니, 낮게 숙인 것은 적고 우뚝 일어난 곳은 많으며, 또 나누어져 남쪽으로 세 개의 재(峴)가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마치 봉(鳳)이 높이 솟은 것 같다. 이러한 용의 배에 해당한 위치에 웅거하고, 봉의 날갯죽지에 해당한 위치에 붙어서 절이 있는데 묘련사(妙蓮寺)라고 한다.

 

우리 충렬왕이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더불어 부처를 높이 신앙하였다. 불법에 들어가는 길은 《법화경(法華經)》이 가장 오묘한 뜻이 있고, 경문(經文)의 뜻을 통창하게 풀이한 것은 《천태소(天台疏)》에 모두 갖추어졌다고 하여 좋은 땅을 가려 정사(精舍)를 세워서 《법화경》을 읽으며 그 도(道)를 탐구하고, 《천태소》를 강설하여 그 뜻을 연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천자의 복을 빌며, 종묘 사직에 복을 맞이하려는 것이다. 지원(至元) 20년 가을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다음 해의 여름에 낙성하였다. 절을 처음 연 자는 사자암(獅子菴)의 노숙(老宿 오래 도를 닦은 덕(德)이 높은 중) 홍서(洪恕)가 바로 그 사람이다.

 

처음 원혜국사(圓慧國師)가 맹주가 되어 결사(結社)하였을 때, 서(恕)가 또 그 다음 대를 이었으며 세 번째 무외국사(無畏國師)에 이르러서는, 배우는 자가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충렬왕 때부터 이미 일찍이 원혜국사에게 그 자리를 여러 번 맡겼으며, 무외국사에게는 임금이 재(齋)를 대행하게 하였고, 충선왕은 더욱 그 예(禮)를 정중히 하여 모든 불교의 원문(院門)과 선종ㆍ교종의 여러 사찰에서는 감히 그러한 대우를 바라지도 못하였다.

 

무외국사의 앞에는 희(禧)니, 인(因)이니, 하는 이가 있었고, 무외국사의 뒤에는 분(芬)이니, 연(璉)이니, 홍(泓)이니, 염(焰)이니, 여(如)니 하는 이들과 지금의 당두(堂頭 선사(禪寺)의 주지) 길(吉)이니 하는 자들은 모두 승려 중에서 선택된 자로서 계승 유지하여, 범종(梵鐘)과 목어(木魚 목탁) 분향과 촛불 등 온갖 절의 의식이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집이 기울어지고 기와와 쌓은 벽돌이 썩고 이지러진 것은, 대개 60년의 오랜 세월을 지났으니, 사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암(順菴) 선(璇)공은 원혜국사의 적사(嫡嗣)이자, 무외국사의 조카이다.

 

중국의 천자가 삼장(三藏)이라는 호를 내리며 북경의 대연성사(大延聖寺)의 주지를 명하였다. 그 뒤 지원(至元) 병자년에, 천자가 내리는 향을 받들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조용히 충숙왕(忠肅王)에게 아뢰기를, “묘련사는 충렬ㆍ충선왕의 기원(祇園)으로서 그분들의 초상이 옛 그대로 있습니다.

 

전하께서 새로 수리하신다면 조상을 받드는 효도가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듣고 감동된 바 있어 드디어 금과 은과 보기(寶器) 수백 만을 희사하여 그 절의 상주(常住) 재산, 즉 기본재산으로 돌려주니, 그 무리들이 서로 권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어떤 이는 계획을 짜고 어떤 이는 노력을 바치었다. 방과 마루와 부엌 행랑 등 흔들리는 것은 수선하고 기울어진 것은 바로 세우며, 썩은 것은 바꿔 넣고 이지러진 것은 보수하였으며, 상설(像設)의 제의(制儀)는 아름답게 하고 재주(齋廚)의 비용을 넉넉하게 하였다.

 

푸른 소나무를 더 많이 심었으며 높은 담을 둘러쌓았다. 선공(璇公)이 큰 글씨를 잘 썼으므로 금으로 불전의 액자를 써서 처마 사이에 걸어 놓으니, 해와 별과 더불어 빛을 다투게 되었다. 또 좋은 일이 끝난 것을 서로 경하하지 않음이 없으니 마땅히 돌에 새겨서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합하여 조정에 청하니, 임금이 신에게 명령하여 글을 지으라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초창(初創)하는 어려움은 수성(守成)하는 어려움만 못하고 지키는 어려움은 일으켜 회복하는 어려움만 못한 것이다. 이 절은 충선왕이 충렬왕의 발원을 넓혔으며 충숙왕이 수리하였다.

 

무외국사는 원혜국사의 발자취를 승습(承襲)하였고 선공이 다시 일으켰으니, 《시경(詩經)》에 이른바, “오직 그가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와 같다.”라고 한 말이 저 나라나 집 같은 것도 아들과 손자가 능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업을 잊지 않고서 낡아지면 수리하고 쓰러지면 일으키기를 이 절과 같이 한다면, 비록 백세에 이를지라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모(某)는 어려서 선동암(先東菴)을 따라 무외국사의 문하에 드나들었으며 선공과도 교유하였는데, 하물며 임금의 명령이 있는데 어찌 감히 문학이 얕고 문장이 졸렬하다고 하여 사양하겠는가. 그 명(銘)에 말하기를,

 

오천축 나라엔 / 五竺之邦
성인이 나셔서 / 維聖斯作
중생의 구제를 생각하셨네 / 思濟生靈


병 따라 약 주시고 / 應病而藥
묘법을 베풀 수 없을 때에 / 末宣妙法
권도로 실제를 들어내셨네 / 顯實于權


영추산에 한 번 뵈니 / 靈山一會
엄숙한 모습 책을 펴셨네 / 開卷儼然


저 아란야의 산기슭에 / 彼鬱者阿
정사가 있어 / 有侐精舍


두 번 덕 있는 사람들을 오라하여 / 兩致德人
자비의 교화를 밝히셨네 / 載敭慈化


도에는 트이고 막히는 것이 없으나 / 道無通塞
그릇에는 이루어진 것과 이지러진 것이 있는 것이니 / 器有成虧


어질고 지혜롭지 아니하면 / 匪賢且智
뉘가 능히 완성할까 / 疇克完之


아름다운 순암이여 / 允也順菴
한마디로 임금을 감동시켜 / 一言感主


선왕의 뜻을 이어 짓고 / 述志先王
임금의 창고에서 금을 내리게 하여 / 賜金秘府


영조하고 수즙하니 / 乃營乃葺
건축은 장대하고 아름답도다 / 美哉奐輪


시내와 산과 구름과 달은 / 溪山雲月
비록 예대로건만 오직 새로워 보이네 / 雖舊惟新


제호(순수한 우유)같은 순수한 불법의 가르침에 배가 부르고 / 飫以醒醐
담복(치자나무의 꽃. 향기가 썩 좋은)같은 불법의 향기에 훈증되게 하여 / 熏以薝葍


우리의 큰 원(元)나라를 복되게 하고 / 福我皇元
이끌어 본국에 미치게 하였네 / 爰及宗國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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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妙蓮寺重興碑 - 李齊賢

 

京城之鎭曰崧。宋徐兢高麗圖經。以松岳爲崧山。 其東岡南迤。歧而西折。微伏而豐起。又分而南爲三峴。遠而望之。若龍蟠焉。近而視之。若鳳峙焉。據龍之腹。附鳳之膺。有佛者之宮。曰妙蓮寺。我忠烈王。與齊國大長公主。尊信佛氏。謂入佛之道。法華經最邃。暢經之義。天台䟽悉備。卜勝地立精舍。繙經以求其道。講䟽以硏其義。將以祝釐於天子。邀福於宗祐者也。堂構于至元二十年之秋。明年之夏而落成。開山者獅子菴老宿洪恕。實惟其人。洎圓慧國師。主盟結社。而恕又副之。三傳而至無畏國師。學者益臻。自忠烈王旣甞重席於圓慧。攝齋於無畏。而忠宣王。尤重其禮。凡所以老護院門禪敎列刹。莫敢望焉。前乎無畏者。曰禧,曰因。後乎無畏者。曰芬,曰璉,曰泓,曰熖,曰如。及今堂頭曰吉。皆釋林之選。相繼而維持。鍾魚香火。無替于始。而棟宇之撓傾。蓋瓦級甎之腐且缺。蓋歷六十年之久。勢之必至者也。順菴旋公。圓惠之嫡嗣。無畏之猶子。天子錫號三藏。命住燕都之大延聖寺。后至元丙子。降香東歸。從容言於忠肅王曰。妙蓮之爲寺。忠烈,忠宣之祗園也。其眞容故在殿下。葺而新之。奉先之孝。孰此爲大。王聞而有感。遂捨金銀寶器數百萬。歸諸常住。其徒莫不相勸。或惎以謀。或奮其力。維寢,維堂,維廚,維廊。撓者繕。傾者立。腐者易。缺者補。侈像設之儀。贍齋廚之費。益樹靑松。繚以崇墉。璇公善大字。乃金書佛殿額。揭之簷間。光爭日星。則又莫不相慶以爲能事畢矣。宜刻石示後。合辭請於朝。王命臣某爲文。竊惟剙之之難。不如守之之難。守之之難。又不如興復之爲難也。玆寺也忠宣弘忠烈之願。而忠肅修之。無畏襲圓惠之跡。而璇公起之。詩所謂維其有之。是以似之者。其在玆乎。彼國若家子若孫。能無忘祖考之業。弊將修之。踣將起之。亦如玆寺之爲。雖至百世而不隕可也。顧不休哉。某幼從先東菴。進退於無畏之門。璇公又辱與之遊。况吾君有命。曷敢以鄙拙辭。其銘曰。

五竺之邦。維聖斯作。思濟生靈。應病而藥。末宣妙法。顯實于權。靈山一會。開卷儼然。彼欝者阿。有侐精舍。兩致德人。載敭慈化。道無通塞。器有成虧。匪賢且智。疇克完之。允也順菴。一言感主。述志先王。賜金秘府。乃營乃葺。美哉奐輪。溪山雲月。雖舊惟新。飫以醍醐。熏以薝葍。福我皇元。爰及宗國。<끝>

 

동문선 제118권 / 비명(碑銘)

 

[註解]

[주01]개산(開山) : 절을 처음 세우는 것을 말한다.

 

[주02]중석(重席) : 좌석에 요와 방석을 이중으로 까는 것으로 존경하는 것을 뜻한다.

 

[주03]기원(祇園)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약칭.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왕사성(王舍城)에서 설법(說法)할 때에 급고독(給孤獨)이라는 사람이 기타태자(祇陀太子) 의 원림(園林)을 산 다음, 정사(精舍)를 짓고 여래를 초청하여 설법한 곳.

 

[주04]영취산(靈鷲山) …… 엄연(儼然)하도다 : 영취산은 중인도(中印度) 마게타국(摩揭陀國)에 있는 명산(名山). 산 생김새가 매와 같으며 또 매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영산(靈山) 또는 취봉(鷲峯)이라고 약칭하기도 한다.

 

석가여래가 일찍이 이 산에서 《법화경(法華經)》등을 강했는데, 즉 오묘한 불법을 인간에게 알릴 길이 없어, 권도로 석가여래가 인간 세상에 나와 영취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한 내용이 《법화경》에 뚜렷이 나타나 있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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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련사중흥비(妙蓮寺重興碑)



 익재 이제현 찬(益齋 李齊賢 撰)



京城之鎭曰崧(경성지진왈숭) : 서울의 진산을 숭산이라 하는데,
宋徐兢高麗圖經(송서긍고려도경) : 송 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以松岳爲崧山(이송악위숭산) : 송악을 숭산이라고 했다.

 

其東岡南迤(기동강남이) : 그 동쪽 등성이가 남으로 뻗어가다
岐而西折(기이서절) : 갈라져 서쪽으로 꺾어지며 .
微伏而豐起(미복이풍기) : 조금 낮아졌다 큼직하게 솟아나고,
又分而南爲三峴(우분이남위삼현) : 또 갈라져 남으로 뻗어가다 세 개의 재가 되어
遠而望之(원이망지) : 멀리서 바라보면
若龍蟠焉(약룡반언) : 마치 용이 서려 있는 듯하고,
近而視之(근이시지) : 가까이서 보면
若鳳峙焉(약봉치언) : 마치 봉이 우뚝 서 있는 듯한데,
據龍之腹(거룡지복) : 용의 배에다 터를 잡고
附鳳之膺(부봉지응) : 봉의 가슴에다 세운
有佛者之宮曰妙蓮寺(유불자지궁왈묘련사) : 부처의 궁전이 있으니, 묘련사라 했다.


我忠烈王與齊國大長公主尊信佛氏(아충렬왕여제국대장공주존신불씨) : 우리 충렬왕은 제국대장공주와 함께 부처를 존신하였는 데,
謂入佛之道法華經最邃(위입불지도법화경최수) : 불교에 들어가는 길은 <법화경>이 가장 심오하며,
暢經之義(창경지의) : 불경의 뜻을 창달한 것은
天台疏悉備(천태소실비) : <천태소>에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여,
卜勝地立精舍(복승지립정사) : 좋은 땅을 가려 정사를 세우고,
繙經以求其道(번경이구기도) : <법화경>을 번역하여 도를 찾고,
講疏以硏其義(강소이연기의) : <천태소>를 강론하여 경전의 뜻을 연구했으니,
將以祝釐於天子(장이축리어천자) : 장차 천자에게 복을 빌고
邀福於宗祏者也(요복어종석자야) : 종묘에 복이 내리게 하려 한 것이었다.


堂搆于至元二十年之秋(당구우지원이십년지추) : 불당을 지원 20년 가을에 시작하여
明年之夏而落成(명년지하이락성) : 이듬해 여름에 낙성하였는데,
開山者(개산자) : 개산한 사람은
師子庵老宿洪恕(사자암로숙홍서) : 사자암의 노숙 홍서가
實惟其人(실유기인) : 실로 그 사람이다.


洎圓慧國師主盟結社(계원혜국사주맹결사) : 원혜국사가 결사를 주관할 때에
而恕又副之(이서우부지) : 홍서가 또한 차석이었으며,
三傳而至無畏國師(삼전이지무외국사) : 삼대를 전하여 무외국사 때에 와서는
學者益臻(학자익진) : 배우는 사람이 더욱 몰렸다.


自忠烈王旣嘗重席於圓(자충렬왕기상중석어원혜) : 충렬왕 때부터 일찍이 원혜국사에게 중석하였고,
攝齋於無畏(섭재어무외) : 무외국사에게 경의를 다했으며,
而忠宣王尤重其禮(이충선왕우중기례) : 충선왕께서는 더욱 예절을 존중히 하여
凡所以光護院門(범소이광호원문) : 원문의 선교가 영광스러운 보호 받음을
禪敎列刹(선교렬찰) : 선교의 다른 절들이
莫敢望焉(막감망언) : 감히 바라질 못했다.


前乎無畏者(전호무외자) : 무외국사 이전의
曰禧曰因(왈희왈인) : 희(禧)ㆍ인(因)과
後乎無畏者曰芬曰璉曰泓曰焰曰如)(후호무외자왈분왈련왈홍왈염왈여) : 무외국사 이후의 분(芬). 연(璉). 홍(泓). 염(焰). 여 (如) 와

 

及今堂頭曰吉(급금당두왈길) : 지금의 당두(堂頭 주지) 길(吉)은,
皆釋林之選(개석림지선) : 모두 석림의 특출한 사람들인데,
相繼而維持(상계이유지) : 서로 이어받아 유지하여
鍾魚香火(종어향화) : 종(鍾)ㆍ어(魚)ㆍ향(香)ㆍ화(火)가
無替于始(무체우시) : 처음과 다름없이 하였으나,
而棟宇之撓傾(이동우지요경) : 기둥과 지붕이 기울고
蓋瓦及甎之腐且缺(개와급전지부차결) : 기와와 벽돌이 썩고 이지러진 것은
蓋歷六十年之久(개력륙십년지구) : 대개 60년의 오랜 세월이 지나
勢之必至者也(세지필지자야) : 어쩔 수 없는 사세였도다.


順菴旋公(순암선공) : 순암 선공은
圓慧之嫡嗣(원혜지적사) : 원혜의 적자요
無畏之猶子(무외지유자) : 무외의 조카로
天子錫號三藏(천자석호삼장) : 천자가 삼장이란 호를 내려
命住燕都之大延聖寺(명주연도지대연성사) : 연도의 대연성사에 있도록 하였었는데,
後至元丙子(후지원병자) : 후(後) 지원(至元) 병자년에
降香東歸(강향동귀) : 강향(降香)하러 동으로 돌아와서
從容言於忠肅王曰(종용언어충숙왕왈) : 조용히 충숙왕에게 아뢰기를,
妙蓮之爲寺(묘련지위사) : "묘련사가 절이 되기는
忠烈(충렬) : 충렬왕과
忠宣之祇園也(충선지기원야) : 충선왕의 기원으로
其眞容故在(기진용고재) : 전에 그 분들의 초상이 있던 곳이니
殿下葺而新之(전하즙이신지) : 전하(殿下)께서 새로 수리하신다면,
奉先之孝(봉선지효) : 선대를 받드는 효도가
孰此爲大(숙차위대) :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하였다.


王聞而有感(왕문이유감) : 왕은 듣고 감동하여
遂捨金銀寶器數百萬(수사김은보기수백만) : 드디어 수백만의 금은과 보기(寶器)를 희사하여
歸諸常住(귀제상주) : 상주하는 중들에게 보내니,
其徒莫不相勸(기도막부상권) : 불도들은 서로 권면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或惎以謀(혹기이모) : 혹은 계책을 짜고
或奮其力(혹분기력) : 혹은 힘을 분발하여
維寢維堂維廚維廊(유침유당유주유랑) : 침실ㆍ대청ㆍ주방ㆍ행랑 할 것 없이
撓者繕傾者立(요자선경자립) : 흔들리는 것은 수선하고 기운 것은 바로잡으며,
腐者易缺者補(부자역결자보) : 썩은 것은 바꾸고 파손된 것은 보완하며,
侈像設之儀(치상설지의) : 불상 놓는 자리를 호화롭게 하고
贍齋廚之費(섬재주지비) : 재(齋) 차릴 주방의 비용을 넉넉히 하며,
益樹靑松(익수청송) : 소나무를 더 심고
繚以崇墉(료이숭용) : 담장을 높이 둘러 쌓았다.


旋公善大字(선공선대자) : 선공(旋公)이 대자(大字)를 잘 쓰므로
乃金書佛殿額(내김서불전액) : 불전(佛殿)의 액자(額字)를 금분으로 써서
揭之簷間(게지첨간) : 처마 사이에 걸자,
光爭日星(광쟁일성) : 광채가 해와 별과 겨루게 되니,
則又莫不相慶(칙우막부상경) : 또한 서로 경하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以爲能事畢矣(이위능사필의) : 할 일을 다했다 하며,
宜刻石示後(의각석시후) : 마땅히 돌에 새겨 후세에 남겨야 한다 하여
合辭請於朝(합사청어조) : 합동으로 조정에 청하니,
王命臣某爲文(왕명신모위문) : 왕은 신(臣) 아무에게 글을 짓도록 명하였다.


竊惟創之之難(절유창지지난) : 그윽이 생각하건대, 창건(創建)의 어려움이
不如守之之難(부여수지지난) : 지킴의 어려움만 못하고,
守之之難(수지지난) : 지킴의 어려움이
又不如興復之爲難也(우부여흥부지위난야) : 또한 복구의 어려움만 못하다.


玆寺也(자사야) : 이 절은
忠宣弘忠烈之願(충선홍충렬지원) : 충선왕이 충렬왕에 대한 축원을 넓히기 위하여 건립하였는데 충
而忠肅修之(이충숙수지) : 숙왕이 보수했으며,
無畏襲圓慧之跡(무외습원혜지적) : 무외가 원혜의 자취를 승습(承襲)했는데
而旋公起之(이선공기지) : 선공이 복구했으니,
詩所謂維其有之(시소위유기유지) : <시경>에 이른바 '오직 마음에 있으므로 그와 같이 했다.한 것이
是以似之者(시이사지자) : 이것으로 그와 비슷하다함은
其在玆乎(기재자호) :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彼國若家子若孫(피국약가자약손) : 국가와 자손들이
能無忘祖考之業(능무망조고지업) : 능히 조고(祖考)의 유업을 잊지 않아
弊將修之(폐장수지) : 퇴락하면 보수하고
踣將起之(북장기지) : 전복되면 일으키기를
亦如玆寺之爲(역여자사지위) : 또한 이 절을 수리하듯 하여
雖至百世而不隕可也(수지백세이부운가야) : 비록 백대가 되더라도 추락되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도다.


顧不休哉(고부휴재) : 돌아보건데,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某幼從先東菴(모유종선동암) : 나는 어렸을 때 선친 동암을 따라
進退於無畏之門(진퇴어무외지문) : 무외의 문하에 드나들었고,
旋公又辱與之遊(선공우욕여지유) : 또한 선공은 나와 종유하였으며,
況吾君有命(황오군유명) : 더구나 우리 임금께서 명을 내리셨으니
曷敢以鄙拙辭(갈감이비졸사) : 어찌 감히 비루하고 졸렬하다 하여 사양하겠는가
其銘曰(기명왈) : 아래와 같이 명(銘)한다.


五竺之邦(오축지방) : 오천축 인도 나라에
維聖斯作(유성사작) : 성인이 나시어
思濟生靈(사제생령) : 중생을 건지려고
應病而藥(응병이약) : 병에 맞춰 약 쓰셨네.


末宣妙法(말선묘법) : 오묘한 불법 펼 수 없어
顯實于權(현실우권) : 권도로 인간 세상에 나오셨으니,
靈山一會(령산일회) : 영취산 모임의 뜻,
開卷儼然(개권엄연) : 책 열면 엄연하도다.


彼鬱者阿(피울자아) : 울창한 저 언덕의
有侐精舍(유혁정사) : 고요한 정사에
兩致德人(량치덕인) : 두 차례나 덕인을 청하여
載揚慈化(재양자화) : 자비의 도를 폈도다.


道無通塞(도무통새) : 도는 통함과 막힘 없지만,
器有成虧(기유성휴) : 기물은 이뤄지고 이지러지기도 하나니
匪賢且智(비현차지) : 어질고 또 지혜롭지 못하면
疇克完之(주극완지) : 뉘 능히 완성하랴.


允也順菴(윤야순암) : 진실한 순암이여
一言感主(일언감주) : 한 말로 임금을 감동시키니
述志先王(술지선왕) : 거룩한 선왕이
賜金祕府(사김비부) : 비부의 돈 내리셨네.


乃營乃葺(내영내즙) : 설계하고 집을 지어
美哉煥輪(미재환륜) : 환하게 아름다우니
溪山雲月(계산운월) : 시내와 산, 구름과 달,
雖舊惟新(수구유신) : 오래 되었지만 새롭도다.


飫以醍醐(어이제호) : 제호를 배불리 먹으며,
熏以薝葍(훈이담복) : 담복으로 분향하여
福我皇元(복아황원) : 우리 황원에 복 내리고,
爰及宗國(원급종국) : 종국에도 미치게 하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