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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의 연안대첩 이야기

작성일 : 2021. 8. 15. 23:23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안시성 전투’라고 불린 이정암의 연안 대첩 이야기 임진왜란 때, 이정암(李廷馣) 선생이 1592년 8월 28일부터~1592년 9월 2일까지 1천 4백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연안성(延安城) 전투에서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의 왜군 5천여명을 무찔렀다. ▲26世 이정암(李廷馣)선생 영정 [인물 요약] [생졸년] 1541년(중종 36)∼1600년(선조 33) 9월 10일./향년60歲 [문과] 명종(明宗) 16년(156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9위(29/36)/합격연령 : 21歲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13년(155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5위(10/100)/합격연령 18歲 ----------..

황해북도 장풍군 십탄리 개요.

작성일 : 2022. 4. 17. 00:43 ■황해북도 장풍군 십탄리 개요. 황해북도(黃海北道) 장풍군(長豊郡) 1읍 23리의 하나. 군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리. 북쪽은 세골리. 구화리(九化里). 동쪽은 국화리(國化里). 남쪽은 고읍리(古邑里). 서쪽은 장풍읍(長豊邑)과 접해 있다. 1952년 군면리 통폐합에 따라 황해도(黃海道) 장풍군(長豊郡) 소남면(小南面)의 두곡리. 지금리(知琴里)를 병합하여 장풍군에 신설한 리(里)로서 북우천에 10개의 여울이 있다하여 십탄리(十灘里)라 하였는데, 1954년에 황해북도 장풍군 십탄리로 되였다가 1960년에 개성시 장풍군 십탄리로 개편 되었다. 1967년에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세골리에 편입하였다. 이 지역은 아호비령 산줄기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놓여 있어 대부분..

용산 언덕 국방부 터는 원래 공동묘지터였다.

작성일 : 2022. 3. 22. 09:06 [한겨레] 노형석 입력 2022. 03. 22. 09:06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과 국방부 청사 땅의 역사 ◇일 방위성의 강점기 자료 보면 ◇국방부 일대 '무덤터' 표시 뚜렷 ◇밀어버리고 일본군 주둔지로 ◇근처 데라우치 총독 관저 설치 ◇원래 사령관 관저 터인데 바꿔 ◇'국방부→대통령실' 현재와 닮아 ▲1906년 일본 군부가 기지 조성을 위해 지금의 서울 용산구 일대에 있던 조선인 마을과 무덤 등 의 현황 등을 조사해 만든 ‘한국 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 용산 지역사 연구자 김천수씨가 2017 년 일본 방위성 문서고에서 확인한 희귀자료다. “거긴 불과 100여년 전까지도 무덤들이 산을 이룬 곳이었어요.” 뜻밖의 증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과 소..

쌍책면 마을 유래

작성일 : 2021. 11. 21. 00:57 ■경남 합천군 쌍책면 마을 유래. ●내촌 : 황강변에 위치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관수정, 황강정이 있다. 문화류씨 법성선생의 유적비가 있으며 15세기 중엽 법성선생이 심은 느티나무는 아직까지도 주민들의 피서지로 이용되고 있다. ◉외촌 : 쌍책면의 소재지로 남쪽으로 흐르는 황강변(黃江邊)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날 가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 던 문화유적지가 많은 곳으로 현재 합천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초계면에 속하였으며 문화류씨가 610년 전에 세거하였다. ●외촌,밤마 : 밤마라는 지명은 중심지에서 떨어진 바깥마을이라는 뜻에서 예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듯 하고, 120년 전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나무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

高靈郡邑誌-1899년 간

작성일 : 2018. 08. 05 高靈郡邑誌-1899년 간 [地圖] [目錄] 高靈郡邑誌 : 高靈郡邑誌, 建置沿革, 郡名, 姓氏, 官職, 俸廩, 公廨, 樓亭, 題詠, 碑板, 倉庫, 田賦, 軍額, 坊里, 戶口, 風俗, 形勝, 土産, 祠廟, 校院, 名山大川, 佛宇, 堤堰, 橋梁, 林藪, 驛院, 烽燧, 場市, 陵墓, 古蹟, 人物, 名宦, 孝子, 烈女 내용 및 특징 1899년에 편찬된 경상북도 고령군 읍지이다. 읍지 내에 정확한 편찬 연기(年紀)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표지에 ‘경상북도고령군읍지(慶尙北道高靈郡邑誌)’로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13도제 개혁이 이루어진 1896년 이후에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읍지의 책 크기, 종이 재질, 판식이 1899년 편찬된 읍지들과 유사하며, 대한제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