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만량(漫浪) 이녕(李寗)선생의 간찰

■ 이녕(李寗), [생졸년] 1527년(중종 27)~1588년(선조 21) [세계] 퇴계 선생의 조카 -------------------------------------------------------------------------------------------------------------------------------------- 공의 휘(諱)는 녕(寗)이고 자(字)는 노경(魯卿), 호는 만량[漫浪=(水良)], 예안(禮安)과 온혜(溫惠)에서 살았으며, 성은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아버지 온계(溫溪) 해(瀣)의 차자(次子)로 1527년(중종 27) 10월에 태어나 숙부(叔父) 퇴계(退溪)에게 수학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현감(縣監)이 되어 청신(淸愼)으로 직무(職務)하였다. 퇴계(退溪)..

관란집(觀瀾集) - 이승증(李承曾) 著

■ 관란집(觀瀾集) 관란 이승증선생문집 석판본 3권1책. 19世 교감공 존사(校勘公 存斯)의 六代孫임. 간행연도 : 1863년[중간본] 필자 소장본(경매일자 : 2009. 09. 11) 필자 소장본(1863년 간행본) ● 문집개요 및 간략 해제. 1821년(순조 21) 傍孫 홍리(弘离)와 7대손 은호(彦灝) 등이 편집 간행한 초간본을 보완한 것으로‚ 1863년(철종 14) 9대손 익경(益慶)과 방손 운정運楨) 등이 중간하였다. 책머리에 오한원(吳翰源)의 서문을 이민수(李民秀)가 쓴 것과 장시하(蔣時夏)의 구서가 있고‚ 책 끝에 성구세(成龜世) 외 5인의 발문이 있다. <故微士觀瀾李先生行狀>을 보면 <九容箴>·<九思箴>·<六有箴>·<三畏箴> 등을 지어 자신을 경계했다고 하는데 지금 전해지지 않는다. 임진왜..

금강산 관광

금강산의 관광 금강산은 각각 특별한 경치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과 바다, 육지의 경치를 모두 가지고 있는 명승지이자 자연경치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종합적 경관의 현장이다. 금강이란 표현을 대표하는 내금강과 만물상과 비봉폭포로 명성이 자자한 외금강, 아름다운 해안암벽과 바위섬, 모래사장과 하천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금강산의 얼굴빛 해금강으로 이루어진 금강산 경치의 아름다움은 옛날부터 하늘나라 옥황상제도 잘 알고 있었다는 표현으로 그 유명세를 증명하고 있다.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에는 풍악,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린다는 금강산은 4계절의 아름다운 절경을 영원히 안고 사는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명승지로 영원토록 그 자취를 더욱 화려하게 이어갈 것이다. ↑..

김조서장군 및 김집선생 묘

■ 나홀로 제51차 능원묘 답사 ◌답사지 : 충남 논산/공주 권역 묘지 ◌일 시 : 2010.05.16(일) 08:30 ~19:00 ↑김종서장군 묘역 입구의 신도비 모습. 최근에 건립한 신도비라고 하지만 귀부(받침돌)가 두꺼비로 만들어 져 있습니다. 어떤 분의 자료를 보니 관리인의 말로는 "마을 입구의 지형이 풍수지리학상 지내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지내와 거북이는 서로 상극이어서 부득이 비석의 받침돌을 거북이가 아닌 두꺼비의 형상으 로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김종서장군묘역 전경. 구 묘비 이외의 대부분 석물은 최근에 조성한 듯... ↑김종서장군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이덕사·이태연 묘역전경. 앞단의 묘역이 매우 특이하다. 기존 묘를 납골묘로 하면서 기존의 상석을 둘렀습니다. ↑이태연선생의 봉분앞에서..

이경징(李慶徵→李慶善)

■ 이경징(李慶徵) /29世 [개명] 이경선(李慶善) [생졸년] 1600년(선조 33) ∼ 1636년(인조 14) 12월 27일 ● 문과시(文科試) ◇문과 : 인조(仁祖) 11년 (163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7위(10등/33명) ----------------------------------------------------------------------------------------------------------- [인물요약] ◇개명 : 이경선(李慶善) ◇자 : 군선(君善) ◇생년 : 경자(庚子) 1600년(선조 33) ◇졸년 : 병자(丙子) 1636년(인조 14) ◇합격연령 : 24세 ◇본관 : 경주(慶州) ◇거주지 : 서울[漢城] [타과정보] ◇진사시 : 인조(仁祖) 2년..

이상설에 대한 인물평

■ 이상설의 인물평 ●안중근 의사(安重根 義士) 1879년(고종 16) ~ 1910년 「이사람(李相卨)의 포부는 매우 크며 세계대세에 밝고 동양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이범윤(李範允과 같은 인물 만인(萬人)을 모아도 이상설(李相卨) 한사람에 못 미칠 것이다.(중략) 수차 만나서 그 인물을 보니 기량(器量)이 크고 사리(事理)통하는 대인물(大人物)로서 대신(大臣)의 그릇됨이 부족함이 없더라.(중략) 세계대세에 통하고 애국심이 강하여 교육발달을 기도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세우는 사람은 이 사람일 것이다. 또한 동양평화주의를 가진 점에 있어서 이 사람과 같이 초절한 마음과 뜻을 갖춘 사람은 참으로 희귀할 것이다. --------------------------------------------------------..

이상설 선생의 유언

■보재 이상설 선생 유언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 ■ 안중근 의사가 본 이상설 "이상설의 포부는 대단히 크다. 세계 대세에 통하고,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 여러차례 만나서 그의 인물을 보니 기량(器量)이 크고 사리(事理)에 통한 대인물(大人物)로서 대신(大臣)의 그릇 됨을 잃지 않는다. 이상설은 재사(才士)로서 법률에 밝고 필산(筆算)에 통달하고 영불일어(英佛日語)에..

이경선(李慶善)등에게 표창하게 하다

仁祖 34卷, 15年(1637 丁丑 / 명 숭정(崇禎) 10年) 5月 26日(癸巳) 1번째기사 ■ 비국의 건의로 좌영장 최진립 등에게 표창하게 하다. 비국이 아뢰기를, “정세규(鄭世規)가 험천(險川)에서 전투를 치룰 때 좌영장 최진립(崔震立), 우영장 심일민(沈逸民), 별장 황박(黃珀), 중군 이건(李楗), 참모관 이경선(李慶善), 방량차사원(放粮差使員) 이상재(李尙載), 군기차사원 김홍익(金弘翼), 심약(審藥) 이시량(李時亮)을 대동하고 갔는데, 심일민은 힘껏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을 뻔하여 벗어났고, 최진립 이하는 모두 진중에서 죽었습니다. 해조에게 표창하고 증직하게 하고 심일민은 관직을 상으로 주게 하소서.”하니, 상이 따랐다. ---------------------------------------..

청계천 끝까지 걷기 및 재래시장 투어 결과

■ 청계천 끝까지 걷기 및 재래시장 투어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 ↑풍물시장 1층을 둘러봤습니다. ↑풍물시장 2층도 둘러보고... ↑다시 청계천으로 내려갑니다. ↑징검다리도 건너고... ↑청계천 판자집을 보기 위해서 위로 올라갑니다. ↑왼쪽에는 청계천 판자집, 길 건너서 오른쪽에는 청계천문화관 건물이보입니다. ↑청계천 판자집 내부도 둘러보고... ↑풍물시장에서 한솥밥을 드셨다는 분들만 사진한장 찍으시겠다고 하셔서... ↑청계천 판자집 전경입니다... ↑청계천 문화관도 둘러보고... 우리가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걸어 온 거야... ↑다시 청계천을 걷습니다. 청계천의하류는 봄기운이 조금보입니다. ↑나물 캐는 아낙내의 모습도 보이고... ↑청계천 걷기 6시간 즈음...이제 다리도 아픕니다. ↑신문에서 여..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까닭은 이순신의 척근에서 그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7인의 숨은 영웅들이 있었기때문인데, 이름은 다음과 같다. ● 나대용(羅大用 : 1556~1612) : 조선 과학 기술의 꽃인 거북선을 만든 사람. 본관 금성(錦城). 자 시망(時望). 전라 나주 출생. 일찍이 문장이 뛰어났으나 나라의 장래를 근심하여 무예수업에 전념하여 28세 때 훈련원 별시(別試)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선조 24)에 전라좌수영 수사(全羅左水營水使)로 있는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그 동안 연구한 거북선의 설계도를 보이는 한편 국방에 대한 계책을 아뢰었다. 충무공은 크게 기뻐하여 그를 막하(幕下)에 두고, 거북선 건조를 위시한 모든 전구(戰具)의 준비 계획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