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검은 배레모가 잘 어울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육군사관학교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에 임관했다. 1960년 미국 육군보병학교를 수료하고 1965년에는 육군대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에 조직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을 지냈다.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과 육군본부 인사참모부를 거쳐, 1966년에는 제1공수특전단 부단장을 지냈다. 1967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이후락의 추천으로 청와대를 경호하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대대장으로 발탁되었고, 1969년에는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실 수석 부관을 지냈다. 이듬해인 1970년 백마부대인 제9사단 29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1971년에는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지냈다. 1973년 육군 준장으로 진급했고, 1..

신사임당 및 옥산 이우 유품 - 강릉시에 기증

이창용(李昌鏞) 서울대 교수 옥산 이우(李瑀)의 15대손 [출생] 출생 1960년 5월 16일 [직업] 정무직공무원, 전 서울대 교수 [학력] 하버드대학교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력]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 단장 ◇2008.03~2009.11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2007.12~2008.02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 인수위원 ◇2003.03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기타 : 덕수이씨(德水李氏)로 신사임당의 4째 아들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15대손 이다. 그는 조부인 고 이장희선생께서 평생 수집한 신사임당과 그의아들 율곡(栗谷). 옥산(玉山) 및 딸 매창 등의 390여점 문화재급 유품을 2007년 3월 13일 어머니 윤양호씨와 함께 신사임당 화첩을 포함하여 강릉시에 기증했다. ..

졸업식 선물의 시대적 변화

졸업선물도 시대별로 변천되어 왔다. 시대적 경제사정의 변천에 따라 학교 졸업, 입학의 기념 선물도 변화되어 왔다. 1. 1960년대 : 졸업장 담는 통. 힘들고 어렵게 공부해서 받은 졸업장의 소중함을 알기에 보관함에 고이 간직하는 마음이 담겨있었지요. 2. 1970∼1980년대 : 만년필 당시만 해도 필기구가 변변치 않아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만년필은 학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 다. 3. 1980년대 : 이때 부터는 경제사정이 윤택해저 졸업·입학 선물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손목시계, 가방, 명품운동화. 명품청바지, 통기타 등. 4. 1990년대 : 이때 부터는 졸업 및 입학 선물로 전자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니카세트, 호출기(삐삐), 컴퓨터 등이 대표적이었고,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한 단계..

1960년대 농촌풍경

↑전형적인 초가마을로, 당시 마을 주변에 버드나무들이 많았었다. ↑어머니와 아이들 ↑손으로 하루 종일 모내기 하고나면 허리도 이웃집과 품아씨로 함께 모여 모내기 했었다. ↑당시엔 수리시설이 잘되어있지 않아 가물면 논가에 우물을 파고 물을 퍼 올렸다. ↑동네 아이들의 노는 모습...여름이면 매미잡고 구슬치기하고 놀았다(1968년 수원) ↑예날엔 벼를 지면에서 약 20mm 높이에서 낫으로 벤후 현지에서 건조시킨후 탈곡이 용이하게끔 께딴을 묶어 각자 집에서 탈곡을 하였었다. 탈곡후 집단은 집동이라 해서 잘 저장한 후 지붕도 이고 동절기 소 여 물(사료)로 사용했다. ↑보리와 콩은 도리깨로 타작을 하고, 타작 후엔 바람개비나 풍구로 알곡을 골라내었다. ↑식량 증산운동의 일환으로 마을 마다 풀베기 운동(퇴비용)을..

목은 이색 가족묘역

↑목은 이색선생 묘(충남 기념물 제89호)ㅣ소재지 : 충남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산1-1 ↑이색선생 묘역 내의 석물들고려 후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색 선생의 묘소는 문헌서원의 좌측 기린산(麒麟山) 중턱에 있는데, 묘자리는 무학대사가 정한 것이라 한다. 무덤의 형태는 원형이며, 무덤 앞에는 망주석·문인상·마상(馬像)이 각각 2기씩 양쪽에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 비석이 서 있다. 비는 단순한 형태이며 앞면에 ‘목은선생 이색지묘(木隱先生 李穡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헌서원 입구에 있는 재실 ↑서원 ..

쌍죽재기(雙竹齋記)

출전>>두암집 쌍죽재기(雙竹齋記) 두암(斗庵) 김약련(金若鍊) [생졸년] 1730(연조 6)~1802(순조 2) 계축년 가을에 문중 사람인 김사묵(金士默)이 개성에서 두암(斗庵)으로 나를 찾아왔다. 서로 악수를 하고 친척간의 우의를 표하였다.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제 집 동쪽은 선죽교(善竹橋)와 가깝고, 서쪽은 죽림당(竹林堂)과 가깝습니다." 아! 포은 정몽주 선생의 순절 사적과 익재 이제현의 전장이 고을의 좌우에 있어서, 사람들이 포은· 익재(益齋) 선생을 함께 추모하고, 존경하고 있다. "당신은 무얼 하시면서 사시고 계십니까?" "저의 집은 가난합니다. 채소를 가꾸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분이 생기면 여종을 시켜 개성 성중(城中)에 가서 팔게 합니다. 성중은 저의 집에서도 가깝습니다. 또 성..

개국군주 망국군주 태조-⑤ 불우한 말년

"지는 해 이성계 “밝은 달 가득한데 나는 홀로 서 있도다”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84호]2010.09.18 입력 최고 지도자 자리는 일체의 사심이 허용되지 않는 자리다. 최고 지도자가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순간 공적인 가치가 추락하면서 조직은 수렁으로 빠져든다.이성계는 선양의 형식으로 새 왕조를 개창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사적인 사연으로 후계자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왕조에 의해 거부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최고 지도자 자리는 일체의 사심이 허용되지 않는 자리다. 최고 지도자가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순간 공적인 가치가 추락하면서 조직은 수렁으로 빠져든다.이성계는 선양의 형식으로 새 왕조를 개창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사..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수리에 현대수학 등장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수리에 현대수학 등장 이재원 조선경제기자 2010/11/02 10:29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01/2010110101908.html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이 쓴 '數理'에 현대수학 등장 자생적 연구 밝혀져… 日 "한국에 전수" 주장 근거 잃어 한국의 근대수학은 구한말 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일본 수학계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선의 근대 지식인들이 자생적으로 수학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1899년 완성된 수학서 '수리(數理)'이다. 이 책에는 '正弦(정현·현재의 sin)', '餘弦(여현·cos)', '正切(정절·tan)'처럼 표현만 다를 뿐 그..

이우(李瑀)

■ 이우(李瑀) ◇생졸년 : 1542년(중종 37)∼1609년(광해군 1). ◇그는 “형” 이이(李珥)의 명성에 가려진 당대의 천재였다. 왕대밭에 왕대난다. 조선 중기의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이름은 우(瑀).또는 후(珝). 자(字)는 계헌(季獻), 호(號)는 옥산(玉山)· 죽와(竹窩)· 기와(寄窩).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이이(李珥)의 막내 동생으로,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이다. 156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비안현감(比安縣監)과 괴산·고부군수(古阜郡守)를 거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시(詩)·서(書)·화(畵)· 금(琴)을 다 잘하여 4절(四絶)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草蟲)· 사군자·포도 등을 다 잘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랐다. 그가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