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시산제 축문(始山祭 祝文)

■시산제 축문(始山祭 祝文) 유세차(流歲次) 2009년 월 일 평화미래연대 산행 일동은 이땅의 모던 산하를 굽어 보시며, 그속의 모던 생육들을 지켜주시는 산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산을 배우고 산을 닮으며,그 속에서 하나 되고자 모인 우리가 한반도 백두대간의 줄기인 지리산에서 첫 산행을 시작한 이래 한 달에 일회 이상 산행을 하며, 그 산행 하나 하나마다 그 산을 배우고, 그 산과 하나가 되는 기쁨으로 충만 하였으니 이것은 산신령님의 자애로운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부디 바라오니 무거운 배랑을 걺어진 우리의 어께가 국건 하도록 힘을 주시고, 험한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배낭속 수통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채워주시고, 험로에 이르러 몸을 의지할 로프가 ..

■ 기타/산 행 2009.04.04

서전서숙의 영향

연변통보 l 향도의 등불 2009년 02월 06일(수요일) 서전서숙의 영향 반일‧항일운동가 가운데서 선구자로 불리었던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은 1899년 2월에 조선 종성읍과 회녕읍에서 4개 가문, 22가속, 141명(김약연 가속 31명, 김하규 가속 54명, 문병규 가속 49명, 남도천 가속 7명)을 동원하여 집단적으로 화룡현 명동촌에 이주, 정착하였다. 1901년에 규암 김약연 선생은 ‘규암재’라는 서당을 꾸렸고 소암 김하규 선생은 ‘소암재’라는 서당을, 남위언은 중영툰에 서재를 꾸렸다. 이런 서당들은 구식 유교구학서당으로 시대에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다 1906년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변화하는 시국과 근대 문화교육의 수요를 감안한 김약연, 정재면..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39-1 -------------------------------------------------------------------------------------------------------------------------------------------- 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화강석(花崗石)을 가공하여 조성한 기단(基壇)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의 곡선(曲線)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長大石)을 우물정자형(井)으로 축조하여 정상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정남(正南)쪽의 석단에는 아래로 부..

백사 문충 이공 묘지명(이항복)/ 李廷龜 撰

■ 영의정 오성부원군 증시 문충 이공 묘지명 (領議政 鰲城府院君 贈諡 文忠 李公 墓誌銘) 지은이 : 이정구(李廷龜) 만력(萬曆) 무오년(1618, 광해군10) 5월 13일에 백사(白沙) 이 상공(李相公)이 북청(北靑)의 적소(謫所)에서 졸(卒)하였다. 그해 8월에 포천(抱川)의 신향(辛向) 기슭에 귀장(歸葬)하고 궤연(几筵)이 동강(東岡)의 옛집에 돌아왔다. 이때 나는 교외(郊外)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면서 이미 몇 줄의 글로 공의 묘표(墓表)를 지었고, 또 1300여 자나 되는 장문의 제문(祭文)을 지어 곡(哭)하였다. 그리고 12년 뒤 기사년(1629, 인조 7)에 태학사 장공 유(張公維)의 행장에 의거하여 서문을 쓰고, 명(銘)을 붙인다. 그 서문은 다음과 같다. 공의 휘는 항복(恒福), 자는 자..

경주최부자집

■ 경주 최 부자 ↑둔차(鈍次) : 경주 최 부자의 어리석은 듯이, 드러내지 않는 버금감 부불3대(富不三代),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듯이 부와 권력은 고금을 통해서 오래도록 유지해 나가기가 어려운법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거나 목표에 미달 되었을 때, 또는 남과 비교하여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내 스스로를 위안 하고자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詩)를 떠 올린다.「물 좋으면 되었지 정자(亭子)까지 좋을 수야 있나?」하며 위안을 삼는 글이다. ●독소(獨笑, 홀로 웃다) - 정약용(丁若鏞) 유율무인식(有粟無人食) : 양식 많은 집엔 자식이 귀하고 다남필환기(多男必患飢) :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달관필창우(達官必창愚) :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재자무소시(才者無所..

“조정이 어찌 유학자를 죽이는가” (백호 윤휴-2)

[한겨레21] 백호 윤휴②…송시열에 맞서 예송논쟁에 뛰어들고 북벌을 주창한 전사… 호포제로 백성의 아픔을 덜어주려 했던 학자는 왜 사약을 들어야 했나. ● 이덕일 역사평론가 ↑《영릉(寧陵)》조선 제17대왕 효종(孝宗)의 릉 1659년 북벌 군주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만 40살의 젊은 나이로 승하했다. 효종은 승하 한 달 전쯤 송시열과 독대를 자청해 북벌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효종은 혈기와 지기(志氣)가 손상될 것이 두려워 내전(內殿)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며, '주색을 끊고 경계하여 정신이 맑고 몸도 건강해졌으니 어찌 앞으로 10년을 보장할 수 없겠는가'라며 북벌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그는 급서했다. 효종의 죽음은 엉뚱하게 예송(禮訟) 논쟁을 낳았다. 효종의 계..

은송정(隱松亭)

■ 은송정(隱松亭) 이영우(李英雨 :1853-1913). 경주이씨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으로 형조판서(刑曹判書)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10대손이다. 자(字)는 문칙(文則), 호(號)는 은송(隱松), 1853년(철종 4) 9월 29일 오늘날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태어났으며, 향토와 벗을 좋아하고 사랑 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여 향중 벗들이 존경 하였다. 1959년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 2리(안개실 또는 상가곡) 안산 선영아래 후손들이 그의 학문(學問)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 (齋室)이다. ■ 은송정기(隱松亭記) 저번에 고령(高靈)의 이태희(李台熙)라 하는 분이 한권의 가승(家乘)을 가지고, 내집문에 이르러 뵙기를 청(請)하고 말하기를, 이는 우리집의 파보(派譜)이고, 하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