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서숙의 영향
연변통보 l 향도의 등불 2009년 02월 06일(수요일) 서전서숙의 영향 반일‧항일운동가 가운데서 선구자로 불리었던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은 1899년 2월에 조선 종성읍과 회녕읍에서 4개 가문, 22가속, 141명(김약연 가속 31명, 김하규 가속 54명, 문병규 가속 49명, 남도천 가속 7명)을 동원하여 집단적으로 화룡현 명동촌에 이주, 정착하였다. 1901년에 규암 김약연 선생은 ‘규암재’라는 서당을 꾸렸고 소암 김하규 선생은 ‘소암재’라는 서당을, 남위언은 중영툰에 서재를 꾸렸다. 이런 서당들은 구식 유교구학서당으로 시대에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다 1906년 용정에 세워진 ‘서전서숙’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변화하는 시국과 근대 문화교육의 수요를 감안한 김약연, 정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