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시공사 사장 전재국 “대통령 아들로 사는 것, 너무 힘들었다”

■ 전재국 회장 프로필 ☀직업 : 출판인. 문화예술인 ☀출생 : 1959년 10월 27일 서울 ☀학력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정책학 박사 1983 ~ 1990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78 ~ 1983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5 ~ 1978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경력 : 1993.07 음악세계 대표 1991.07 시공사 대표이사 회장 ☀수상 : 2006 국무총리표창 2001 산업자원부장관표창 1998 문화관광부장관상 출처>백과사전 --------------------------------------------------------------------------------------------------------------------------------- ..

경주이씨 실전세계고찰(慶州李氏失傳世系考察)

■ 경주이씨(慶州李氏)「실전세계(失傳世系)」고찰(考察) ☆1987년 중앙화수회 간행「경주이씨 대종보(慶州李氏大宗譜)」총편(總編) 293페이지에 실려 있는 전문이다. 과거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후세에 계전(繼傳)한다는 것이 심히 어렵다는 것은 주지(周知)하는 바이며, 모든 민족사나 국가의 변천 역시 사실 그대로 전해지지 않음으로서 역사학자들의 논쟁(論爭)의 원인이 되고, 때로는 고증(考證)에 의거하여 바르게 수정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그 이유를 문자(文字)가 있기 이전과 이후로 대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문자(文字)를 사용하기 이전은 구전(口傳)과 유적(遺跡) 등으로 유전(流傳)되는 것을 후세에 성문화(成文化)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만 하더라도 신라..

제사, 시제의 축문해설

■ 제사축문(祭祀祝文)의 주요 문구에 대(對)한 해설(解說) 축문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일이 그 격식을 따지자면 요즘 같은 시대에 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시대가 변하고 생각하는 사고가 달라졌음으로, 조상 대대로 전례 오는 제례의 근본정신은 계승하되 오늘 날에 맞는 격식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 부인하지 않는다.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따르는 여러 가지의 축문(祝文)과 고사(告辭)를 사용함에 있어, 흔히 나오는 주요 문 구(文句)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둔다. -------------------------------------------------------------------------------------------------------------------------------..

"권력은 나눌 수 없다" 태종의 혹독한 가르침

■ 「권력은 나눌 수 없다」태종의 혹독한 가르침. 이덕일의 事思史>조선 왕을 말하다. 제159호 | 20100328 입력 모든 시대에는 명암이 존재하는데 세종시대 또한 마찬가지다. 세종이 강행했던 ‘수령고소금지법’은 백성들의 큰 반발을 샀다. 애민 군주로 알려진 세종이 왜 이런 악법을 고수했는지는 더 연구해야 할 과제이지만 순리를 거스르는 이런 법은 조선의 개국정신과도 맞지 않았다. 이런 진통들을 겪으며 세종은 비로소 백성들이 나라의 근본이란 깨달음으로 나아갔다. ↑만송원 쓰시마섬 이즈하라시에 있다. 쓰시마섬의 토착 영주인 소씨(宗氏)의 원찰이다. 태종은 대마도 정벌을 통해 세종에게 군권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쳤다. 성공한 국왕들 세종 ① 애민 군주의 출발 세종 4년(1422) 5월 8일. 세종은 와병 중..

제사상 차리기 알아두어야 할 점.

■ 제사상 차리기 ○ 제사상 차림의 기준 위치는 지방(신위)이 있는 쪽이 항상 북쪽이다. ○ 신위의 오른쪽은 동쪽, 신위의 왼쪽은 서쪽이다/참사자 쪽에서 볼때) ○ 남자 조상은 서쪽(왼쪽) 여자 조상은 동쪽(오른쪽)에 위치 한다./참사자 쪽에서 볼때. ○ 남좌여우(男左女右) 즉남자조상의신위(지방)앞에밥→시저→국은왼쪽에놓고), 여자 조상은 오른쪽에 놓는다./참사자 쪽에서 볼 때. ○ 제사는 배우자 모두 돌아가셨으면 양위분을 함께 모신다. ○ 합설(合設)일 경우에는 밥, 시저. 국, 술잔은 따로 놓고 나머지 제수는 공통으로 한다. ○ 밥(메)은 서쪽(왼쪽), 국은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반서갱동(飯西羹東) 즉 산 사람의 상차림과 반대이며 수저는 중앙에 놓는다. ○ 육고기는 서쪽(왼쪽), 생선은 동쪽(오른쪽..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전, 어머니가 또 죽었을 때 그 복(服)에 관한 설

■ 아버지가 죽어 장례를 치르기 전에 어머니가 죽었을 때 그 복(服)에 관한 설. 글쓴이 : 이남규(李南珪) [생졸년] 1855(철종6) ~ 1907(순종1) 조선말의 의사자로, 자는 원팔(元八), 호는 수당(修堂), 본은 한산(韓山)이다. 고종 19년 문과급제 후 궁내부특진관을 역임하였다. 유학자로 항일상소를 수차 올렸고, 일본 헌병에게 암살당하였다. 피화지(被禍地)에 아산군에서 비를 세웠으며,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묘는 대술면 방산리에 있다. 온양(溫陽)의 강태□(姜泰□)이, 아버지가 죽어 아직 장례를 치르기 전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정범약(鄭範若)을 통해 어머니에 대해 3년복을 입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물어 왔으나, 창졸간이라 널리 상고하지 못하고 다만 상복편(喪服篇) 소(疏)의 ‘아..

1960년대의 추석 귀향풍경

↑"싼 것이나 사 입혀야죠" 추석 한산한 시장에 나온 어머니(동대문시장. 1962년 9월 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 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1968년 10월 5일) ↑콩나물 시루 같은 객차에나마, 미처 타지 못한 귀성객들은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거의 필사 적이다.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1969년 9월 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변하기도(1969년 9월 24일)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 (1969년 9월 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오만한 西人에 분노한 임금, 정권 바꾸려다 의문의 죽음(효종)

■오만한 西人에 분노한 임금「정권 바꾸려다 의문의 죽음」 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제122호 | 20090712 입력] 국가 통치이념이 현실에서 벗어나 사변(思辨)으로 흐르면 이미 사회 통합과 선도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예송논쟁은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처럼 무의미한 논쟁은 아니었으나 경신 대기근을 겪은 나라가 걸어야 할 길은 아니었다. 백성에게 필요한 것은 식량이었으나 집권 서인은 겉과 속이 다른 예론에 집착했다. 예론은 자신들의 당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외피에 불과했다.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있는 효종 부부의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죽음은 1, 2차 예송논쟁을 각각 촉발했다. 1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한 서인은 2차 예송논쟁으로 몰락했다. 三宗의 혈맥 현종 ⑥ 34세의..

경주이씨 율과 합격자 명적(律科合格者名積)

■ 경주이씨 율과 합격자 명적(慶州李氏律科律科合格者名積) 총14명(11.48%) 조선시대에, 잡과(雜科)가운데 형률(刑律)에 밝은 사람을 뽑던 과거로서, 초시(初試)·복시(覆試)로 나누어 시험을 보았으며, 식년시와 증광시가 있었다. 순위 이름 생년 관직 시장시기(試場時期) 등위 아버지 01 이국재 (李國材) 丙申 1716년 교수(敎授) 1740년(영조 16) 庚申 증광시(增廣試)/25歲 이경호 (李慶琥) 02 이국주 (李國柱) 壬辰 1712년 별제(別提) 1732년(영조 8) 壬子 식년시(式年試) /21歲 이경호 (李慶琥) 03 이유무 (李惟茂) 辛未 1691년 1727년(영조 3) 丁未 증광시(增廣試) /37歲 이시휘 (李時輝) 04 이이정 (李以楨) 癸巳 1653년 活人署別提 1675년(숙종 1) 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