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이우(李瑀)

야촌(1) 2010. 12. 1. 20:28

■ 이우(李瑀)

 

    생졸년 :  1542년(중종 37)∼1609년(광해군 1).

   ◇그는 “형” 이이(李珥)의 명성에 가려진 당대의 천재였다. 

 

왕대밭에 왕대난다.   

 

조선 중기의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이름은 우(瑀).또는 후(珝). 자(字)는 계헌(季獻), 호(號)는 옥산(玉山)· 죽와(竹窩)· 기와(寄窩).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이이(李珥)의 막내 동생으로,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이다. 

 

156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비안현감(比安縣監)과 괴산·고부군수(古阜郡守)를 거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시(詩)·서(書)·화(畵)· 금(琴)을 다 잘하여 4절(四絶)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草蟲)· 사군자·포도 등을 다 잘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랐다. 

그가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화훼초충(花卉草蟲)을 잘 그렸다고 전한다. 

 

아들 경절(景節) 또한 가법(家法)을 이어 서· 화· 금에 능하여 3절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25세때 산후(産後)로 요절(夭折)한 그의 딸 벽오부인(碧梧夫人)도 재행(才行)이 아름답기로 이름 났으며, 율곡선생에 비견할 정도로 학문의 깊이와 재주를 가져, 시, 서화, 금. 바둑에 능했다, 

 

또한 외가 덕산황씨 낙양군(洛陽君/덕산황씨 문중에 질의 한바 낙양군호를 받은 분은 없다고 함)의 묘지명을 지어 회자되기도 했다 

옥산(玉山)의 묵매화(墨梅畵)는 주로 횡관식구도(橫貫式構圖)로 힘차게 묘사하였다. 

유작으로는 《설중매죽도 雪中梅竹圖》(개인 소장)·《노매도 老梅圖》.《수과초충도 水瓜草蟲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포도도 葡萄圖》 등이 전하고 있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북산리 응봉 아래에 있으며 부인 황씨(黃氏)와 합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표창을 받았다.  지역 유림에 의해 무동서원(茂洞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옥산 이우 선생의 후손들이 고산 황기로 선생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옥산 이우선생 유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