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촌 이재훈 435

합천의 역대 수령 명단 - 조선조

■ 합천의 유례 경남 합천은 원래 신라(新羅)의 대량주(大良州)로서 경덕왕(景德王)때 강양군(江陽郡)으로 개칭되었고, 고려(高麗)때는 현종(顯宗)이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서 즉위(卽位)하고 또 효숙왕후(孝肅王后)의 본향(本鄕)이라는 이유로 해서 지협주사(知陜州事)가 파견되는 지역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이르러서는 태종(太宗)때 합천군(陜川郡)으로 개칭하고 진주진관(晋州鎭管)에 소속되었다. 이후 1629년(仁祖 7) 역옥죄인(逆獄罪人)의 태생지(胎生地)라는 이유 때문에 현(縣)으로 강등 되었다가 1644년(仁祖 22) 다시 군(郡)으로 환칭()還稱된 바 있다. 대량(大良), 강양(江陽), 합천(陜州)은 모두 합천의 고명(古名)이며, 이외 고명으로는 대야(大耶)가 있다. 합천읍지(陜川邑誌..

양경공 정문형(良敬公 鄭文炯)선생 묘-정도전(鄭道傳)의 증손

■ 정문형(鄭文炯, 1427~1501) 본관 봉화(奉化). 자 명숙(明叔). 호 야수(野叟). 시호 양경(良敬). 개국공신 도전(道傳)의 증손.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正字) ·감찰을 지냈다. 1455년(세조 1)에는 교리로 좌익(佐翼)공신에 책록되었고, 이어 사간이 되고 1460년 예조정랑, 1464년 한성부윤 ·공조참의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 1466년 함길도절도사, 변정원(辨定院: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정3품)를 지내고 이듬해 중추부동지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1472년(성종 3) 병조참판, 1487년 강원도관찰사, 1489년 우참찬((右參贊-正二品)을 역임하였다. 이조와 호조의 판서(判書-正二品), 세자시강원빈객(賓客) ·경상도순변사..

조선조 역대 일본 통신사 일람

■조선조 역대 일본 통신사 일람(朝鮮朝 歷代日本通信使一覽) 통신사 왕조(서력) 관 향 관 직 비 고 박돈지(朴敦之) 태조 6(1397) 밀양(密陽) 검교참찬(檢校參贊) 父 : 朴允文 박 화(朴 和) 태종 9(1409) 밀양(密陽) 부사직(副司直) 정사(正使)구금 후 견환 송희경(宋希璟) 세조 2(1420) 신평(新平) 승정원정(承政院正) 회례사(回禮使) 변중문(卞仲文) 세조 25(1443) 통신사(通信使) 신숙주(申叔舟) 세종 25(1443) 고령(高靈) 영의정(領議政) 서장관(書狀官) 송처검(宋處儉) 세조 5(1495) 청주(淸州) 첨지사(中樞院僉知事) 미달 익사 이 근(李 覲) 세조 5(1495) 장성(長城)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서장관(書狀官) 이형원(李亨元) 세조 10(1464) 광주(光州) 부..

호당록(號堂錄) - 조선조

■호당록(湖堂錄) 조선조(朝鮮朝) 총257명 서기 1426년(세종 8)에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젊은 문신(文臣)들에게 수양과 학문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장소를 제공하였는데 , 그 곳을 독서당(讀書堂)이라고도 하였다. 1446년 (세종 28)에 집현전(集賢殿) 학자인 권 채(權 採). 신석견(辛碩堅). 남수문(南秀文) 등을 세종(世宗)이 친히 불러 “너희들은 비록 어린 나이지만 장래가 매우 촉망된다 하니, 지금부터 벼슬은 그만두고 각자 집에서 편안히 독서에 전념하여 장래를 기약하도록 하라”고 분부하고 사가(賜暇 :휴가를 줌)를 내렸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당시 대제학 이었던 변계량이 책임을 맡아서 장의사에 장소를 마련하여 문신들을 선정하여 공부시킴으로 중추적인 인재들을 배출시켰다. 1456년(세..

조선조(朝鮮朝) 공신(功臣) 배향 일람-보학요람

공신(功臣)이란? 국가나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던 칭호이다, 이는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서 신라시대에 이미 녹공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왕건이 개국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3등급으로 구분하여 각각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상을 내렸으며, 공신당(功臣堂-공신각)을 두어 1등 및 2등 공신의 화상을 벽에다 그려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라 일컬었고, 훈전(勳田)을 내려 대대로 그 자손을 관직에 등용하였다. 이러한 공신들에게 초기에는 녹권(錄券)을 주어 공신 증명으로 하였으나, 말기의 중흥 대신에게는 녹권 이외에 따로 교서를 주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태조(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공신에 녹훈(錄勳)된 개국공신 및 정사·좌명공신을 비롯한 28종에 이르는 공신..

조선 왕조별 청백리 배출현황

■청백리(淸白吏) 청백리(淸白吏)는 조선 시대 조정에 의해 선정된 청렴결백한 벼슬아치를 가리키는 말로 세상의 바른길을 장려하고 청조(淸操)를 진흥시키기 위해 제정한 제도로 청백리로 녹선(錄選)되면 품계(품階)가 오르고 그 이름이 기록에 남아 추앙을 받았으므로 그 종중과 자손들이 큰 자랑으로 삼았다. 선출 방법은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략 의정부(議政府), 육조(六曹), 한성부(漢城府)의 2품 이상의 관원과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의 수직(首職)들의 추천에 의하였다.이 제도는 조선조에 관리들 중에서 청렴결백한 사람만을 선발하여 후세에 길이 거울삼게 했던 관기숙정(官紀肅正)을 위한 제도였다. 여기에 선발되기 위하여는 엄격한 자격 심사의 심의를 거쳐 임금의 재가(裁可)를 얻어야 했다. 또 녹선(錄選)이 ..

성씨별 상신, 문형, 청백리, 호당 배출 수(조선시대)

■ 조선시대 본관별 인물 배출 수 ● 본관별 상신 배출수(조선시대 총 363명) 01. 전주이씨 : 22명(영의정 11명, 좌의정 6명, 우의정 5명) 02. 안동김씨(신) : 19명(영의정 10명, 좌의정 6명, 우의정 3명) 03. 동래정씨 : 17명(영의정 5명, 좌의정 7명, 우의정 5명) 04. 청송심씨 : 13명(여의정 9명, 죄의정 4명) 05. 청주한씨 : 12명(영의정 6명, 좌의정 2명, 우의정 4명) 〃 여흥민씨 : 12명(좌의정 7명, 우의정 5명) 06. 파평윤씨 : 11명(영의정 4명, 좌의정 2명, 우의정 5명) 07. 달성서씨 : 9명(영의정 7명, 좌의정 1명, 우의정 1명) 〃 남양홍씨 : 9명(영의정 6명, 좌의정 1명, 우의정 2명) 08. 경주이씨 : 8명(영의정 4..

고경명(高敬命)

■ 고경명(高敬命) [생몰년] 1533년(중종 28)∼1592년(선조 25). [문과] 명종(明宗) 13년(1558)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합격연령 26歲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7년(15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18위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7년(15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진사 1등(一等) 4위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의병장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