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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공전

■ 성암공전(誠菴公傳) [지은이] 외사씨『外史氏, 1780년(정조 4)~1832년(순조 32))』 고려 때 이인정은 경주인이다. 자태가 간중 방정하여 뜻을 삼대의 정치와 같이 하는데 두었고 경륜과 지조는 부귀영화와 길흉화복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젊어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언론이 심히 높아서 군자들은 믿고 소인들은 꺼려하였다. 그 시조는 급양부 대인 알평인데 신라 창업하는데 으뜸가는 공신이시다. 그 후손 휘 핵의 호는 열헌이고 벼슬은 증직이 상서좌복야이다. 배위는 군부인 김해김씨이니 늘리 서사를 통달하여 친히 세 아들을 가르쳐 큰 선비로 만들었으니 장자 인정의 호는 성암인데 고종조에 출생하여 진사와 광주 판관을 거쳐 충렬왕 경진(1280) 삼월 을묘에 민 묵헌 지와 같이 전 중시를 지어 올렸다..

곽광(藿光)-중국 전한(前漢) 때의 대신

■ 곽광(藿光) ?~BC 68. - 중국 전한(前漢) 때의 대신. 자(字)는 자맹(子孟). 하동(河東)의 평양(平壤) 사람이다. 무제(武帝)때 봉거도위(奉車都尉)와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냈다. 무제가 죽고 소제(昭帝)가 8세에 즉위하자, 상관걸(上官桀)· 상홍양(桑弘羊)과 함께 무제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소제를 보필하며 모든 정치를 도맡았다.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이 되어 상서(尙書)의 일을 맡아 조정의 일을 총지휘했고, 박륙후(博陸侯)에 봉해졌다. BC 83년에 소제가 상관안(上官安)의 딸을 황후로 맞아들이자, 황후의 외할아버지 신분으로 조정 일을 전담했다. 여러 차례 재정지출을 삭감했으며 조세와 농지세를 감면했고, 공전(公田)을 하사했으며, 종자와 식량을 대출해 주었다. BC 81년에는 현명한 ..

소하(蕭何). 장량(張良)

■ 소하(蕭何, BC? ~ 193) 검약(儉約)과 청렴(淸廉)의 처세술(處世術)로 고조의 의심을 피한 재상(宰相)이다. 패현(沛縣:지금의 장쑤 성[강소성(江蘇省)]에 속함) 사람으로, 전한 건국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이다. 그는 패현의 하급관리를 지내다가 BC 209년 훗날 한(漢)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을 도와 진(秦)의 수도 셴양(咸陽)을 점령했다. 그 후 진의 승상(丞相) 어사부(御史府)에 있던 율령집(律令集)들을 거두어 전국의 호구(戶口)와 민정을 장악했다. 항우(項羽)가 유방을 한왕(漢王)에 봉했을 때도 그는 한의 승상으로 있으면서 관중『關中:산시성(陝西省) 웨이허 강(渭河) 일대』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확대에 주력했고, 한신(韓信)을 유방에게 천거하여 대장으로 삼기도 했다. 초(楚). 한..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년(고종 7년). 1월 27일(음력12월 7일) ~ 1917년. 3월. 2일(음력 2월 9일 금요일)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선생은 1870년 1월 27일(음력 12월 7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경주 이씨 이행우(李行雨) 선생과 벽진이씨(碧珍李氏)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7세때 이조(吏曹)와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낸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용우(李龍雨)선생의 양자로 출계(出系)되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한학을 공부하는 한편, 독학으로 신학문을 깨우치는 등 두뇌가 명석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였다. 25세 때인 1894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과거인 갑오문과에 급제하여 27세에 성균관 관장, 한성사범학교 교관 등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일제의 황무..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의 중국 두만강 시찰.

↑2006년 4월 23일 부터 4박 5일간 선현들의 중국 만주지역 독립운동사 유적지 및 지방정부, 언론사 등을 시찰했다. 좌측으로부터 김순무 전 농축산물 유통공사 사장, 다음이 변경섭 민주평통 운영위 간사, 다음이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 다음이 허룡 훈춘시 부시장, 다음은 임장춘 연변일보 고문이 권하통상 세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국경선인 다리의 중앙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관장의 뒷편 모자쓴이가 필자이고 그뒤 여성분은 시장(市長)을 대신하여 그의 부인 김성희(서울 성공회대학교 유학 출산)씨가 영접했다.

우리나라 지도의 땅끝과 러시아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철도.

앞에 보이는 철교가 우리나라 땅끝 함경북도와 러시아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철교다. (강건너 우측이 함경북도이고 좌측이 러시아 연해주이며 우리가 서있는곳은 중국의 훈춘으로서 러시아와의 국경지점이다) 이곳의 전망대 벽에 동해를 일본해(日本海)라고 표기되 있었는데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께서 이를 발견하시고 노발 대발 즉각 허룡 훈춘 부시장을 불러 동해로 표기 할것을 요구 즉각 시정하겠다고 답변을 받았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전 이재정 수석께선 다시한번 허룡 부시장께 당부 그분의항일 의지를 옅볼수 있었다. 그분은 역시 만주 벌판의 항일투사 선구자의 후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