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묘지명(墓誌銘)

성암공전

야촌(1) 2006. 5. 6. 22:45

■ 성암공전(誠菴公傳)

 

[지은이] 외사씨『外史氏, 1780년(정조 4)~1832년(순조 32))』

 

고려 때 이인정은 경주인이다. 자태가 간중 방정하여 뜻을 삼대의 정치와 같이 하는데 두었고 경륜과 지조는 부귀영화와 길흉화복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젊어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언론이 심히 높아서 군자들은 믿고 소인들은 꺼려하였다. 그 시조는 급양부 대인 알평인데 신라 창업하는데 으뜸가는 공신이시다. 그 후손 휘 핵의 호는 열헌이고 벼슬은 증직이 상서좌복야이다.

 

배위는 군부인 김해김씨이니 늘리 서사를 통달하여 친히 세 아들을 가르쳐 큰 선비로 만들었으니 장자 인정의 호는 성암인데 고종조에 출생하여 진사와 광주 판관을 거쳐 충렬왕 경진(1280) 삼월 을묘에 민 묵헌 지와 같이 전 중시를 지어 올렸다 첨의부 기거사인을 역임하고 사간원의 정언과 사간을 거쳐 벼슬길을 이르렀다.

 

나주 영강사와 고흥세덕사에 배향되었다. 차자 진의 호는 동암인데 진사와 문과시에 장원하여 검교정승에 올랐고 시호는 문정이라 아우 세기와 더블어 문과증시에 천장급제를 하니 왕이 황패를 주고 왕의 문생이라 칭하였으니 특수한 영화는 이수다.

 

검교정승을 하였고 호는 송암이요. 성암이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 부는 문과 장원하여 내서사인이요 차자 규는 일위은 조은인데 문과에 장원하여 우헌납 덕원부사를 역임하였다.

 

동암의 아들 가락군 관은 문과 급제하였고 문충공 익재 제현은 네 번이나 정승자리에 올랐고 지정은 대호군이요 송암의 아들 국당 천은 문과 급제하여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고 시호는 문효이다.

 

민묵헌의 시에 화방삼가오방괴라 하였으니 이분들을 가리킴이요. 매는 부령이고 과는 상서요 수는 사인이니 열헌공의 세 아들과 아홉 손자가 모두 현달하고 대대로 문형을 잡었으니 익재의 미주시에 그대들은 계림의 삼이들보지 못하였느뇨 하였으니 또한 모두 인걸이란 글귀였으니 이것을 보면 문벌의 혁혁함을 가히 알겠도다.

 

성암공이 기거사인으로 있을 때, 염승익을 탄핵하였고 충렬왕 2년 병자(1267)에 우정언으로 있을 때, 내수들이 수종한 공로로 벼슬길을 열어주어 조반에 잡칙 하려하니 성암공이 말하기를 조종의 제도에 어긋나며 또한 예로부터 국가의 망함은 여색과 내수들 때문인데, 내수들의 화독이 여색에 몇갑절 됩니다 그 증거론 한나라와 당나라가 있습니다.

 

청컨대 내리신 하명을 거두어 주시오 하니 왕이 노하사 일을 보지말라고 하였다. 혹인이 투서하여 참소하기를 공이 백여인과 더블어 달로화적을 죽이려고 한다하여 항쇄 족쇄의 형을 받았는데 이윽고 그 투서가 무고임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사간으로 있을 때, 국가에 공이 없으면서 대대로 죄만 지은 무리들을 많이 등용하고 자하니 공이 백문절과 이직함 행검과 정정간 문등과 같이 고신장에서 명하지 아니하여 임금의 뜻을 거슬렸는데 이존비가 감찰사의 장계를 올리니 임금이 첨의부의 장계인줄 오인하고 이들을 파직시키니 문인공 이지지가 자초지종을 계문하여 복직되었다.

 

사관이 말하기를 공의 성품이 강직하여 굴 할줄을 몰랐다. 무릇 벼슬을 내릴 때는 반드시 그의 공과 과실을 자세히 살피고 구차히 서명하지 않으니 사람들의 말이 자자하나 강직한 호연의 기운으로 용맹스러이 왕의 앞에가서도 굴하지 않으니 내수잡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대각에 바람이 일어났다.

 

대범 간관의 직책은 위는 비록 나차우나 국가의 이목이라 왕앞에 서면 왕으로 더불어 시비를 다툴자는 오즉 재상과 간관이라 재상은 도를 행하고 간관은 말을 행하는 것인데 말이 행하면 도 또한 행하나니 국가 체통과 안위의 매인 바는 재상과 마찬가지이다.

 

옛 말에 벼슬하려면 재샹이 되지 않으면 간관이 된다 하였으니 다른 벼슬과는 비할 바가 아니라 하였으니, 그 직책이 무겁고 또 크도다. 공이 위로는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고 아래로는 간사한 사람의 포악을 억제하여 법강을 천하 만세에 밝혔다. 범함이 있으면 숨기지 아니하고 거듭 여러번 견책을 당하여도 더욱 강직하여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항의하였다.

 

옛 군자는 그 위에 있으면 그 벼슬에 죽기를 생각하나니 공은 옛 유직의 신하이니 옛날 주운과 당계와 터를 바귀면 동일하다 말을 다하여 자주 자주 간직하면 비록 동료 이하라도 좋아하지 않거든 하물며 임금이 어찌 즐겨 받으랴.

 

문벌과 재행과 문장으로 말하면 마땅히 높은 벼슬에 오를 것이나 임금이 측근에 있는 내수들의 감언 이설을 듣기 좋아하고 환관들이 저해하여 참소하니 여러번 그 관직을 삭탈 당하였고 유배까지 당했다.

 

임금에게 아첨하는 사람은 지위가 날로 오르되 공은 직위도 크게 오르지 못하고 이름도 크게 나타나지 못하되 공의 마음은 항상 나라를 근심하고 충성을 다하였다. 영화와 화복을 관여치 아니하고 일단 호연강직의 기운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