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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연 움켜쥔 인연보다 나누는 인연으로 살고 각박한 인연보다 넉넉한 인연으로 살자. 기다리는 인연보다 찾아가는 인연으로 살고 의심하는 인연보다 믿어주는 인연으로 살자. 눈치 보는 인연보다 손뼉치는 인연으로 살고 비난하는 인연보다 칭찬하는 인연으로 살자. 무시하는 인연보다 존중하는 인연으로 살고 원망하는 인연보다 감사하는 인연으로 살자. 흩어지는 인연보다 하나 되는 인연으로 살고 변덕스런 인연보다 한결같은 인연으로 살자. 속이는 인연보다 솔직한 인연으로 살고 부끄러운 인연보다 떳떳한 인연으로 살자. 해가 되는 인연보다 복이 되는 인연으로 살고 짐이 되는 인연보다 힘이 되는 인연으로 살자. 출처 : 인터넷

순(舜)/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성왕

■순(舜)-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성왕 ▲三皇五帝의 마지막 임금~ 舜순임금 순(舜)의 성은 요(姚)요, 휘(諱)는 중화(重華)요, 역사 에서는 그를 요(堯)· 우(禹)로 병칭되고 있다 전설상의 유명한 성군의 한 사람으로 50년간 재위했다. 남쪽으로 순행하던 도중에 창오(蒼梧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동남)에서 100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그 시신은 구억산(九嶷山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 기슭에 묻혔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순은 전욱(顓 頊)의 6세손으로 그의 아버지 고수(瞽膄)는 장님으로 평범한 농민이었다. 순이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어머니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버지 고수는 재혼 했었다. 고수는 어리석어 후처와 그녀의 자식만 좋아하고 순을 좋아하지 않았다. 계모는 속이 좁고 악랄 ..

동중서(董仲舒)

■ 동중서『董仲舒, BC 179년경~BC 104년경』 ▲동중서『董仲舒, BC 179년경~BC 104년경』 기원전(BC) 136년 유교를 중국의 국교이자 정치 철학의 토대(土臺)로 삼는데, 이바지한 철학자이다. 한(漢) 무제(武帝 : BC 140~87) 때의 재상(宰相)이었던 동중서는 조정에서 유학자가 아닌 학자들을 모조리 쫓아낼 것을 건의(建議)하여 유교(儒敎)가 한(漢)의 사상적 바탕이 되는 계기(契機)를 마련했다. 또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세울 것과 귀족과 지방관들에게 해마다 뛰어난 재능과 훌륭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을 추천하게 하여 관리로 임명하도록 제안했다. 이러한 제도는 비록 출신은 비천(卑賤)하지만 능력(能力)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권력과 영향력(影響力)이 ..

요(堯) - 중국 전설상의 성천자(聖天子)

■ 요(堯) : 중국 전설상의 성천자(聖天子) 중국 전설상의 성천자(聖天子). 요(堯)의 성은 이기(伊耆)요. 이름은 방훈(放勛), 호는 도당씨(陶唐氏), 또는 제요(帝堯), 당요(唐堯)라고도 한다. 그는 어질고 덕망있는 사람들을 초빙해서 국정을 보좌케 했다. 그리하여 후직(后稷)은 농사(農師)를, 수(人+遂)는 공사(工師)를, 고요(皐陶)는 법관을, 기(夔)는 악관(樂官)을, 순(舜)은 교육을 담당하는 사도(司徒)를, 설(契)은 군대를 담당하는 사마(司馬)를 각각 맡았다. 이리하여 천하는 태평해지고 비와 바람도 순조로와져, 백성들은 모두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어린 자식같이 사랑하는 정치(政治)를 함으로 모두 격양가(擊壤歌)를 불렀다함. 7년의 홍수(洪..

익재 이제현 선생 화상(국보 제110호)

↑국보 익재 이제현 화상(국보 제110호) 고려 후기 문신이요,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선생의[1287년(충렬왕 13) - 1367년(공민왕 16)]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趙孟頫, 1254년-1322년)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 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는 익재(益齋), 또는 역옹(櫟翁)으로, 『국사』, 『역옹패설』 등을 남겼다. 가로 93cm X 세로 177.3cm 크기의 의자에 앉은 모습을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그림 위쪽에는 원나라 문장가인 탕병룡이 쓴 찬(贊)과 잃어버린줄 알았던 이 그림을 33년 만에 다시 보고 감회를 적은 익재의 글이 있다. 대부분의 초상화가 오른쪽을 바라보는데 비해 이 영정은 왼쪽을 바라보..

익재 이제현의 저작(著作)

↑益齋 李齊賢先生 畫像(國寶 第110號. ● 익재 초상의 주해. 고려 후기 문신(高麗 後期 文臣)이자 학자(學者)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 1287∼1367) 先生의 초상화이다. 이제현은 원(元) 나라의 만권당에서 조맹부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號)는 익재(益齋), 역옹(櫟翁)으로,『국사』『역옹패설』등을 남겼다. 위의 익재 초상(益齋肖像)은 원나라 화가 진감여가 그린 고려 말의 문신 익재 이제현의 전신 초상화이다. 국보 제1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면 상단에 적혀 있는 화기에 의하면, 이제현이 33세 되던 해인 1319년에 충선왕을 모시고 중국 저장성[절강성]의 보타산 사찰에 강 향하기 위해 갔을 때, 왕명으로 항주 ..

동방삭(東方朔)

■동방삭『東方朔 (BC154~93)』 / 三千甲子를 살았다는 익살의 文人 전한(前漢)의 제(齊)나라 태생. 무제(武帝)때의 문인으로. 字는 만천(曼倩). 기언기행(奇言奇行)으로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아 수십 년간 측근으로 있으면서 태중대부급사중(太中大夫給事中)까지 올랐다. 재산을 모두 미녀들에게 탕진했으며, 광인이라고 불렸다. 한때 부국강병책을 상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자조하여 《답객난(答客難)》·《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을 비롯한 약간의 시문을 남겼다. 한대(漢代)부터 그에게 황당한 글들을 가탁(假託)하는 것이 유행하여 지금도 《신이경(神異經》·《십주기(十洲記》가 그의 저서(著書)로 전해지지만 모두 진(晉) 이후의 위작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를 먹어 대단히 오래 ..

이회영 일가의 오블레스 노블리주

다시 쓰는 독립운동列傳] Ⅳ-2. 우당 이회영 일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경향신문] 2005-03-07 18:03] ↑6형제가 만주로 망명을 떠나기 전 지도를 펴놓고 망명 계획을 세우던 모습을 묘사한 그림으로 우당 기념관에 전시되 있다. 한국의‘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백사 이항복의 11대 후손인 우당 이회영(1867~1932) 집안을 빼놓을 수 없다. 8대를 이어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던 이 집안 6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1910년 12월 혹한에 59명의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현재 시가로 따지면 6백억원에 이르는 3만섬의 재산을 처분하고 나서 였다. 국내에서의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이역땅에서 펼친 우당 일가의 치열한 독립운동 뒤엔 아나키스트적 삶을 살았으면서도 지도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