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소하(蕭何). 장량(張良)

야촌(1) 2006. 5. 2. 11:51

■ 소하(蕭何, BC? ~ 193)

 

 

검약(儉約)과 청렴(淸廉)의 처세술(處世術)로 고조의 의심을 피한 재상(宰相)이다.

패현(沛縣:지금의 장쑤 성[강소성(江蘇省)]에 속함) 사람으로, 전한 건국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이다. 

그는 패현의 하급관리를 지내다가 BC 209년 훗날 한(漢)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을 도와 진(秦)의 수도 셴양(咸陽)을 점령했다.

 

그 후 진의 승상(丞相) 어사부(御史府)에 있던 율령집(律令集)들을 거두어 전국의 호구(戶口)와 민정을 장악했다. 항우(項羽)가 유방을 한왕(漢王)에 봉했을 때도 그는 한의 승상으로 있으면서 관중『關中:산시성(陝西省) 웨이허 강(渭河) 일대』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확대에 주력했고, 한신(韓信)을 유방에게 천거하여 대장으로 삼기도 했다.


초(楚). 한(漢)전쟁 때 그는 승상의 신분으로 관중 지방에 머물면서 그 지역을 한군의 후방기지로 만들어 병력(兵力)· 군비(軍備)의 보급(普及)을 원활(圓滑)하게 했다. 방이 천하를 평정한 후 그는 찬후(侯)에 봉해졌으며, 진(秦)의 법을 참고(參考)한 9장률'(九章律)을 만들어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

 

■ 장량(張良, BC? ~ 189) 

 

 

뛰어난 책략(策略)으로 천리 밖에서도 승리(勝利)를 얻는 한(漢)나라의 책사(策士)로, 자(字)는 자방(子房).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한(韓)나라 소후(昭侯)· 선혜왕(宣惠王) 등의 5대에 걸쳐 승상을 지냈다.

 

진(秦)이한(韓)을 멸하자 그는 자객들과 사귀면서 한(韓)의 회복을 도모했다. 박랑사(博浪沙: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위안양[原陽] 남동쪽)에서 진의 시황제(始皇帝)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전설에 따르면 하비(下邳: 江蘇省下邳縣)에 은신하고 있을 때,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태공병법서(太公兵法書)》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劉邦, BC 247 ?~BC 195]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항우(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鴻門之會)'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策士)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진(秦)나라의 고지(故地)인 관중(關中)으로 정하고자 한 유경(劉敬)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소하(蕭何)와 함께 책략에 뛰어나 한나라 창업에 힘썼다. 그 공으로 유후(留侯)에 책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