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702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생졸년] 1737년(영조 13)~1805년(순조 5) 박지원(朴趾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 시호는 문도(文度)다.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 계열로, 상공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 박지원은 1737년(영조 13) 서울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아버지 박사유(朴師愈)와 어머니 함평이씨(咸平李氏), 이창원(李昌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 부터 원각사(圓覺寺 : 현 파고다 공원) 근처에 살 때 박제가,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득공(柳得恭) 등과 이웃하여 깊은 교우를 맺고, 홍대용..

허난설헌(許蘭雪軒)

■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명종 18)∼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허초희(許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蘭雪軒)으로 강릉 출생이다. 아버지는 초당(草堂) 허엽(許曄)이고, 허봉(許篈)의 동생이며 허균(許筠)의 누이로. 남편은 김성립(金誠立)이다. 그의 가문은 고려의 문신(文臣) 허공(許珙 : 1233년(고종 20)∼1291년(충렬왕 17). )의 후손으로, 혈통을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허성(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김광철(金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허봉(許篈)‧ 허초희(許楚姬)‧ 허균(許筠) 3남매를 두었다. 난설헌(蘭雪..

일제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 명단

친일인명 사전 제작을 위한 기본 자료/원코리아 일제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 명단 ◈사회.문화.예술계 (집중심의 대상 16인) ▶ 방응모(친일잡지 '조광' 창간, '국민정신총동원연맹' 발기인, 고사포 구입.기증, 조선항공공업사에 자본출자) ▶ 고황경(일제 국방비지원단체인 '애국금채회'간사, 일제전쟁지원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 김활란('애국금채회' 간사,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 모윤숙(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간사, '국민의용대총사령부' 간사) ▶ 박인덕(일제 전쟁지원단체인 '임전대책협의회' 실천위원,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 송금선(국민총력조선연맹 연성부 연성위원, 임전대책협의회 의원) ▶ 황신덕(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 김..

'을사늑약' 외교책임자 박제순

■ 을사늑약 외교책임자 박제순(朴齊純, 1858년 12월 7일 ~ 1916년 6월 20일) "이 땅의 황국신민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경학원 대제학으로 이어진 친일 가도 외교통의 관료로 성장 정4위 종1품 훈1등 자작, 조선총독부 고문, 경학원 대제학. 박제순이 사망했을 당시 공식적으로 지칭되던 직함이었다. 그가 이러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05년 이른바 '보호조약'을 체결했던 당사자로 '을사오적'이었던 덕분이었다. 박제순은 경기도 용인 상도촌 출생으로, 기호지방 관료층들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유신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관계로, 같은 동문이었던 김윤식과 세숙세질(世叔世姪)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현정은 회장의(현대그룹) 할아버지 현준호 중추원 주임참의

■ 현준호(玄俊鎬) 중추원 주임참의의 친일행각(현대그룹 현정은회장의 조부) ▲현준호 중추원 주임 참의 전남 영암군 학산면 출신, 자는 치도(致道), 호는 학파(鶴坡)로 영암 지역의 대표적인 부호이다. 1930년대 부터 중추원 주임참의 역임. 1941년 황국정신의 앙양, 강력한 실천력의 발휘, 시국인식의 철저와 대책결의, 근로보국의 강행 등의 강령을 채택한 친일단체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후일 조선임전보국단으로 발전)라는 친일 관변단체 상무위원으로 참여. 중추원에서 윤치호 등 고문 66명과 18명의 참의가 모여서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기 위하여 강연반을 결성하여 조선청년학도를 전장에 제물로 바치는데 앞장섬. ◈현기봉(玄基奉,1855~1924) 중추원 주임참의의 친일 행각 (현대그룹 현정은회장의 증조부) 현준호..

시인 김삿갓(김병연)

■ 난고 김병연(蘭皐 金炳淵) [생졸년] 1807년(순조 7)∼1863년(철종 14).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6살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이었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전쟁인 홍경래의 난(洪景來의 亂)을 당하여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從), 김성수의 집으로 피하였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이 곳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그가 20살 되던 해에 영월 동헌에서 열린 향시(鄕試)에서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과..

최항(崔沆)/고려 무신정권의 집권자

■ 최항(崔沆) [생졸년] : 1209년(희종 5)∼1257년(고종 44). 고려무신정권의 집권자로. 본관은 우봉(牛峰). 초명은 최만전(崔萬全)이다. 증조부는 최원(崔元)이고, 조부는 최씨 무신정권을 시작한 최충헌(崔忠獻)이며, 아버지 최우(崔瑀)의 서자이다. 외조부는 사홍기(史洪紀)(이다.창기(娼妓) 서련방(瑞蓮房)의 소생으로 처음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중이 되어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쌍봉사(雙峰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을 모아 문도(門徒)를 삼고 식화(殖貨)를 일삼다가 1248년(고종 35)에 아버지의 병으로 환속하여 좌우위상호군‧ 호부상서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명으로 임익(任翊)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권위(權韙)로부터 예(禮)를 익혔다. 뒤이어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아버지로 부..

500년 명가에서 배우는 경영 노하우.

■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30 - 최고의 역할모델 내리 8대 판서 배출… ‘참여형 명가’ 일궈 자녀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역할모델’의 중요성은 먼저 가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정만큼 사회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본보기, 솔선수범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가족이나 가문의 DNA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하는 까닭이 있다 . 이른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경제 원리는 가족 DNA의 진화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성 없는 과거의 질곡에 빠져 선진국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 바로 이런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패전 후 전범을 반성하는 지도자(양화)가 나와 제 역할을 해 줬더라..

강영희의 인물탐구 “성공회대 총장 이재정 신부”.

강영희의 인물탐구 성공회대 총장 이재정 신부 “더불어 사는 교회로 돌아가자” 이재정신부(64). 그는 매일 아침 여섯시에 집을 나와 열한시에 귀가하는 하숙생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력서에 기재된 현재의 직함이 자그만치 스물세개나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부정방지대책협의회장과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장의 직함도 들어 있다. 집도 절도 없이 처가에 얹혀 사는, 가진 것 없는 성직자에게 썩 잘 어울리는 역할인 셈이다. 이재정 총장 올 7월에 만들어진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에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대표와 서울시, 보건복지부, 복지관 연합회 대표 등이 머리를 맞대고 참여한다. 노숙자에 대한 시의 대책이 민(民) 주도로 결정 실행되며, 관(官)은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 말하자면 민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