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희의 인물탐구
성공회대 총장 이재정 신부
“더불어 사는 교회로 돌아가자”
이재정신부(64). 그는 매일 아침 여섯시에 집을 나와 열한시에 귀가하는 하숙생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력서에 기재된 현재의 직함이 자그만치 스물세개나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부정방지대책협의회장과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장의 직함도 들어 있다.
집도 절도 없이 처가에 얹혀 사는, 가진 것 없는 성직자에게 썩 잘 어울리는 역할인 셈이다.
이재정 총장
올 7월에 만들어진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에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대표와 서울시, 보건복지부, 복지관 연합회 대표 등이 머리를 맞대고 참여한다.
노숙자에 대한 시의 대책이 민(民) 주도로 결정 실행되며, 관(官)은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
말하자면 민과 관이 예전과는 다른 관계와 모습으로 만나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새로운’ 협동방식을 경험하는 셈이다.
그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접근방식의 차이를 굳이 부정하지는 않지만, 아울러 이런 과정을 통해 맺어지는 사회적 합의(Consensus)가 비록 작더라도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연말까지 3000명 정도로 늘어나리라고 예상되는 대부분의 노숙자는 이른바 IMF사태 이후 급작스레 망해서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당연히 이들은 따뜻한 가슴으로 맞아들이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사람들이다.
시대에 절망해서 사회로부터 스스로 떨어져간 일본이나 유럽의 홈리스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숙자 문제의 해결이란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분위기를 되찾는 쪽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이다 고, 역설한다.
그는 우리가 ‘함께하는’ 분위기를 잃어버린 것은, 돌이켜보면 유신(維新)의 결과였다는 함축적인 말로 짚어낸다.
말하자면 중단 없이 전진한 경제개발의 결과 생겨난 분배의 불균형이 군사독재의 강압을 통해 고착됨으로써 공동체 정신이 실종되고 말았다는 것.
이같은 맥락에서 그는 지난 70년대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나 엠네스티 한국위원회에 적을 두고 산업선교를 지원하기도 했던 자신의 반(反)유신적 현실참여를, 이렇게 일종의 통합론(統合論)으로 설명하려 했다.
당시 저울추가 일방적으로 기울어 사실상 회복불능의 상황으로 치닫던 계층간의 갈등을 적극적인 균형 잡기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통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방 소도시 우체국장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 지역 최초의 기독교였던 성공회 신자인 부모님 밑에서 형제자매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성공회에 몸을 담아 왔다.
그런 그가 몇가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성직의 길로 들어선 것도, 큰 흐름으로 보면 그리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기독교와 성공회, 그리고 성직(聖職)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주재하는 노숙자대책협의회에서 누구보다도 기독교 혹은 교회에 많은 것을 기대했음직 한데, 실상은 어떨까. 그는 종교계의 실무자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각 종단이나 교회에서는 반응이 거의 없다시피 미미하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 자체를 확립하고 키우는 데만 열중함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한 사회변혁의 프로그램을 정치적 변화 속에서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서울에 있는 3만여개의 교회가 3000명의 노숙자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역사적 뿌리라는 해석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기독교는 유신하의 경제개발이 남긴 사회적 상처를 고스란히 공유하는 셈. 이에 대해 그는 과감하면서도 소박한 한국교회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대규모의 힘을 과시하는 대형교회가 무너져야 힘과 권위로부터 교회가 벗어납니다.
정말 예수처럼 사람들하고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하는 그런 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힘있는 교회가 아니라 힘없는 교회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영성(靈性)이라는 것도 초자연적인 세계를 보고 초자연적 능력을 구하고 신비의 경험 속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모두가 우주와 역사의 핵심에 있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역사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게 만드는 게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며 영성일 테니까요”
순간 두개의 초승달이 떠오르는 것 같은 그의 눈웃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필자와 함께 거닐은 성공회대학 교내에서 그와 마주칠 때마다 멈춰서서 하염없는 웃음을 던져오던 사람들의 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의 말마따나 작은 게 엄청나게 클 수 있으며, 한 인간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마치 웃음 뒤의 말없는 암호처럼 그들 사이에서 교환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성공회대학의 교육철학은 한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보다 열사람의 더불어 사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얼른 덧붙이길 열사람의 더불어 사는 사람 가운데서 뽑힌, 더불어 사는 자질을 아울러 지닌 사람이라야 위대한 지도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과거처럼 독불장군으로 혼자 뛰어난 사람이 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성직자임을 의식한 필자는 그에게 성스러운 것의 본질에 대해 거듭해서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이에 대해 역시 거듭 일관되게 원래 성과 속, 선과 악 같은 것은 실제로 나눠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기에 나눠져 있을 뿐 아니겠느냐는 내용의 답변을 돌려줬다.
어차피 인간은 물질과 욕심, 인간적인 나약함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양심과 정의의 힘으로 그런 것들을 막아나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그는 같은 맥락에서 현실 정치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정(淨)함과 탁(濁)함에 대한 인위적 기준을 만들기보다는 ‘관대하면서도 엄격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의 개혁 역시 일시적인 사정(司正)에 주력하기보다 부정부패의 구조를 깨뜨리는 제도적 보완을 차분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마지막으로, 무척 키가 작아 보이는 그에게 눈 딱 감고 “키가 얼마나 되는 가”하고 무례한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예의 초승달 같은 웃음을 웃으며 “161cm입니다. 160은 넘은 셈이죠”라고 느긋하게 받아넘겼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이처럼 넉넉한 마음을 아마도 보너스 마냥 받아 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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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로 필
◇1944년 충북 진천 출생.
◇성공회 성 미가엘 신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음.
◇1972년 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사제서품.
◇현재 성공회대학교 총장, 대한성공회 출판위원이자 관구 실행위원, 세계성공회 협의회 상임위원.
◇1970년대 미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엠네스티 한국위원회에 몸담아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힘써 왔
으며, 현재는 남북 농업발전과 협력을 위한 민간단체협의회 실행위원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직을
맡아 통일운동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는 ‘대한성공회100년사’(1990), ‘현대신학개관’(공저,1994),
◇CulturalDynamics and Its Implications in Constructing Local Theology’(1988) 등.
강영희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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