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중국의 한국사 왜곡 비석.

‘唐의 발해가 조공바치던 길’… 中, 백두산 가는 길목에 역사왜곡 비석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중국 정부가 이달 초백두산관광객들이 지나다니는 지린(吉林)성 안투(安圖)현의 큰 길가에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고대사 왜곡 내용을 담은 대형 표지석을 세운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최근 백두산 관광을 다녀온 안병찬(62·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씨는 “지난 3일옌지(延吉)에서 백두산으로 가던 중 안투현 길가에서 중국인들이 비석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안투현 인민정부가 만든 이 비석은 앞면에 붉은 글씨로 ‘당(唐) 발해국(渤海國) 조공도(朝貢道)’라고 쓰여 있다. 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인) 발해가 조공을 바치러 다니던 길”이라는 뜻이다. 작업이 채 끝나지 않은 ..

화엄사상(華嚴思想)

■ 화엄사상(華嚴思想) 2006.10. 09 12:46 화엄(華嚴) 명사 [명사] 1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함. 2 =화엄경. 3 =화엄종. 4 화엄종의 교의(敎義). 불교에서 ≪화엄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여 정립된 사상. 화엄사상의 철학적 구조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화엄에서 가르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법칙이다. 사법계(四法界)· 십현연기(十玄緣起)· 육상원융(六相圓融)· 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사상의 특징] 사법계란 현상과 ..

고구려의 영토.

작성일 : 2007. 04. 28 고구려 17대 소수림왕(재위 371~384)이 즉위했을 때, 나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아버지 고국원왕은 371년 10월 23일(음력)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이 거느린 3만 군사의 공격을 막던 중 날아온 화살에 맞고 전사했다. 16년간 태자로 지내면서 제왕학 수업을 받아온 그였지만 갑자기 닥친 현실은 당혹스러웠다. 아버지를 죽인 백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주체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군대의 사기는 꺾였으며 민심은 흩어져 있었다. 승산없는 복수전을 펼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울분에 젖어 지낼 수도 없었다. 국망(國亡)의 위기를 맞아 그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돌이켜보면, 시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보다 30여년전 고구..

우리겨레의 우수성[2]

東夷族의 優越性[2] 安秀吉 : 서울大學校 名譽敎授 3. 禪,道等 정신문화와 頭腦활동의 長久한 歷史 오늘날 人類는 과학의 힘으로 대단한 發達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人類의 發達과정에는 그밖에도 重要한 단계들이 있었다. 例를 들어 인류가 言語를 쓰기 시작한 것, 有形無形의 것에 이름을 붙이고, 完全한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인 觀念을 창조한 것 等은 더군다나 큰 발달의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動植物에 대해서도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보다는 더 상세하고 큰 語彙를 갖고 있었고, 특히 우리의 글자인 漢字는 帝王들을 위해서 殷나라 이전부터 쓰기 始作한 것으로 特徵을 抽出해서 簡潔하게 나타내는 特性이 있기 때문에 現實 事物의 細部에 말려들지 않고 槪括的(개괄적)으로 보고 統合的인 把握(파악)을 하는 데에..

유방(劉邦)과 항우(項羽)

■ 유방(劉邦)과 항우(項羽) 1.유방과 항우의 등장 유방(劉邦)/한나라 초대 황제 (BC256~BC195, 재위 BC206~BC195)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던 봉기는 일시적으로 좌절 되었지만, 그로부터 반년 후에는 다시 열화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이 투쟁의 지도권은 이미 농민의 지도자로 부터 지주 계급과 6국의 옛 귀족 세력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이다. 유방의 자는 계(季)이고, 패(沛, 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으로 진나라때 사수(泗水)의 정장(치안 담당하는 하급 관리)을 지냈다. 그는 패에서 군사를 일으켜 점차 병력을 집결시킨 후 망탕산에 웅거하였다. 유방이 봉기 한것은 진승이 7월에 대택향에서 봉기한 두달 후인 9월이었다. 유방의 인상은 높은코에..

후예(后羿)

■ 후예(后羿)/ 전욱의 후예로 활을 잘 쏘았다 한다. ▲하나라의 후예(后羿) 운(妘) 성(姓)으로 전설은 전욱(顓頊)의 후예로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하왕조는 우(禹)가 제후들을 거느리고 통치기반을 확립하였으나 향락을 즐기고 지나치게 수렵에 탐닉하는 등 황음무도한 생활로 나라는 그야말로 만백성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啓)가 죽은 후 그의 다섯 아들간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져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동이족의 후예가 정권을 빼앗아 버렸다. 전설에 따르면 요시대에 10개의 태양과 알유(징승이름),착치(이빨을 뚫음),구영, 대풍, 구영, 봉희(큰 돼지)등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들이 있었다 한다. 추남자에는 구영을 죽여 흉수위에 놓고, 대풍을 말아 푸른 언덕 못에 앉 치고, 활로 10개의 태양을..

교토 ''야사카신사''

[홍윤기의 역사기행] 일본속의 한류를 찾아서신라 신의 제사 터 교토 ''야사카신사'' 세계일보 | 입력 2007.02.21. 09:16 교토는 지금도 일본 왕실 문화의 중심 터전이다. 어머니가 백제인인 50대 간무천황이 794년 처음 왕도를 개창한 곳이 교토(헤이안경) 땅이다. 그의 부왕인 49대 고닌 왕(770∼781 재위)도 백제인('대초자' 1158)이다. 이곳에는 현재도 고대 왕궁인 '교토어소'가 자리하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금도 교토를 '부조(父祖)의 땅'이라며 도쿄에서 서쪽 부조의 땅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아사히신문' 1999년 11월7일). 그는 2001년 12월23일 기자회견에서 "간무 왕의 어머니 고야신립(高野新笠, 和新笠) 태후는 백제 무녕왕(501∼523 재위)의 왕..

고구려의 건국

고구려의 건국 고구려는 압록강 중류의 독로강 및 동가강 일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지역은 깊은 계곡과 산이 많고 하천 연변에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한나라의 고조선 침략 과정에서 고구려 지역에도 BC 107년 현도군이 설치되었다. 이 중 고구려 현이 보이는데, 이를 통해 BC 1세기 무렵에 이미 '고구려'란 이름이 존재했고, 그 세력이 이 지역의 중심적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치체들은 점차 소국으로 발전했고 다시 서로 간의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큰 세력으로 결집되어갔고, 최후로 남은 다섯 세력 집단이 연맹하여 고구려 국가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연맹체적인 고구려 국가의 성립은 늦어도 현도군을 축출한 BC 1세기경에는 달성하였고 부여 지역에서 뒤늦게 이동해온 주몽 집단의 계루..

설에 대하여.........^^

1. 정월 초하루 1년의 첫째 날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설" 또는 설날,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원일(元日), 세시(歲時), 신일(愼日), 등으로 쓴다. 새로운 한해가 설날을, 시점(始点)으로 새해가 시작 됨으로 일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정신과 몸가짐으로 벽사 초복을 기대하여 년초(年初)인 설날에 심신을 근신(謹愼) 한다는 뜻으로 신일(愼日) 이라고도 한 것이다. 2. 설빔(歲粧:세장)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 놓은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설빔"이라고 한다. 남녀 노소(男女老小), 빈부귀천(貧富貴賤)없이 살림 정도에 따라서 마련한다. 3. 정조다례(正朝茶禮) 설날 아침,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사당(祠堂)에 진설(陳設)하고, ..

중국 통화시, 고구려 초기 유적발견.

작성일 : 2007. 02. 14 연합뉴스(06.11.22) 중국 퉁화시서 고분군등 고구려 초기 유적 추가 발견 전문가들 "주몽 초기 정착지는 桓仁 아닌 通化" 주장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고구려인들의 활동무대였던 중국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일대에서 청동기 말기 또는 고구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제사 유적 한 곳과 고분군 두 곳 등이 새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퉁화시 문물 전문가들은 역사서에 고구려 시조 주몽이 기원전 37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곳으로 기록돼 있는 비류곡(弗流谷) 졸본천(卒本川)이 현재 통설로 돼 있는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의 오녀산(五女山) 일대가 아니라 이들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퉁화시 문물관리위원회는 최근 발간된 격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