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만주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古地圖가 유럽에서 대량발견.

■만주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古地圖가 유럽에서 대량 발견. [도깨비 뉴스] 2007년 10월 18일 발매된 시사 월간지 신동아는 만주 지역이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고지도(古地圖)가 유럽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경희대 부설 혜정박물관(관장 김혜정 교수)은 18세기 압록강-두만강 이북 집안, 간도지역이 조선의 세력권이었음을 보여주는 서양 고지도, 69점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신동아는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이 한반도 이북 지역에서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서양 지도가 이처럼 대량으로 나온 것은 처음" 이라고 전했습니다. 신동아로 부터 사진과 기사를 제공받아 도깨비 뉴스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1749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리(D’Anville)가 제작한‘et des Roj..

발해의 민족적 성격연구

동북공정 근거사료도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 으로 되어 있고 本人이 발굴한 대만의 에도 김함보를 필두로 발해, 금, 청국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본인이 이 사이트를 개방해 놓았었는데 수 달후 대만에서 패쇄 했다. 홍콩의 발해사 학자인 김광석(金光錫.62) 홍콩 능인(能仁)서원 한국학과 교수는 중국의 발해사 편입 시도는 중화 패권주의에 다름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지난 91년 홍콩에서 `발해족의 형성과 그 사회형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해외 학계에서 처음 발해사 연구로 인정받은 한국학자다. 김 교수는 18일 그간 한국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 논문을 토대로 그간의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발해 사료 및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발해사가 중국사가 아니라는 근거를 조목조목 짚었..

평화를 선택한 왜장 사야가(沙也可) - 김충선

녹동서원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585 ------------------------------------------------------------------------------------------------------------------------------------ 녹동서원((鹿洞書院)은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장수 모하당(慕夏堂)김충선(金忠善, 1571~1642)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3년(1789)에 건립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84년 훼철되었다가 1914년 중건하였으며, 1971년 이전 하였다 김해 김씨(우륵김씨) 시조 김충선 사야가(沙也可)의 일생은 우리에게 남다른 감흥을 준다. ↑녹동서원(鹿洞書院)의 충절관(忠節館) 전시관은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해 ..

임진왜란 비사 김충선(金忠善)

■ 임 진왜란 비사(일본군과 싸운 일본군들) 일본 나고야성의 일본 장수 사야가(沙也可) 충선(金忠善,1571년(선조 4)∼1642(인조 20). 그는 조선을 향한 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하당문집(慕夏堂文執-김충선 저)에 따르면, 그는 출정 후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곧 투항했다. 그 때는 임진왜란이 막 시작된 시기이고 일본군이 승승장구할 때다. 패전해서 어쩔수 없이 투항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출정을 앞두고 이미 투항을 결심한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는 과연 이 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길 래, 조국을 버리고 조선에 투항해 조선군이 되어 싸울 생각을 했을까? 그의 투항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먼저 그가 일본에서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광개토대왕비 국역문(廣開土太皇碑 國譯文)

■ 광개토대왕 능비(廣開土太皇陵碑)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 □命駕, 巡幸南下,路 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 浮龜. 應聲卽爲連 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 , 履龍頁昇天.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조하시었다.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시니, 나면서부터 성스러운□□□□□. □ 명으로 수레를 타고 남으로 순행하다가, 길에서 부여의 엄리대수에 이르렀다. 왕이 나루에 이르러 말하길,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녀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엮고, 거북은 떠 올라라...

우리겨레의 우수성[3]

東夷族의 優越性[3] 安秀吉 : 서울대학교 名譽敎授 6. 西洋에서 본 동양 完全히 방향을 바꿔 西쪽의 눈으로 본 아시아의 歷史를 살피는 것도 뜻이 있다. 우리에게 (思考의 座標變換(좌표전환)을 하는데) 示唆(시사)한 바가 큰 것들 中 하나는 Byzantine학자 Theophilaktos SIMOKATA가 쓴 中國의 描寫(묘사)이다. 事實上 징기스汗의 侵攻도 몽골은 强하다는 事實뿐이지 진짜 몽골사람은 人員이 워낙이 적기 때문에 大元帝國의 西方 侵攻은 몽골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키르기스, 타직, 우즈백, 투루크메니스탄 등 터키-몽골系(터-키 및 지금의 南러시아의 여러 나라), 그리고 소수의 녑族(Semite) 人力에 의해서 행해졌고, 지난 世紀 初 영국을 위시한 동맹국에 의해서 解體될 때까지만 해도 터키는 이..

대마도는 한국땅이었다.

■ 쓰시마 섬이 아닌, 대마도로 부르자. 우리나라의 국사 교과서, 사회과부도, 역사부도, 세계지도 등 어떤 지도를 보아도 대마도라고 쓰여져 있지 않고 쓰시마 섬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은 지네 땅이 아닌데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쓰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뭡니까. 혹 이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쓰시마 섬이라고 자주 말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제부터는 대마도라고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 대마도를 찾으려고 했던 노력 ①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초대 부산수산대학장을 역임한 정문기(鄭文基, 1898~1996) 박 사입니다. 정박사는 ‘대마도의 조선 환속과 동양평화의 영속성’이라는 논문에서 대마도를 조선으로 환속하는 것 이 동양평화의 영속성을 기하는 길이라고 ..

특집(2) - 주몽과 소서노, 그 허깨비 사랑

특집(2) 주몽과 소서노, 그 허깨비 사랑 김운회(동양대 교수) 1. 주몽과 소서노, 세기의 사랑 드라마 ‘주몽’의 주인공은 주몽과 소서노이다. 이 드라마의 인기는 소서노와 주몽의 안타까운 사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드라마 제작진이 말하는 ‘주몽’의 컨셉(concept)도 고조선 멸망 이후 우리 민족의 첫 고대국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민족의 영웅 주몽과 여걸 소서노의 러브스토리가 중심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들이 멜로 분야에 있어서도 상당한 공력을 가진 대가들이라는 점에도 주몽-소서노의 사랑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드라마 ‘허준(최완규 작)’을 본 사람이라면 이 작가(최완규)가 얼마나 순애보적인 사랑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구려가 중국이 아닌, 결정적 증거 "만리장성"(역사왜곡, 동북공정)

고구려가 중국이 아닌, 결정적 증거 "만리장성" [도깨비 뉴스] ↑중국인들이 이른바 '천하제일관'으로 부르는 산해관 최근 중국의동북공정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조상 고구려 와 발해. 그 고구려와 발해의 근거지는 바로 현재의 중국 22개 성 중에서 동북지역 3성인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 입니다. 중국이 보기에도 한반도가 대한민국 중심으로 통일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지, 요즘 이 동북삼성의 역사적 정통성 에 대한 관리가 아주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습다. 통일 후 중국과 전쟁을 하는 내용인 가상 전쟁소설 '고구려의 꿈'을 연재하고 있는 저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에 속 절없이 당하고 있는 현상황이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