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全斗煥과 盧泰愚의 합창

全斗煥과 盧泰愚의 합창-"떠나가는 김삿갓“ 「죽장에 삿갓 쓰고 떠나가는 全 삿갓 全 삿갓은 떠나고 盧 삿갓이 들어온다.」 [기고문] 김성익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l 2008. 02. 20 며칠 전 全斗煥 전 대통령이 후임자이자 육사 동기생인 盧泰愚 前 대통령을 두 차례 문병하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기 전 두 사람은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1년 여 칩거 생활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두 사람이 군사변란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옥살이를 같이 했다. 여생을 많이 남겨 두지 않은 두 사람이 권력의 갑옷을 벗은 상태에서 만났으니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둘이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1987년, 회식 자리에서 합창을 한 적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공수 ..

신륵사와 목은 이색

신륵사와 목은 이색 ■ 목은 거둔 제비여울엔 봄비가 - ↑강에 비가 내렸다. 지나치지도 않았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바람도 알맞게 불었으니 고요한 강 덕분에 마음마저 차분해졌다. 봄비가 왔다. 다시 강으로 달려간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한강을 걷기 시작하던 지난 여름, 1년 동안 내려야 할 비를 하루 만에 퍼부은 탓인지 가을이어도 비는 드물었고 겨울이어도 눈조차 헤프지 않았으니 매번 이어지는 맑은 날의 풍경이 때로는 심드렁하기도 했다. 더러는 강에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려도 나와 시간이 맞지 않아 걸음을 나누지 못했으니 오늘만큼은 기어코 비 내리는 강을 마주 보리라 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눈 내리는 강의 정경을 그윽하게 바라보지 못한 아쉬움은 자못 크게 남아 있다. 마치 겨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묘한 ..

설제사의 풍속역사

■ 설제사의 풍속역사 1.설날 세배는 고려시대 풍속이었다. 설날아침 일찍 일어나서 어버이에게 세배를 올리고 아침밥을 먹는 것이 고려시대의 풍속이며 그때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는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高麗士人耘谷天錫所作庚午元正詩이다. 鷄鳴起坐整衣襟, 星頭欄干曉霧深. (닭 울음소리에 깨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곱게 다듬어 입었더니, 별빛이 난간에 들어와 안개가 깊도다) 時有兒孫來再拜, 油然發動壯年心. (그때 자식·손자들이 와서 세배를 하니, 어른스러워지는 마음이 저절로 갖추어 지더라) 2.'설날제사'는 고종 33년 병신년(1896)에 경상도 성주 땅의 수촌리(樹村里)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원조절사(元朝節祀)'로 되어서 老石 呂九淵(1865∼1938)의 문집인 『老石集二』卷三十三 「朝..

중국은 원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 중국은 원래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이었다. 도량형은 그렇다 치고 문자를 통일한다? 당연하다. 지금도 진 이전의 유적이나 유물을 발굴해도 가장 난감한 것 가운데 하나가 쓰이는 한자가 제각각 다 다르다는 것이다. 진과 제가 다르고, 연과 초가 다르고, 조와 초가 또 다르고, 사실 문자만이 아니라 언어도 문화도 제각각 달랐다. 또한 사람들 역시 서로 진나라 사람, 연나라 사람, 초나라 사람이라 여겼지 중국인이라거나 그렇게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이 없었다.최소한 진나라 이전까지 중국은 하나의 문명도 하나의 민족도 아니었다. 사기에 보면 주나라의 소왕이 남쪽으로 사냥을 나섰다 돌아오지 못하고 강 위에서 죽었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영남 출신의 남인과 노, 소론.

■ 보학이란? 보학이란? 쉽게 말해서 족보(族譜)에 관한 학문을 말한다. 오늘날 족보가 밥먹여 주는일도 아닌데, 족보가 왜 필요 하냐며 반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6.25 전쟁 이전만 해도 보학에 식견이 있어야만 사람 대접 받는 시절이었고, 최소 팔고조도(八高祖圖)는 그릴줄 알아야 양반(兩班) 소릴 들었다. 그런데 우선 보학을 하려면 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져야 한다. 사서삼경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전해오는 많은 성씨들의 문집들도 섭렵 해야한다. 그래야만 보학의 이론이 성립되고 실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전으로 그 문집들의 국역을 해봐야 하고, 다음엔 그 문집의 관련 문중사람들을 찾아 다녀서 그 집의 숨은 애기들을 들어봐야 하고, 그리고 그집의 중요 인물이 살던 집터며 정자, 기타 유적지를..

청나라 역사서, 중국 요서를 백제 영토로 인정

[역사 발굴Ⅰ] 청나라 역사서, 중국 요서를 백제 영토로 인정 중국의 동북공정 뒤엎을 史料 찾았다! 백제사는 두 번에 걸쳐 크게 왜곡되는 수난을 겪었다. 첫째, 고려 시기 신라 중심으로 삼국사의 정통을 세우는 과정에서 초기 백제사의 상당부분이 삭제 혹은 훼손되었다고 본다. 둘째, 일제에 의한 왜곡으로, 일제는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먼저 한국사 연구에 손을 댔는데, 이때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백제사를 총관(總觀·전체를 대충 살펴봄)하는 ‘백제약사’와 ‘백제사강화’를 저술했다. 이마니시의 백제사 서술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백제가 신사시대(信史時代)로 들어간 시기를 근초고왕대로 잡고 그 이전은 전설의 시기로 파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제가 왜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숭양서원(崧陽書院])

↑개성숭양서원(開城崧陽書院) 현재 북한의 행정명으로 황해북도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숭양서원은 고려의 대관료였고 유능한 군사가, 외교가였던 포은 정몽주(1337-1392)가 살던 집자리에 세운 서원이다. 고려 말에 처음 세우고 이조 때인 1573년 고쳐 지었다. 정몽주의 시호를 붙여 이라고 불러오다가 1575년에 숭양서원이라 사액, 이때 부터 숭양서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숭양서원은 자남산을 등지고 그 동남쪽 경사지에 대칭적으로 규모있게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으로 둘러막은 담의 앞에 난 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고 3개의 계단으로 통은 축대 위에 오르면 강당이 있다. 또 그 뒤에 있는 3개의 급한 계단으로 올라 서원의 앞뒤구역을 가로막은 담에 난 삼문을 지나면 사당에 이른다. ..

단군은 누구인가?

단군은 누구이며 실제로 존재했는가? 단군은 어떤 사람이며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단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단군이라는 명칭만을 잘 알고 있을 뿐, 실제로 있었던 인물 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군을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단군은 후에 산신이 되었다고 한 기록이 단군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군이 처음부터 신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믿었던 고대인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단군을 신으로 받드는 종교도 아마 단군을 사람이 아닌 신이었다고 믿기보다는 그가 사망한 후에 신이 되었다고 믿을 것입..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명단

작성일 : 2007. 10. 22 中国共产党第十七届中央委员会候补委员名单(167名) (按得票多少为序排列) (득표순위에따라 배열) 왕신헌(王新宪), 언영죽(焉荣竹), 왕학군(王学军), 왕건평(王建平), 류석천(刘石泉), 두우신(杜宇新), 주소단(朱小丹), 부약란[符跃兰(女)/리족(黎族)], 마표[马飚/쫭족(壮族)], 왕광아(王光亚), 단커[旦科,장족(藏族)], 전철수[全哲洙/조선족(朝鲜族)], 리옥매(李玉妹/女), 장련진(张连珍/女), 림좌명(林左鸣), 라정부(罗正富/이족(彝)族), 라지군(罗志军), 정립중(郑立中), 조헌경(赵宪庚), 원영상(袁荣祥), 황건국(黄建国), 신유신(申维辰), 임아평(任亚平), 류혜[刘慧/女/회족(回族)], 류진기(刘振起), 손건국(孙建国), 리희(李希), 리매부(李买富), 양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