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고구려(高句麗)

중국 통화시, 고구려 초기 유적발견.

야촌(1) 2007. 2. 14. 14:46

작성일 : 2007. 02. 14

 

연합뉴스(06.11.22)

중국 퉁화시서 고분군등 고구려 초기 유적 추가 발견

 

전문가들 "주몽 초기 정착지는 桓仁 아닌 通化" 주장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고구려인들의 활동무대였던 중국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일대에서 청동기 말기 또는 고구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제사 유적 한 곳과 고분군 두 곳 등이 새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퉁화시 문물 전문가들은 역사서에 고구려 시조 주몽이 기원전 37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곳으로 기록돼 있는 비류곡(弗流谷) 졸본천(卒本川)이 현재 통설로 돼 있는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의 오녀산(五女山) 일대가 아니라 이들 유적이 발견된 지역이라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퉁화시 문물관리위원회는 최근 발간된 격월간 역사학 잡지 동북사지(東北史地) 제6호에 게재한 '퉁화 장옌(江沿) 유적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퉁화시 당국은 작년 11월 5명의 전문가들을 동원, 20여일 간에 걸쳐 훈(渾)강의 퉁화시 동남구간에 대한 전면적인 고고 조사를 실시했다.

 

전문가들은 이 조사를 통해 서한(西漢. BC 202∼AD 220) 시기 것으로 보이는 제사 유적 한 곳, 고구려 초기 것으로 보이는 각각 50여기와 46기의 고분군 두 곳, 기타 유적 다섯 곳을 새로 발견하고 1차로 이 지역이 졸본부여의 초기 정착지인 졸본천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퉁화시 다두링(大都嶺)향 샤룽터우(下龍頭)촌에서 발견된 투주쯔(土珠子) 제사 유적지는 밑부분의 최대 지름이 28m, 높이가 약 10m, 윗부분 지름이 7-8m인 타원형의 단으로, 청동기를 본떠 만든 정밀한 석제 단검과 괭이 등이 발견됐다.

 

훈강 중류인 퉁화시 진창(金廠)진 장옌촌에 있는 50여기의 난터우툰(南頭屯) 고분군은 대부분이 4각형의 계단식 석실묘, 같은 형태의 구덩이묘, 4각형의 적석묘 등으로 비교적 큰 규모의 귀족 묘와 작은 규모의 평민 묘가 섞여 있다.

 

또 샤룽터우 46기의 고분군은 묘의 크기가 각기 다르지만 그 형태는 난터우툰 고분군의 묘와 비슷한 3가지가 주류였고, 그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석실 적석묘는 남북이 7.5m, 동서가 5.2m였고 석실은 묘의 상부에 설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퉁화시 문물관리위원회는 앞서 발견된 것을 포함한 장옌의 고구려 유적군은 그 규모가 방대하고 독자적인 체계를 이룬, 훈강 유역 고구려 문화 유물의 전형이라면서 고구려 민족의 기원, 국가 및 정권 수립등의 연구에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왕구이위(王貴玉) 퉁화시 문화국 부국장, 왕즈민(王志敏) 퉁화시 문물보호연구소 소장 등 3명의 전문가는 같은 잡지에 게재된 별도의 글에서 퉁화 옌장 유적군의 소재지가 졸본부여의 초기 정착지라고 주장했다.

 

졸본부여를 현재의 환런현 오녀산 일대로 추정하는 것은 역사문헌과 일치하지 않으며 훈강 중류 퉁화시, 퉁화현, 지안(輯安)시가 서로 만나는 곳의 평원 및 훈강 양쪽에 위치한 옌장 유적군 지역이 졸본부여의 초기 정착지라고 해야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옌 유적군 지역에서 집단거주지, 분묘, 제사 유적 등이 함께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완전한 국가체계가 형성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이 지역이 역사문헌에 기록된 졸본천은 물론 실제 지리.방위.지리환경 등과도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주몽이 사후 '용산(龍山)'에 묻혔다는 기록에 대해서도 이는 졸본천의 '용산'을 의미한다면서 앞서 발굴된 이 지역의 다른 유적에서 각각 1기 씩의 적석묘가 발견됐고 현지 주민들이 투주쯔를 '장군묘'로 부른다는 점을 들어 주몽의 묘가 이 일대에서 발견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d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