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886

송상공(宋殤公)/노환공(魯桓公)/위환공(衛桓公)

■송상공(宋殤公,BC 719 ~ 711) - 宋나라 15대 군주 아버지인 선공이 동생인 목공에게 양위(讓位)하자 목공은 죽을 때 아들인 빙(憑)에게 군위(君位)를 물려주지 않고 兄의 아들에게 군위를 물려주었다. 빙(憑)은 군위(君位)에 오른 조카를 질투(嫉妬)하여 정(鄭)나라로 가 버렸다. 정(鄭)장공은 빙(憑)을 잘 대우(待遇)하여 주었고 宋과 鄭은 적대(敵對)관계가 되었다. 송상공(宋殤公)은 빙(憑)을 미워하여 鄭나라를 세차례나 쳤으나 모두 실패(失敗)했다. 송(宋)나라 태재 화독(華督)은 공자(公子) 빙(憑)과 자별하게 지냈는데 鄭나라를 칠 때마다 불평(不平)이었고 병권(兵權)을 잡고 있는 공부가를 죽일 생각을 했다. 공부가에게는 후취(後娶) 위씨가 있는데 미인이라 화독이 한번보고 반해 그녀를 취(..

봉은사(奉恩寺)

■ 봉은사(奉恩寺) 위치 : 서울 강남구 삼성동 73번지 | TEL : 02) 511-6070 봉은사(奉恩寺)는 신라(新羅)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원성왕 10년 서기 794년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고 한다. 연회국사(緣會國師)에 관한 「삼국유사」기록에 의하면 신라 원성왕때의 고승으로서 영축산에 은거하며,「법화경」을 암송하며 보현행을 닦았던 승려였다고 한다. 또한 기록은 「삼국사기」권38 제7에 봉은사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당시 성전사원에 해당하는 일곱 사찰 가운데 하나로 봉은사가 언급되고 있다. 그 일곱사찰은 사천왕사, 봉선사, 감은사, 봉덕사, 영모사, 영흥사 외 봉은사다. 성전은 왕실에서 건립한 사찰의 조성과 운영을 위해 설치한 일종의 관부로서. 일반 행정 관청과는 다른..

정장공(鄭莊公)/ 제족(祭足)/ 영고숙(穎考叔)

■ 정장공(鄭莊公) /제족(祭足) / 영고숙(穎考叔) ● 鄭莊公(제위 : BC743-701) - 제후국 鄭의 3代 군주 주유왕(周幽王)이 견융(犬戎)과 대적할 때 전사한 대장 정백우(鄭伯友)의 손자이자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인솔해서 견융을 물리친 정무공(鄭武公) 굴돌(掘突)의 아들로, 태어날 때 어머니가 깜빡 잠든 사이에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을 오생(寤生)이라고 지었다. 어머니인 강(姜)씨는 이 일을 불결(不快)하게 여겨 오생(寤生)을 미워하고 차남 단(段)을 사랑하여 단(段)이 왕위(王位)계승 하기를 원했다. 아버지가 죽고 오생(寤生)이 왕위를 이어 주나라 왕실 일을 겸(兼)하면서 강국(强國)으로서의 면모(面貌)를 과시(誇示)했다. 어머니는 오생(寤生)이 왕이 된 것이 늘 못마땅하게 여겨 ..

조선의 왕별 제위기간

■ 조선국의 왕별 제위기간/1392년-1910년(519년) 대 왕명 제위년도 제위년수 이 름 1대 태조 1392-1398 6년 이성계(李成桂) 2대 정종 1398~1400 2년 이경(李曔) 초명:방과(芳果) 3대 태종 1400-1418 18년 이방원(李芳遠) 4대 세종 1418-1450 32년 이도(李祹) 5대 문종 1450-1452 2년 이향(李(珦) 6대 단종 1452-1455 3년 이홍위(李弘暐). 7대 세조 1455-1468 13년 이유(李(瑈) 8대 예종 1468-1469 1년 이우(李俁). 9대 성종 1469-1494 25년 이혈(李娎) 10대 연산군 1494-1506 12년 이융(李융) 11대 중종 1506-1544 38년 이역(李懌). 12대 인종 1544-1545 1년 이호(李岵) 13대..

주평왕(周平王)과 주환왕(周桓王)

■주평왕(周平王, BC770 ~720) 東周의 처음 왕. 13대왕. 이름은 의구(宜臼). 유(幽)왕의 아들. 유(幽)왕이 태자(太子)인 의구(宜臼)와 신후(申后)를 폐(廢)하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삼자 신후(申后)의 아버지 신후(申侯)가 서이(西夷), 견융(犬戎)들을 이끌고 쳐들어와 유(幽)왕과 포사의 아들을 살해(殺害)하여 망명지(亡命地)에서 의구(宜臼)가 주왕(周王)이라 칭(稱)하고 王이 되었다. 그 뒤 신후(申侯)를 도왔던 西方의 이민족(移民族)들이 강성(强盛)하여져서 주(周)나라 영토(領土)를 침범(侵犯)하므로 平왕은 호경을 버리고 낙양(洛陽)으로 도읍(都邑)을 옮겼다(BC770). 이전(以前)을 서주(西周)라 하고 그 이후를 동주(東周)라 부른다. 동주의 시작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시..

조선의 역대왕 재위기간

代 왕명 재위기간 약사 1 태조(太祖, 1335~1408) 1392~ 1398 휘는 성계(成桂). 고려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92년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定宗, 1357~1419) 1398~ 1400 휘는 방과(芳果).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즉위 2년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음. 3 태종(太宗, 1369~1422) 1400~ 1418 휘는 방원(芳遠).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하였으며, 왕자들의 왕위 다툼(왕자의 난)에서 이겨 왕위에 오름. 여러 가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4 세종(世宗, 1397~1450) 1418~ 1450 휘는 도. 태종의 셋째아들.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고, 훈민정음을 창..

고려 충선왕이 티벳으로 유배간 이유는?

1. 700년전.... 충선왕은 티벳으로.... 만 오천리의 유배길을 갔다. 고려 26대왕인 충선왕! 마흔 여섯이 되던 1320년, 예기치 못한 운명을 맞게 된다. 한 나라의 국왕인 그에게 유배 명령이 떨어진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의 토번으로, 지금의 티벳! 그곳에 도착하는데만도 반 년이 걸리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럼 고려 충선왕이 티벳까지 유배를 간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 26대 충선왕! 공민왕이나 혹은 조선 시대 여러 왕들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죠. 그런데 그는 우리 역사상 그 어느 왕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왕입니다. 먼 이국 티베트까지 유배를 갔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티벳이라면 여기, 아시아 서쪽 끝이죠. 지도상으..

병자호란 전사자

고종 4년 9월 15일(을축) 원본2718책/탈 초본128책(11/21) 1867년 同治(淸/穆宗) 6 병자년 등에 전사한 사람의 성명과 사연을 일일이 조사 보고하라는 계 ■ 병자년 등에 전사한 사람의 성명과 사연을 일일이 조사하여 들인다는 홍문관의 계. ○ 홍문관이 아뢰기를, “병자년ㆍ정묘 년에 전사한 사람들을 홍문관으로 하여금 조사하여 들이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삼가 성상의 하교대로《병자록(丙子錄)》 및 《존주휘편(尊周彙編)》의 배신전(陪臣傳) 등 책을 조사하였습니다. 검천(儉川) 싸움에서 공주(公州)의 영장 최진립(崔震立)은 몸에 수십 군데 상처를 입으면서도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가 죽었는데,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연산 현감(連山縣監) 김홍익(金弘翼)은 직접 수십 명을 찔렀으나..

백제의 멸망, 그리고 남한산성의 비극

■백제의 멸망, 그리고 남한산성의 비극 역사에 길을 물어도 좋은 것일까. 성공한 역사와 실패한 역사는 어느 쪽이 우리에게 더 절실한 교훈을 주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운명적인 역사의 흐름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평상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스런 시대 경험에 맞부딪칠 때, 사람들의 역사 감각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유년기에 병자호란을 겪은 박세당은 문득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평정하고 기록한 비문을 읽는다. 그는 거기에서 자기 시대의 운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을 발견한다. 이것은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평정하고 공적을 돌에 새겨 기록한 것이다. 지금 부여현 옛 절의 석탑에 있다. 당나라는 요동을 치러 갔다가 이기지 못한 것을 분노하여 ..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청계천 준천(濬川)의 기록 .

■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청계천 준천(濬川)의 기록 1.「승정원일기」의 자료적 가치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기능을 했던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일자별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조선건국 초부터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288년간의 기록 3,243책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만으로도 「승정원일기」는 분량 면에서 세계 최고의 역사기록물이라 할만하다. 「승정원일기」는 1999년 4월 9일 국보 제303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 9월에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 었다. 정치의 미세한 부분까지 정리된 방대한 기록, 288년간 빠짐없이 기록된 날씨, 왕의 동선 이 상세히 나타난 점은 「승정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