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중국사(中國史)

주평왕(周平王)과 주환왕(周桓王)

야촌(1) 2010. 5. 14. 21:36

주평왕(周平王, BC770 ~720) 東周의 처음 왕.  

   13대왕. 이름은 의구(宜臼). 유(幽)왕의 아들.

 

유(幽)왕이 태자(太子)인 의구(宜臼)와 신후(申后)를 폐(廢)하고 포사의 아들을 태자로 삼자 신후(申后)의 아버지 신후(申侯)가 서이(西夷), 견융(犬戎)들을 이끌고 쳐들어와 유(幽)왕과 포사의 아들을 살해(殺害)하여 망명지(亡命地)에서 의구(宜臼)가 주왕(周王)이라 칭(稱)하고 王이 되었다.

 

그 뒤 신후(申侯)를 도왔던 西方의 이민족(移民族)들이 강성(强盛)하여져서 주(周)나라 영토(領土)를 침범(侵犯)하므로 平왕은 호경을 버리고 낙양(洛陽)으로 도읍(都邑)을 옮겼다(BC770).

 

이전(以前)을 서주(西周)라 하고 그 이후를 동주(東周)라 부른다.

동주의 시작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시작이다.

 

이 무렵부터 제후들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周나라 왕실은 권위(權威)를 상실(喪失)하고 쇠약(衰弱)해져 그 후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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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桓王(BC719 ~ 697) - 周의 14대왕  

   평왕(平王)의 손자로. 아버지가 인질(人質)로 가있던 정(鄭)나라에서 아버지 평왕의 죽음도 보지 못함을 애통(哀痛)하

   게 여기다. 왕위(王位)에 오르지도 못하고 죽은 것을 애석(哀惜)하게 여겨 정(鄭)나라를 싫어했다.

 

게다가 정나라 군사들이 감히 황실 근처까지 와서 보리를 베는 무례(無禮)를 범(犯) 한데다 정 장공(鄭 莊公)이 거짓으로 황실의 명을 받았다하고, 송나라를 쳤다는 보고를 받고 환(桓)왕이 분노(憤怒)하여 정장공(鄭莊公)의 벼슬을 빼앗았다.

 

무공 때부터 주(周)왕실의 일을 겸(兼)해왔던 鄭장공은 벼슬이 떨어지자 5년을 한번도 조정(朝廷)에 들르지 않자 장공의 죄(罪) 다스리겠다고 포고(布告)한후 채(蔡), 위(衛), 진(陳) 세나라에 명하여 환(桓)왕이 중군(中軍)이 되어서 전쟁터로 갔지만 환(桓)왕이 후퇴(後退)하는데 鄭나라 장사(將帥) 축담이 쏜 화살에 맞아 부상(負傷)을 입었다.

 

鄭장공이 周 왕실을 능멸(凌蔑)하고 천자(天子)의 권위(權威)와 봉건질서(封建秩序)를 무시(無視)하는것에 대해 응징(膺懲)하려 했으나 鄭장공의 위세(威勢)에 눌려 지내다 죽은 비운(悲運)의 왕이다.

 

 

▲주환왕(周桓王-周의 14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