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이인실 묘지명(李仁實墓誌銘)/고려시대

■ 이인실 묘지명(李仁實墓誌銘) [시대] 고려 [연대] 1153년(의종7년) [유형/재질] 묘지명·묵서명 / 돌 [문화재지정] 비지정 [크기] 세로 28.8cm, 가로 36.4cm, 글자크기 0.9cm [탁본소재지] (한국)국립중앙박물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미상/미상/미상. [개관] 이인실(李仁實 : 1081~1153)의 자는 자허(子處)로 견주(見州) 사람이며, 삼한공신(三韓功臣) 흠률(歆律)의 6세손이다. 아홉 살에 글을 짓고, 20세 이전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으며 26세에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육경(六經)과 사서(史書)에 두루 통달하였는데, 특히 『춘추(春秋)』에 밝았다. 예종(睿宗)이 국자감(國子監)에 7재(七齋)를 설치하자..

인천 능허대(凌虛臺)

인천 능허대(凌虛臺) [종 목] 시도기념물 제8호 : (연수구) [명 칭] 능허대지(凌虛臺址)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역사사건/ 역사사건 [수량/면적] 2,500㎡ [지정일] 1990.11.09 [소재지] 인천 연수구 옥련동 194-54 [시 대] 백제 [소유자] 한국(재무부) [관리자] : 연수구 [상세문의] : 인천광역시 연수구 문화공보실 032-810-7076 능허대는 백제 근초고왕 27년(372) 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문주왕 1년(475)까지 사신들이 중국 동진(東晋)을 왕래할 때 출항하던 곳이다. 당시 백제의 정치 상황은 고구려, 신라와 적대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중국도 남·북조(南·北朝)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남조와 교류하고 있던 백제 사신들..

청도 석빙고(石氷庫)

청도 석빙고(石氷庫) [종 목] 보물 제323호 [명 칭] 청도석빙고(淸道石氷庫)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 관아/ 관아 [수량/면적] [문화재 지정일] 1963. 01. 21 [소재지] 경북 청도군 화양면 동천리 285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청도군 ------------------------------------------------------------------------------------------------------------------------------------------- 석빙고(石氷庫)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경복궁(景福宮)의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

■ 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 [종 목] 사적 제117호 [명 칭] 경복궁(景福宮)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면 적] 343,888.1㎡ [지정일] 1963.01.21 [소재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복궁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1412년 태종은 경복궁의 연못을 크게 넓히고 섬 위에 경회루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임금과 ..

경복궁(景福宮) 의 강녕전(康寧殿),교태전(交泰殿)과 자경전(慈慶殿)

경복궁(景福宮)의 강녕전(康寧殿),교태전(交泰殿)과 자경전(慈慶殿) [침전영역]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행각에 연이어 있는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강녕전의 후면에 있는 양의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세종 때에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경복궁(景福宮) - 향원정(香遠亭)과 건천궁(乾淸宮)

경복궁(景福宮) - 향원정(香遠亭)과 건천궁(乾淸宮)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향원정으로 향하다 보면 향원정 바로 앞에 함화당과 집경당을 볼 수 있다. 이곳 함화당과 집경당 앞은 흥복전(興福殿) 등 내전의 전각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3간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 4년(1867)∼고종 10년(1873)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함화당과 집경당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에 의하면 함화당과 집경당을 잇는 복도 사이에는 샛담을 두어 계명문(啓明門)이란 일문(日門)은 남쪽 담의 문으로, 영춘문(迎春門)이란 월문(月門)은 북쪽 담의 문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변에 담장을 두어 여러 채의 부속 건물과 문을 두었음도 알 수 있다. 고종이 향원정 뒤편에 건..

진주 촉석루

↑서울 광화문 야경 ↑논산明齋古宅 종 목 : 문화재자료 제453호 (예천군) 명 칭 : 예천권씨병암정및별묘(醴泉權氏屛巖亭및別廟)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2동 지 정 일 : 2003.12.15 소 재 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93 소 유 자 : 예천권씨병암문중 관 리 자 : 예천권씨병암문중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예천군 문화관광과 054-650-6902 ↑예천 병암정 (屛巖亭) 초간정 (草澗亭) 종 목 : 문화재자료 제143호 (예천군) 명 칭 : 초간정(草澗亭) 분 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조경건축/ 누정 수량/면적 : 1동 지 정 일 : 1985.08.05 소 재 지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 소 유 자 : 권영기 관 리 자 : ..

전상호(殿上虎) -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 전상호(殿上虎) -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1572년(宣祖 5년) 9월 이 때 선조는 스스로 성군(聖君)으로 자처하는 때였는데. 35세 학봉(鶴峯 金誠一)이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正六品)으로 경연석상(經筵席上)에서 임금과 다음과 같이 문답(問答) 했다. 선조 임금이 묻기를 “경(卿)들은 나를 전대(前代)의 제왕(帝王)에 견주어 보면 어느 제왕(帝王)에 비(比)할 수 있는가?” 하였다. 정언 정이주(正言 鄭以周)가 아뢰기를 “요순(堯舜)과 비교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선조의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였다. 이 때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이 아뢰기를 “요순(堯舜)도 될 수 있고걸주(桀紂)와 같이도 될 수 있습니다” 했다. 『요순은 성군(聖君)의 대명사요, 걸주는 폭군(暴君)의 대명사다..

삼장사(三壯士) -鶴峰 金誠一

■ 삼장사(三壯士) / 詩 지은이 :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 1538년(중종 33)~1593년(선조 26) 矗石樓中三壯士(촉석루중삼장사) / 촉석루 위에 마주 앉은 세 장사들은 一杯笑指長江水(일배소지장강수) / 한잔 술로 웃으면서 장강 물을 가리키네. 長江之水流滔滔(장강지수유도도) / 장강 물은 주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波不渴兮魂不死(파불갈혜혼불사) /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넋도 없어지지 않으리. 이 詩는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이 초유사(招諭使)로 처음 진양(오늘날 진주)에 도착하니 목사는 도망가고 성중은 텅 비어 있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거닐면서 슬픔과 울적함을 견디지 못하였다. 조종도(趙宗道)· 이노(李魯) 두 사람이 의령으로 부터 와서, 강물에 빠져서 적(賊)의 칼날에 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