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무안유씨 세계도(務安兪氏世界圖)

■ 무안유씨(務安兪氏) [본관] 무안(務安) [본관소재지] 전라남도 무안군 (全羅南道 務安郡 ) [시조명] 유천우(兪千遇) ----------------------------------------------------------------------------------------------------------------------------- [본관연혁] 무안(務安)은 전라남도 무안군 일대에 위치한 지명으로 백제 때 물아혜군(勿阿兮郡)이라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하였고, 함풍(咸豊)· 다기(多岐)· 해제(海際)· 진도(珍島) 등의 영현(領縣)을 관할하였다. 944년(고려 혜종 1)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으며, 991(성종 10)에는 다시 무안으로 고치고, 10..

무안유씨(務安兪氏)

■ 무안유씨(務安兪氏) [본관] 무안(務安) [본관소재지] 전라남도 무안군 (全羅南道 務安郡 ) [시조명] 유천우(兪千遇) ------------------------------------------------------------------------------------------------------------------ ●본관연혁 무안(務安)은 전라남도 무안군 일대에 위치한 지명으로 백제 때 물아혜군(勿阿兮郡)이라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하였고, 함풍(咸豊)· 다기(多岐)· 해제(海際)· 진도(珍島) 등의 영현(領縣)을 관할하였다. 944년(고려 혜종 1)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으며, 991(성종 10)에는 다시 무안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나주..

평양조씨 세계도(平壤趙氏世界圖)

■ 평양조씨(平壤趙氏) 시조는 고려(高麗) 예종 때(十二世紀)에 금자광록대부 상장군(金紫光祿大夫 上將軍),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춘(椿)이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준(浚)이, 태종 때 영의정을 지냈고, 토지제도의 권위로서 하륜(河崙) 등과 함께《경제육전(經濟六典)》을 편찬하였다. 또, 명종 때의 성(晟)· 욱(昱) 형제를 들 수 있는데, 성(晟)은 의약· 산수· 천문·지리와 성리학에 밝았고, 욱(昱)은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용문산(龍門山)에 은거하여 '용문선생(龍門先生)'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태종의 부마인 평양부원군 대임(大臨), 정종의 부마인 효산(孝山), 숙종 때 역학자로 이름 있던 관국(觀國), 고종 때 김홍집(金弘集) 내각에서 군무대신을 지낸 희연(羲淵) 등을 들 수..

평양조씨(平壤趙氏)

■ 평양 조씨(平壤趙氏) ●씨족사의 개요(氏族史의 槪要)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의하면 시조는 고려(高麗) 예종 때(十二世紀)의 금자광록대부상장군(金紫光祿大夫上將軍),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춘(椿)이다. 그의 선대는 전하지 않는다. 주요 인물로는 조춘(趙椿)의 5세손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숙왕의 왕비가 되자 선충익재 보조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시중 태사로 평양부원군에 봉해져서 충렬왕의 명에 따라 본관을 상원(詳原)에서 평양으로 바꾸었다. 평양 조씨는 고려 후기 친원파에 속하여, 조인규(趙仁規)는 원나라에 유학하였다. 그의 손자 조일신(趙日新)도 친원적인 인물이지만 같은 친원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한 후 임진정변을 일어켜 고려말 공민왕때의 역신(逆臣) 이기도..

계서야담(溪西野譚)

■ 계서야담(溪西野譚) 계서야담(溪西野譚)은 조선조의 명 재상 유성룡에 얽힌 이야기 책이다. 유성룡(柳成龍)에게는 바보 숙부(痴叔·-치숙)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콩과 보리를 구분 할 줄 모를정도로 바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숙부가 柳成龍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했다. 柳成龍은 실제로, 당대 조선의 국수(國手)라 할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아버지 항렬되는 분의 말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유성룡은 바보 숙부에게 초반부터 몰리기 시작하여 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나머지는 몰살 당하는 참패를 했다. 바보 숙부는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 "그래도 재주가 대단하네. 조선 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 이에..

흥선대원군의 한글편지

■ 흥선대원군의 한글편지 ↑흥선대원군,이 며느리 명성황후에게 보낸 한글편지"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그동안 망극한 일을 어찌 만 리 밖 책상 앞에서 쓰는 간단한 글월로 말하겠습니까. (중략) 다시 뵙지도 못하고 (내가 살아 있을) 세상이 오래지 아니하겠으니, 지필을 대하여 한심합니다. 내내 태평이 지내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구한말 비운의 정치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1882년에 쓴 한글 편지 중 일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흥선대원군은 이 편지를 쓸 당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중국 톈진(天津)에서 유폐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했을 유폐 생활, 흥선대원군은 누구에게 편지를 썼을까. 편지 수신자에 대한 힌트는 편지 봉투에 있다. 편지 봉투에는 '뎐 마누라 젼(前)'이라..

학봉 김성일 오형제

■ 학봉 김성일 오형제 16世 김만철(金萬哲) 文科 禮曹正郞 ㅣ 17世 만근(金萬謹) 進士試 ㅣ 18世 예범(禮範) ㅣ 19世 진(璡, 진사시) 청계공(淸溪公) ㅣ 20世 극일(克一)-------수일(守一)-------명일(明一)-------성일(誠一)--------복일(復一) 약봉공(藥峯公) 구봉공(龜峯公) 운암공(雲岩公) 학봉공(鶴峯公) 남악(南嶽) (文科) (成均生員) (生員試) (文科, 觀察使) (文科, 府使) ●長男 金克一 [문과] 명종(明宗) 1년(1546) 병오(丙午)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위(11등/33명) ●次男 金守一 [생원시] 명종(明宗) 10년(155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식년생원] 2등(二等) 25위(30/100) ●三男 金明一 [생원시] 명종(明宗) 19년(..

도암서원(道巖書院)

도암서원(道巖書院) [소재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동 26번지 ↑도암서원 앙모문(道巖書院 仰慕門) ↑도암서원(道巖書院) ↑도암서원 앙모문(道巖書院 仰慕門) ↑도암서원 상평루(道巖書院 常平樓) ↑도암서원 강당과 추념재(道巖書院 講堂과 追念齋) ↑도암서원 강당과 추념재(道巖書院 講堂과 追念齋) ↑도암서원 추념재(道巖書院 追念齋) ↑주차장 우측에서 바라본 도암서원의 옆 모습 ↑도암서원 사당(道巖書院 祠堂) ↑김면장군 묘 ↑김면장군 묘 후경 ■ 도암서원 연혁 1666년(현종 7) 사림에 의하여 시임 조봉원(趙逢源) 현감의 협조를 얻어 고령읍내에 시창(始創)하여 송암 김선생(沔)과 옥산(玉山) 이선생(起春, 星山人, 1541~1597)을 제향하였다. 1789년(정조 13) 서원주변에 시장이 있어서 번잡하고..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

■ 청산혜요아(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 ~ 1376) 청산혜요아이무어(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혜요아이무구(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료무애이무증혜(聊無愛而無憎兮) /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여수여풍이종아(如水如風而終我)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혜요아이무어(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혜요아이무구(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료무노이무석혜(聊無怒而無惜兮) /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여수여풍이종아(如水如風而終我)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