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제사의 합설에 대한 질의...

본 내용은 전통의 명문 경주이씨 종친회카페에 질의된 내용으로서, 최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선대의 제사를 모두 한 번에 합설한다는 얘기에 대한 질의응답 내용으로 참고가 될 것 같아 이곳에 올립니다. 일시 : 08.10.16 20:20 ㅣ 질의자 : 이형우 ●질의내용 안녕 하십니까? 얼마 전에 집사람이 친구네에는 조상제사를 한날에 전부 지낸다고 한답니다. 1년에 7번 제사가 있는데 가족회의에서 1년에 한번 7분을 모시고 제사를 지네고 설날, 추석을 지낸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이야기 인지 궁금합니다. ●답변내용 경주이씨 명문카페지기 이민희 中河(08.10.17 07:01) 예절은 시대에 맞게 변화발전을 합니다. 그러나 너무 과격하면 예법에 벗어납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변형한다고 해서 벌금을 내거나 욕할..

급량잡단(及梁雜端) - 성호 이익(星湖 李瀷)

■ 급량잡단(及梁雜端) 성호 이익(星湖 李瀷) - 여주인(驪州人) 1681년(숙종 7)~1763년(영조 39). 우리나라 사람은 문헌이 부족한 관계로 상고하는 데에 그릇된 점이 많아 사기의 득실은 논할 것도 없고, 자기네 시조의 보록(譜錄)에 까지도 그 착오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경주이씨는 혁혁한 문벌인데도 지금 백사(白沙) 이상공(李相公)의 문집을 상고해 보면 매양, 우리의 시조는 사량부 대인(沙梁部大人)이라."고 했으니, 사량은 곧 진한 육부(六部)의 하나이다. 신라 혁거세 9년에, 급량부(及梁部)에는 이씨의 성을, 사량부(沙梁部)에는 최씨의 성을 하사했으니, 지금 경주 최씨는 곧 사량부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삼국사기》에, “최치원은 사량부 사람이라.”고 했으니, 이씨의 선조는 곧 급량부인데 후..

덕수이씨 유래

■ 덕수 이씨 유래 덕수이씨 시조 이돈수 세계도(이순신장군 집안). 덕수 이씨는 조선시대에 105명의 문과 급제자와 정승 7명,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을 냈으며 중종에서 영조때까지의 300년간이 가장 융성했다. 덕수(德水)는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에 속해있던 옛 지명으로 본래는 고구려시대의 덕물현(德勿縣) 또는 인물현(仁物縣)이었는데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덕수현(德水縣)으로 개칭하였다. 후에 해풍군(海豊郡)과 합하여 풍덕부(豊德府)로 승격하였으나, 나중에 개성부(開城府)를 제외한 구(舊) 개성군(開城郡)과 합하여 개풍군(開豊郡)이 되었다. 덕수이씨(德水李氏)의 시조(始祖) 이돈수(李敦守)는 고려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셨으며,2세조 양준(陽俊)은 조산대부(朝散大夫)로 흥위위보승장군(..

이지함선생 묘

↑주자장에서 올려다 본 토정 이지함 선생묘역 전경 소재지 :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산27-3 ↑묘역의 상단에서 내려다 본 묘역 전체모습 ↑토정 이지함 선생 묘 조선 중기의학자이며『토정비결』의 저자로 유명한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 선생의 묘이다. 선조 6년(1573) 주민의 추천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청하(지금의 포천) 현감이 되었는데, 이때 임진강의 범람을 미리 알아서 많은 생명을 구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의학 복술, 천문, 지리, 음양 술서에 능했고, 풍수지리에 밝아 본인의 묘 터 역시 생전에 정했다 전하고 있다. 일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어 ‘토정’이라는 호가 붙게 되었다고 한다. 토정이 의학·복술에 밝다는 소문이 점차 퍼져 신수를 보아달라고 ..

족보의 종류와 구분

■ 족보의 종류와 구분 1.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책이다. 2.족보(族譜),종보(宗譜) 종보(宗譜) - 본관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족보책으로, 한 가문의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한 책이다. 3.세보(世譜),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수록된것을 말하며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한다. 4.파보(派譜),지보(支譜) 시조로 부터 시작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들 파보에는 그 권수가 많아 종보를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증가되어가고, 그 표제에 연안김씨파보, 경주이씨 좌랑공파보, 순창설씨 함경파세보 등과 같..

[이덕일 사랑] 분묘(墳墓)의 조건

작성일 : 2008. 09. 26(금) 옛 사람들이 조상의 분묘를 좋은 곳에 쓰고자 했던 것은 효심(孝心)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상의 혼령이 골육(骨肉)을 계승한 후손과 소통한다는 생각에서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여러 조상들을 함께 모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42세 때인 정조 2년(1778) 세도가 홍국영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황해도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에 은거했다가 양호맹(梁浩孟)의 개성 금학동(琴鶴洞) 별장으로 이주했다. 이때 박지원은 개경의 남원(南原) 양씨들이 가까운 산에 조상의 분묘를 모시고 이를 지키는 분암(墳菴)의 이름을 '영원히 생각한다'는 뜻의 영사암(永思菴)이라고 지은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영사암기(永思菴記)'를 지었다. '영사암기'에서 연암은 친..

서얼(庶孼)에 대한소고

■서얼, 적서구분, 허통 서얼(庶孼)에 대한 차별은 너무나 심했고 차별한 이유. 필자가 어렸을 때 옆 동네 어떤 집에서는 첩의 자식이라고 하여 제사 때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절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실부인에서 난 자식이냐 첩실에서 난 자식이냐를 놓고 차별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첩실 소생이라고 하여 다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 양인(상민)이상 신분 출신의 첩에서 난 자식인 서(庶)와 여자 종신분의 첩에서 난 자식인 얼(孼)로 구분된다. 고려시대나 중국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서얼에 대한 차별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원인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태조 이성계가 후처에서 난 방석을 세자로 삼은 것에서 비롯된다. 이에 태종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

족보에 얽힌 문중 이야기.

■족보에 얽힌 문중 이야기 남명 조식 종가, 絶孫으로 대 끊겨. 안동 임청각 이명 종가는 면면히 이어지며 옛 명성 그대로 일부 문중은 신분 상승에 이용하기 위해 족보 조작하기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척화(斥和)를 주장하며 항쟁했던 두 충신이 있었다.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선생이 그들이다. 이들 종가는 모두 후대에 이르러 종손이 나라의 죄를 입어 종 통(宗統) 계승에 일대 위기를 맞았다. 청음 종가는 현재 13대를 내려와 있는데 5번의 양자가 있었다. 청음의 7대 종손에 김건순(金建淳)이라는 이가 있었다. 이 사람은 6대 종손이 세상을 뜬 뒤 입후되었다. 이를 ‘계후사손(繼後嗣孫)’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사람이 사학(邪學, 天主學)의 죄를 입었다. 이 사건은 문중 뿐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로 인..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 (坡平尹氏貞靖公派墓域)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82호) (소재지 : 경기 파주시 교하면 당하리 산4-20외) ■ 파평윤씨정정공파(坡平尹氏貞靖公派)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당하리에 있는 파평윤씨정정공파는 고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신달(莘達)이며, 현손 관「瓘,미상∼1111(예종 6)」은 고려중엽의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파평윤씨의 중시조이다.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벌족(伐族)을 이루며 수십 파로 분파되었다. 그리고 파평윤문 가운데서 주로 판도공파(版圖公派>承禮)와 소정공파(昭靖公派>坤)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이 두 파의 후손이 가장 번창하여 파평윤씨 인구의 약 80%를 점유한다. 판도공파는 승례(承禮)의 아들 대에서 다시 제학공파「提學公派: 규(珪)」·부윤공파「府尹公派>보로(普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