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우암 송시열 선생 묘(尤庵 宋時烈 先生 墓)

■우암 송시열 선생 묘 [생졸년] 1607년(선조 40)~1689년(숙종 15) 조선(朝鮮)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字)는 영보(英甫), 호(號)는 우암(尤庵), 화양동주(華陽洞主),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1633년(인조11)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여 최명길(崔鳴吉)의 천거로 경릉 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 1635년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호란때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피란하였고,1637년 화의가 성립되자 낙향,1649년 효종이 보위에 오르자 장령(掌令)에 등용 세자시강원진선(世子侍講院進善)을 거쳐 집의가 되었으나 당시 집권당인 서인의 청서파에 속한 그는 공서파의 김자점이 영의정이 되자 파직된 뒤 다시 낙향하였다. 이듬해 김자점이 파직된 뒤 ..

권율장군 신도비 명(權慄 將軍 神道碑 銘)

권율장군 신도비명(權慄 將軍神道碑銘) ◈ 시대 : 조선 ◈ 연대 : 1861년(철종12년) ◈ 유형/재질 : 비문/돌 ◈ 문화재지정 : 기타문화재 - 경기도 기념물 제2호 ◈ 크기 : 높이 186Cm, 너비 82cm, 두께 40cm ◈ 소재지 :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 산 168-1번지(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223) ◈ 서체 : 해서(楷書) ◈ 찬자/서자/각자 : 신흠(申欽) / 이유원(李裕元) / 미상 -------------------------------------------------------------------------------------------------------------------------------------- ■ 권율 신도비(權慄 神道碑) 조선국 팔도도원수 증 영의정..

덕수이문을 빛낸 인물

덕수이문을 빛낸 인물 2世 이양준(李陽俊) 추밀공은 1202년 (고려신종5년) 출생 1221년 벼슬에 나가 판의조승 1224년 산원 1227년 식목도감이되었다. 1228년 도병마사의 녹사가 되었다가 그해 다시 산원이 되고 1230년 별장이 되었으며 1232년 전주판관이 되었다. 1236년 낭장 1238년 삼사판관을 겸직 하였고 1240년 이부원외랑으로 옴겼고 이듬해 용호군 중량장이 되었다가 어시잡단으로 승진 하였다. 1243년 신호군 중량장이 되고 뒤에 조산대부(종6풍)로 가자 되어 흥위위 보승장군이 되었다. 돌아가신후 은청광록대부(정3품) 동지추밀원사. 어사대부. 이부상서. 상장군에 증직 되었다. 4世 이윤운(李允芸) 1249년(고종36년)에 출생 1275년 양온량동정이되고 1279년 잡직령이 되었으며..

인터넷 종친회 바로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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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장군묘(金佐鎭將軍墓)

소재지>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산 50번지 ●김좌진장군(金佐鎭將軍) 1889년(고종 26)~1930년,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다. 그의 자(字)는 명여(明汝)이고 호는 백야(白冶), 관향은 신안동(新安東)으로 충남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부농가(副農家) 김형규(金衡奎)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여.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 하였다. 평소 개화사상(開化思想)이 투철하여, 15세 때인 1904년 , 가노(家奴)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해방(解放) 시키고는 전답(田畓)을 나누어 주었다. 1905년 서울로 상경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07년 향리로 돌아와 가산을 정리해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設立), 90여 칸의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제공하며 문맹퇴치(文盲退治)에 앞장섰다, 1911년에..

족보의 위조

백승종 서강대 교수. 사학 ● 족보를 공부합시다. 이 종표씨(이하 가명)는 제법 잘 나가는 건설회사 사장이다. 남도의 어느 시골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는 일찌감치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6·25전쟁이 훑고 지나간 폐허의 도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그는 인고의 세월을 딛고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국내 중소 건설업계에서 이름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런 이사장에게 뜻밖의 고민이 생겼다. 87년 가을 그의 맏아들 승복의 혼사와 관련해 벌어진 일이다. 집안에 재력이 있는데다 미국 명문대 박사학위를 가진 장남의 배필감을 구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중매쟁이를 놓아 최종으로 낙점된 후보는 국내 명문여대를 나온 김수선이라는 아가씨였다. 며느리감인 김수선은 충청도에서 대대로 세(勢)를 누려온 이..

왕의 묘호 종과 조의 차이점.

■ 왕의 묘호(廟號) 종(宗)과 조(祖)의 차이점. 왕의 호칭에 조(祖)와 종(宗)을 붙인 것을 묘호(廟號)라고 하는데, 이는 임금이 죽은후에 종묘의 사당에 신주를 모시기 위해 붙혀진 이름이다. 또한 묘호(廟號)는 왕이 죽은 후,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그 묘실(廟室)을 지칭 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의논하여 정하였는데,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폐위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물론 묘호가 없다. 왕의 호칭에는 묘호(廟號)외에도 사후에 중국 황제가 지어 보내주는 시호(諡號)와 신하들이 그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 올리는 휘호(徽號), 혹은 존호(尊號) 등이 있다. 예를 들면 태조(太祖)의 정식 호칭은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太祖 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 大王)으로 太祖는 묘호, 강헌(康獻)은 시호, 지..

정탁, 황희정승. 황정욱, 성임, 성현, 김행, 이세화, 성혼, 황보인 등 묘.

↑파주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제일 먼저 찾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라는 춘곡 정탁 묘역 전경 ◈답 사 : 파주 권역 묘지 답사 ◈일 시 : 2008.11.30(일) 08:00 ~ 20:00 ◈참가 인원 : 7명 ↑황희 정승 묘. ↑청백리 황정욱 묘. 패관문학의 선구자, 송설체의 대가 성임 묘. 석인의 의상이 특이하고, 신도비 몸의 사방에 무늬가 세겨져 있다. ↑성임의 아우인 용재 성현 묘역. ↑성현 묘역 우측에 위치한 묘역도 둘러보며 신도비문으로 누구의 묘인지 확인 들어가고... ↑장포 김행 묘. ↑조선시대 주요 요직을 두루거친 청백리 이세화선생 묘역 뒷편에서 내려뎌 본 모습 ↑율곡의 평생지기, 성리학의 대가 성혼선생 묘. ↑계유정난때 김종서 등과 함께 피살되었던 황보인 묘. ↑황보인 묘 뒷편에서 내려다 ..

조말생 묘역(趙末生墓域)

■조말생(趙末生), [생졸년] 1370년(공민왕 19)~1447년(세종 29)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근초(謹初). 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 화산(華山)이다. 정몽주(鄭夢周)의 제자인 성리학자 조용(趙庸)의 문인(門人)이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장원급제 하여 요물고부사(料物庫副使)에 등용되고, 감찰. 정언. 헌납 등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였다.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둘째로 급제하여,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이 되었으며, 이듬해 장령(掌令)을 거쳐 주로 예문관 승정원에서 근무하였고, 그는 대학자로 특히 글씨에 뛰어났다. 1418년 이조참판에 제수되고 같은해 형조판서 승진하였다. 세종 즉위 후,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27년(세종 9) 병조판서 때 그의 ..

4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이유?

■ 4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이유?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지상에서의 죽음은 천상에서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제삿날은 천상에서의 생일날과 같은것. 그리고 이른 말도 있다. 생유어사(生由於死)하고 사유어생(死由於生)이라. (삶은 죽음으로부터 연유 되고, 죽음 또한 삶으로부터 연유 된다) 우리는 지금 까지 전통적 관례로 4대조 까지만 제사를 올린다. 왜 하필 4대조 까지만제사를 지낼까? 이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아마 옛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육신(넋)은 죽지만 영혼(정신)은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럼으로 영혼은 하늘 기운인 양(陽)이요. 육신(넋)은 땅의 기운인 음(陰)으로 이 기(氣)의 파장은 1대를 약 30년으로 하여, 4대인 120년은 유지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