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우리나라 부자가 재상(宰相)이 된 사람

■ 우리나라 부자(父子)가 재상이 된 사람 [1]우리나라에 부자(父子)가 재상(宰相)이 된 자(者)로는 1.익성공(翼成公) 황희(黃喜)와 그 아들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 수신(守身)이 모두 영의정이 되었고, 2.이인손(李仁孫)이 우의정이고, 그 아들 광릉부원군(廣陵府院君) 이극배(李克培)가 영의정이 되었으며, 3.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 정창손(鄭昌孫) 공이 영의정이고, 그 아들 정괄(鄭佸)이 우의정이었다. [2]할아버지와 손자가 재상이 된 자는 1.상락(上洛) 김사형(金士衡)과 그 증손 김질(金礩), 2.서원(西原) 한상경(韓尙敬)과 그 손자 한명회(韓明澮), 3.좌상 노한(盧閈)과 그 손자 영의정 노사신(盧思愼)이다. [3]장원 급제하여 재상이 된 사람은 좌상 맹사성(孟思誠), 문성(文城) 유량(柳亮)..

6형제 과거급제자 가문.

■ 6형제 과거급제자 가문. 조선시대 총 804회의 문과시험이 실시되었고 총 927개의 본관성씨에서 15,147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그리고 3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이는 많았으나, 5형제 급제한이는 적었고, 6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한 이는 더물었다. 그러므로 이들 중 부모가 죽은 사람은 증직(贈職)을 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해에 쌀 20석을 하사하였다. 특히 세종조에 전의이씨(全義李氏) 한성부윤(漢城府尹) 이사관(李士寬)의 여섯 아들과, 인조조에 원주원씨(原州元氏) 원해굉(元海宏)의 아들 6형제가 모두 대과에 급제했다. ■ 6형제 과거급제자. ●조선 1. 세종조 전의이씨(全義李氏) 한성부윤(漢城府尹) 이사관(李士寬)의 여섯 아들중 장남은 무과급제하고 나므지 다섯 아 들이 문과급제 했다. 長男..

김해 옛지명(金海舊地名)

■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용재 성현 저[慵齊 成俔 著 (1439(세종 21~1504(태종 5)] 동쪽으로 양산군(梁山郡) 경계까지 42리이고 남쪽으로 웅천현(熊川縣) 경계까지 40리이며, 서쪽으로 창원부(昌原府) 경계까지 44리이고 북쪽으로 밀양부(密陽府) 경계까지 44리인데, 서울과의 거리는 8백 84리이다. [건치연혁] 가락국(駕洛國)이다. 혹 가야(伽倻)라 하기도 하였는데 뒤에 금관국(金官國)이라 고쳤다. 시조(始祖) 김수로왕(金首露王)으로부터 구해왕(仇亥王)까지 무릇 10대, 4백 91년을 왕국으로 내려왔다. 구해왕이 신라에게 항복하니 법흥왕(法興王)이 객으로 예대(禮待)하고 그 나라를 읍으로 만들어서 금관군(金官郡)이라 불렀다. 문무왕(文武王)이 금관소경(金官小京)을 설치하였고 경덕왕(景德王)..

고려세족과 조선조 양반귀족 성씨

■ 청주경씨(淸州慶氏) 조선실권 양반 34가문 중 29번째(관직 많은 종중 순) 사학자들이 ‘존 던컨의 경험주의 연구방법’에 의하여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사료(史料)를 기초로 고려후기(1260-1392)와 조선 초(1392~1400)에 각각 중앙관직을 지낸 인물과 그 중 실권 층에 해당하는 재추직(宰樞職 : 장관급 요직)을 역임한 사람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족보, 묘비명, 기타 문서를 자료로 그들의 출신가문을 추적하여 고려세족(勢族)으로 알려진 22가문과 조선조 양반귀족 34가문 출신을 가려내 중앙관직과 재추직에서 각각 그 비율을 양적(量的) 분석에 따라 비교하였다. 그 연구 결과 조선 초(朝鮮初) 중앙관직을 차지한 양반귀족 34가문을 가려냈는데, 그 가운데 청주경..

광화문(光化問)

↑1968년 일본의 총독부 건물을 흘어내고 복원된 광화문 전경 ↑광화문 편액 광화문(光化問)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이다.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 지었다.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고.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중앙에 있는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 주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1820~1898)의 경복궁 재건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6·25 동란 때 또 파괴됐었다. 1968년 제3공화국 때 복원됐지만 원래 위치와 모..

문공유 묘지명(文公裕墓誌銘) - 고려의종때의 문신 및 필예가(筆藝家)

■ 문공유 묘지명(文公裕 墓誌銘) [시대] 고려의종(毅宗) [연대] 1159년(의종13년, 금(金) 제량(帝亮) 정륭(正隆) 4년) [재질] 돌 [비(碑)의 크기] 세로 51cm, 가로 66cm, 글자크기 1.5cm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 두 미상 ● 개관 문공유(文公裕)는 뒤에 이름을 고수(顧壽)로 고쳤고, 자는 항적(亢逈)으로, 남평군(南平郡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사람이다. 아버지는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익(翼)이다. 15세에 남성시(南省試)에 합격하고 25세에 과거에 우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자겸(李資謙)이 집권할 당시에는 모함을 받아 형 공인(公仁)과 함께 양주(梁州) 등으로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복직하여 1129년에는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133년..

평원군 부인 원씨 묘지명(平原郡夫人元氏墓誌銘)

■ 평원군부인 원씨 묘지명(平原郡夫人元氏墓誌銘)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선생의 재취 장모(再娶丈母) ------------------------------------------------------------------- 최해 찬(崔瀣 撰) 고려의 대신(大臣) 가운데 휘(諱)가 항(恒)인 분이 있어 세조황제(世祖皇帝) 때에 태사(太師) 충렬왕(忠烈王)의 재상(宰相)을 지냈으니, 성(姓)은 박씨(朴氏)요. 벼슬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시호(諡號)는 문의(文懿)이다. 아들광정(光挺)이 처음으로 본국의 자제(子第)로 선발되어 원나라 궁궐을 숙위(宿衛)하고,천자의 명을 받아 금부(金符)를 차고 소신교위(昭信校尉) 고려 서경 등 처수 수군 부 만호(高麗西京等處水手軍副萬戶) 겸(兼) 광정대부(匡靖大夫) 평양부..

우리나라 무과(武科)시초 - 1390년

■ 우리나라 무과(武科) 시초. 경오년 공양왕 2년(명 태조 홍무 23, 1390) --------------------------------------------------------------------------------------------------------------------------- ●춘정월 적경원(積慶園)을 창건하였다. 예조가 헌의(獻議)하여, 한 광무(漢光武)와 송 영종(宋英宗)의 고사(故事)에 따라 4대의 고비(考妣)를 추봉(追封)하고, 원(園)을 세워 사관(祠官)을 두도록 청하자, 이에 적경원을 세우고 4대를 추봉하였다. 정원군(定原君)을 삼한국 대공(三韓國大公)으로, 순화후(淳化侯)를 마한국공(馬韓國公)으로, 익양후(益陽侯)를 진한국공(辰韓國公)으로, 서원후(西原侯)를 변한..

필운대 설권서(弼雲臺稧卷序) - 李裕元 景春 著

■ 필운대설권서(弼雲臺稧卷序) 월성 이유원 경춘저(月城李裕元景春著) 宣祖朝詢及白沙先生初號弼雲之義。金酒隱相公啓甚詳。松江鄭公詩。亦有心事弼雲山之句。弼雲之名。著于東國。余少時尋古蹟於弼雲山。見先生手書弼雲臺三字。臺之稱肇自是。而臺下有小基。指點爲先生居者。三百年于玆矣。人聚居成村。多爲數百戶。重義氣而尙然諾。辨少長而好禮讓。有時携酒登山吟咏。雖市井喧熱之中。見其人聽其言。不問可知爲臺下居人。其碌碌者流。不敢與之窺占。聖上奉迎之十年。居民修稧。以余白沙後孫。屬爲洞長。余鄕居人也。不堪知京邸一隅事。而本洞之俗。去古未遠。將使薄夫敦懦夫立。不失三百年遺風。余安能反樸回淳。自底於休休之域哉。昔白沙先生爲蓴里稧長。訓民有道。今於弼雲山下。復講舊稧。此蓴里之餘韻。而㙜之名可以悠久也。余於是不無興感而爲之序。 자료 : 嘉梧藁略) >嘉梧藁略册十二 > 記

날 버린 그대여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 날버린 그대여(閨情)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1309(충선왕 1) ∼1385년(우왕 11). 저는 그대에게 동심결매듭을 드렸고/贈君同心結(증군동심결) 그대는 저에게 합환선을 주셨지요/貽我合歡扇(이아합환선) 마침내 그대의 마음이 돌아서/ 君心竟不同(군심경부동) 사랑하고 싫어함이 천만번 변하니 /好惡千萬變(호악천만변) 저는 어디에서 기쁨을 찾을까요/ 我歡亦何成(아환역하성) 밤낮으로 그대 그리워 야위어갑니다 /憔悴日夜戀(초췌일야련) 절 버리셨어도 그대 원망 안 해요/ 棄捐不怨君(기연부원군) 젊고 아름다운 새 여인을 얻으셨으나 /新人多婉孌(신인다완연) 그 아름다움 얼마나 갈까요 /婉孌能幾時(완련능기시) 세월은 화살보다 빠른 것을/光陰嫉於箭(광음질어전) 어찌 알리오 꽃과 같은 저 여인도/焉知如花人(언지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