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양촌 권근 신도비(陽村權近神道碑)

■ 증시 문충공 양촌 권 선생 신도지비 (贈諡 文忠公 陽村 權 先生 神道之碑) ◇慶州李氏 石灘公派 派祖 李存吾의 사위 ◇묘지 소재지 :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유명조선국 추충익대좌명공신 숭정대부 의정부찬성사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세자이사 길창군 증시문충공 양촌선생 권공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推忠翊戴佐命功臣崇政大夫議政府贊成事集賢殿大提學知經筵春秋館事 世子貳師 吉昌君 贈諡文忠公 陽村先生權公 神道碑銘 幷書). 선교랑 집현전부수찬 지제교 경연사경(宣敎郞 集賢殿副修撰 知製敎 經筵司經) 신(臣) 이개(李塏) 이개 (1417~1456년) : 사육신의 한사람이다.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자는 청보(淸甫), 백고(伯高)이며, 호는 백옥헌(白玉軒)이다. 시호는 의열(義烈)이었다가 뒤에 충간(忠諫)으로 시호를 고..

이춘국(李春國)에 대하여

조선 인물사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사항이 있어 여러 제현의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 질문내용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扈從)한 견마배(牽馬陪). 이춘국(李春國)에 대한 관향(貫鄕)이 인터넷 어느 자료에 교동(橋東)이씨 라고 표기 되여 있는데, 우리나라 성씨보감에 교동(橋東) 이 씨란 없어서 문의 드립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평양까지 호종한 공로로 수문장을 제수 받았다. 1604년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 3등에 책훈되고 교림군(喬林君)에 봉해졌다.

족보의 증명력에 관한 문 답

족보의 증명력은 어떻게 되는지 [문]본관을 정정할려면~~ 甲의 본은 원래 경주이나 호적편제 당시 착오로 김해로 잘못 기재·신고 됨으로써 실제의 본과 다르게 등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착오를 정정하기 위하여 호적정정허가신청을 하였는데, 그 입증자료로써 족보사본을 인우보증서와 함께 제출하였는바, 이 경우 족보의 증명력은 어떻게 되는지요. [답]「민사소송법」제202조는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호적선례를 보면, “현행법상 자의성과 본은 원칙적으로 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일괄..

알맹이는 빠뜨리고 껍데기만 좇는다면

■알맹이는 빠뜨리고 껍데기만 좇는다면 옛사람의 작품을 본뜨려고만 하고 옛사람의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은 시대에 맞는 말을 하면서 옛사람의 뜻을 잃지 않는 것만 못하다. [원문] 與其有意古作而不得古 不若因用時語而寧不失古人之義 여기유의고작이부득고 불약인용시어이녕불실고인지의 자료 : 최국술(崔國述),《고운집》 -------------------------------------------------------------------------------------------------------------------------------------- [해설] 이 글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최국술(崔國述)이 1926년 고운 선생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 문집을 간행하면서 지은 서문(序文)에 실린 글입니다. 세상에서..

쇄미록(鎖尾錄) - 吳希文 著

■ 임진왜란의 생생한 증언 기록,「쇄미록(鎖尾錄)」 「쇄미록」은 조선중기의 학자 오희문[吳希文 : 1539(중종 34)~1613(광해군 5)]이 쓴 일기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선조 24) 11월부터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 2월까지 9년 3개월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을 「쇄미록」이라 한 것은 『시경(詩經)』의 ‘쇄혜미혜(瑣兮尾兮) 유리지자(遊離之子)’에서 나온 것으로, 유리기(遊離記) 또는 피난의 기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쇄미록』은 장기간에 걸쳐 쓴 전란의 기록물이며, 생활사 연구에 단서가 되는 다양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쇄미록」의 전반부는 임진왜란의 발발과 여러 지역을 전전하는 힘겨운 피난 행적이 중심을 이룬다. 일기를 보자. ☞16일 : 전하는 말에 왜선(..

장희빈 묘(張禧嬪 墓)

■ 숙종의 빈(조선 제20대왕 경종의 생모) 희빈장씨 묘(禧嬪張氏 墓) - 장희빈(張禧嬪) ●숙종가계도 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 빈 산에 낙엽 우수수 떨어지는데 絶后風貌此寂廖(절후풍모차적료) 절색의 왕비 풍모 이리 쓸쓸할 줄이야 可惜一夢難更現(가석일몽난경현) 슬프도다, (그 미모) 꿈에서도 다시 볼 수 없으니 昔年歌曲卽今暮(석년가곡즉금모) 옛날 (장희빈) 노래 바로 이 저녁을 위한 걸 줄이야 서울 서쪽 경기도 고양시에 다섯 왕릉을 모신 서오릉(西五陵)이 있다. 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숙종이 잠든 곳이 명릉(明陵)인데, 제1계비 인현왕후도 함께 모셔 쌍분이 되었다. 그 옆으로 곡장을 달리해서 제2계비 인원왕후를 모셨다. 숙종이 왼쪽으로 눈길 주면 인현왕후요, 오른쪽을 바라보면 인원왕후이다..

정몽주선생 처모(장모) 경주이씨 가계도

■ 정몽주 선생 처모(장모) 가계도[경주이씨] 16世 인정(仁挺)---------진(瑱)-----세기(世基) 평리성암공파 동암공 송암공 (平理誠菴公派) (東菴公) (松巖公) ┌───────────┘ 17世 천(蒨)--------매(邁)--------과(薖)---------조[싹조>초두변[艹]밑에 포수(脩)] 국당공파 부정공파 상서공파 사인공파 (菊堂公派) (副正公派) (尙書公派) (舍人公派)] ┌───┘ 18世 경지(敬之)---경원(敬元)-----女[龍川李氏 李士贇(예쁠빈, 예쁠윤)의 妻] 판서공 수찬공 판사공(判事公) (判書公) (修撰公) ㅣ 19世(女) 정몽주 처(鄭夢周 妻) 포은선생(圃隱先生) ● 정몽주 외가와 처가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어머니 변한국 대부인(卞韓國 大夫人) 영천이씨(永川李氏)는 ..

선을 행하면....심대윤(沈大允)

■ 착하게 살자. 爲善而不見福 終必得福, 爲惡而不見禍 終必得禍. 위선이불견복 종필득복, 위악이불견화 종필득화. [국역] 선을 행하면 당장 복을 받지 못하더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복을 얻으며, 악을 행하면 당장 화를 받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화를 얻는다. 출처>[심대윤(沈大允 1806-1872), 《복리전서(福利全書)》 김성애 역] -------------------------------------------------------------------------------------------------------------------------------------- [해설] 이상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착하게 사는데 왜 저리도 못 살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그렇게 안 도와주시는 거야? 반대로 저..

신편고금사문유취유집(新編古今事文類聚遺集)

↑重刻序: 丙午臘月望日...祝穆謹識刊記: 萬曆甲辰(1604)孟春之吉金谿唐富春精校補遺重刻 l 30.5 x 18.5cm 송대의 축목(祝穆)과 원대의 부대용(富大用)·축연(祝淵)이 편찬했다. 축목은 전집(前集) 60권, 후집(後集) 50권, 속집(續集) 28권, 별집(別集) 32권을 편찬해서, 1246년에 완성했다. 이 책은 당대 구양순(歐陽詢)의 〈예문유취 藝文類聚〉를 모방하여, 여러 책에 나오는 중요한 부분과 고금의 사실(事實)·시문(詩文)을 수집하여 부문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것이다. 즉 전집은 천도(天道)·천시(天時)·지리(地理)·제계(帝系)·인도(人道)·사진(仕進)·선불(仙佛)·민업(民業)·기예(技藝)·악생(樂生)·영질(嬰疾)·신귀(神鬼)·상사(喪事) 등 13부문, 후집은 인륜(人倫)·창기(娼妓)·노복..

만량(漫浪) 이녕(李寗)선생의 간찰

■ 이녕(李寗), [생졸년] 1527년(중종 27)~1588년(선조 21) [세계] 퇴계 선생의 조카 -------------------------------------------------------------------------------------------------------------------------------------- 공의 휘(諱)는 녕(寗)이고 자(字)는 노경(魯卿), 호는 만량[漫浪=(水良)], 예안(禮安)과 온혜(溫惠)에서 살았으며, 성은 진보이씨(眞寶李氏)이다. 아버지 온계(溫溪) 해(瀣)의 차자(次子)로 1527년(중종 27) 10월에 태어나 숙부(叔父) 퇴계(退溪)에게 수학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현감(縣監)이 되어 청신(淸愼)으로 직무(職務)하였다. 퇴계(退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