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 1744

정익린 묘갈명 병서(鄭翼麟墓碣銘 幷序) - 정기룡 장군 장자

정익린『鄭翼麟, 1596년(선조 29) ~ 1649년(인조 27)』 僉樞鄭公墓碣銘 幷序 - 李萬敷 三道水軍統制使鄭公起龍。籍晉陽。以忠勇致功業。嗣曰翼麟。字聖瑞。戊午武科出身。以軍功。陞階折衝。辛酉。拜僉知中樞府事。己丑四月二十八日。終于家。得年五十有四。葬于沙伐午向之原。初配花山權氏。不字。繼室順天金氏。男夏韺,善韺,舜韺,美韺,禹韺,元韺。女金世鼎,權志妻。孫純,緡,縉,全世耈,張彩明,金億齡,金華鍵妻。夏韺出。綸,糾,緝,李聖一,朴奎亨妻。善韺出。維,緯,尹商佐妻。舜韺出。安命天妻。禹韺出。績,紝,紀,縵。元韺出。內外孫曾五十餘人。權氏葬在咸昌栗谷丙向之原。祔公墓右金氏之葬。是也。綸以其伯父夏韺命。來曰。公旣銘吾祖墓石矣。吾父葬次祖兆。不可以無表。幸卒以惠。夫以不得辭於前。奚重辭焉。葢公器度恢偉。武藝竗絶。丙子。赴國難。在元帥票下。能以弓劍殲賊頗多。至創傷而無懼焉。講..

서계 이선생 가장결(西溪李得胤先生家藏訣)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이득윤과 ‘서계이선생가장결’ ‘정감록’에 수록된 예언서의 저자들 중에도 비교적 낯선 인물이 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계 역시 조선시대엔 상당히 유명한 예언가였다. 서계가 살던 16세기는 우리 역사상 별들의 시대였다.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 하서 김인후,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 우계 성혼, 남명 조식 등 조선 유학사(儒學史)의 거장들이 일시에 배출되어, 성리(性理)를 궁구했다. 노수신·백인걸·유희춘임억령 등 선비의 기개를 떨친 이도 많았고, 최경창·백광훈·이달 등 시문의 대가도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북창 정렴, 토정 이지함, 격암 남사고 등은 신선의 세계를 드나들어 이채를 띠었다. 불가(佛家)에도 서산대..

答 李養久 - 西溪 李得胤

西溪先生文集卷之二 >書 答李養久 時發 ○戊申九月 秋夕便傳。緣勢未答。迨恨迨恨。霜寒不審廵候何如。老年悲秋之感。例多於少壯。而况今懷人之思兼之乎。尤增欝悒也。德胤。幸保舊操。未有新得。祗見聵聵。何容喙喙。但初秋間。掉脫塵冗。往棲落影山寺。僅月餘日。仍尋歡喜磐石。約與金庚黃戚輩。遊賞後穎高棲。則溪山淸絶之勝。雖謂山東第一可也。留宿數日。徘徊不忍去。若於此時。與主人翁共對此境界。則想添一格景象。而逖矣西土。奈如之何。然以看竹之高趣言之。固無妨於吾等之淸游。而薄領叢中。若得聞之。慙愧華山雲之句。恐其重發於高明也。病拙自見貴庄以來。尤厭世氛。略倣▦▦故事。謀卜於玉華曠▦。其爲明快灑落。固未敢望於仙庄。在此上流。水道之的源。分明迴抱淸露。在外之雜氣不入。宜乎晩節之所盤旋。故明春。欲營數間精舍。而連値凶歉。啼飢之患太甚。罔知攸措。左右其可以能賞此意。特助誅茅之淸債乎。鄙志之成不成。山契之參不參..

예설관련서적 목록

●율서집요(栗書輯要) 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후진들을 위하여 자신의 저서 중에서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엮은 책이다. 필사본. 2책.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제1책에는 경연일기(經筵日記) ·어록(語錄) ·연보(年譜) ·원향록(院享錄) ·김시습전(金時習傳) ·기자실기(箕子實記) ·동호문답(東湖問答), 제2책에는 어록 ·제가기술잡록(諸家記述雜錄)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증유응서치군설(贈柳應瑞治郡說) ·증홍생설(贈洪甥說) ·호송설(護松說) ·성학집요(聖學輯要) 등을 수록하였다. 책끝에 1744년(영조 20)에 쓴 이재(李縡)의 발문이 있다. ●의례경전통해보(儀禮經傳通解補) 조선 후기의 학자 한원진(韓元震)이 편찬한 예설서. 11권 7책. 목판본. 1742년(영조 18)에 간행되었다. 주희(朱..

호칭에 대하여

■ 호칭(互稱)에 대하여 고(考)는 ≪예기≫ 곡례(曲禮)에, “생전에는 부(父)라고 부르고, 사후에는 고(考)라고 부른다.” 하였는데, ≪설문(說文)≫에는 “고는 노(老)의 뜻이다.” 하고, ≪석명(釋名)≫에는 “고는 성(成)의 뜻이니, 성덕(成德)이 있음을 말한다.” 하였다. 비(妣)는 ≪이아(爾雅)≫의 주(註)에, “비(媲-결혼)의 뜻이니, 고(考)의 배필이다.” 하였다. 옹(翁-늙은이)은 ≪광아(廣雅)≫에 “옹은 아버지이다.” 하였다. 그리고 ≪사기(史記)≫에는, “나의 아버지 오옹(吾翁)은 바로 너의 아버지 약옹(若翁)이다.” 하였다. 공(公)은 아버지이다. ≪전국책(戰國策)≫에 의하면 “진진(陳軫)이 장차 위(魏)나라에 가려고 하니, 그 아들 진응(陳應)이 아버지(公)의 행차를 만류하였다.” 하..

암행어사(暗行御史)

암행어사(暗行御史)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관의 치적을 살피고, 백성의 질고를 실제로 조사하기 위하여 파견했던 임시 관직이다. 암행어사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4월 암행어사를 각 도(道)에 보내다”라고 기록된 1509년(중종 4)의 《중종실록》이다. 그러나 선조 때까지는 암행어사에 대한 비판이 강하여 별로 파견하지 못하다가, 인조 때부터 점차 제도화되었다. 암행어사는 보통 당하관(堂下官)으로 젊은 시종신(侍從臣 : 臺諫·言官·淸要職) 중에서 뽑았는데, 왕이 직접 임명하거나 의정부에서 왕의 명령을 받고 후보자를 선정하여 천거하면 왕이 선정하여 임명했다. 봉서(封書)· 사목(事目)· 마패(馬牌)· 유척(鍮尺) 등을 수여하였는데, 배명 즉시 집에 들르지 못하고 남대문을 나서야 뜯어보게 되었던 봉서..

고려 국자감시(高麗國子監試-조선의 성균시와 유사함)

[자료-고려 국자감시] ■ 고려 국자감시(高麗國子監試) 이는 곧 진사 시험인데 덕종(德宗)이 처음으로 설치하고 부(賦)와 6운(韻) 및 10운 시(詩)를 시험 쳤다. 그 후에는 이를 혹은 성균시(成均試)라고도 하고, 혹은 남성시(南省試)라고도 하였다. 충선왕이 국자감시를 폐지하였고, 충숙왕 4년(1317)에 구재(九齋)의 삭시(朔試 매월 초하룻날 실시)로 대신하였다. 충숙왕 7년에 이를 거자시(擧子試)라 하였다. 국자감시에서 뽑는 인원 수에는 제한이 없었다. 공민왕 17년에 왕이 경서에 정통한 자를 뽑아 시험관을 삼으려 했는데, 신돈은 감찰대부 손용(孫湧)을, 환자(宦者) 이강달(李剛達)은 판전교시사 이무방(李茂芳)과 권사복(權思復)을 추천하려고 하였다.공민왕이 이들이 다투는 것을 미워하여 말하기를 “국..

고려 사마방목에 대하여~~~

■ 고려사마방목 고려방목은 크게 예부시(禮部試), 국자감시(國子監試), 승보시(陞補試)로 나뉜다. 예부시는 조선조 대과(문과)에, 국자감시와 승보시는 사마시에 해당한다. 국자감시와 승보시는 조선조 사마시에 대응되는 것이 없으나, 억지로 비교하자면 진사시와 생원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 사마시는 조선조 사마시와 성격과 기능이 다르고, 어떤 의미에서는 승보시가 국자감시보다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엄격히 따지면 기능이 서로 다르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다.) 이에 비해 조선조 사마시는 그 위상이 생원시, 진사시, 문과로 체계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조와 상당히 다른 점이고, 일반인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현재 고려 예부시(문과)는 대체로 기본적인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견한잡록 1(遣閑雜錄) - 沈守慶隨筆集

■ 견한잡록 1(遣閑雜錄 ) 심수경(沈守慶) 지음 ● 조정의 과거를 말하면 거듭 장원한 이가 거의 없었으나, 정인지(鄭麟趾)는 급제와 중시(重試)에서 장원을 하였고, 남계영(南季瑛)은 생원시와 급제에서 장원하였으며, 이석형(李石亨)은 한 해에 생원시와 진사시 그리고 급제에서 장원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시에서도 모두 장원을 하였다. 김수온(金守溫)은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서 장원을 하였고, 김흔(金訢)은 진사시와 급제에서 장원하였다. 신종호(申從濩)는 진사시와 급제와 중시에서 장원을 하였고, 배맹후(裵孟厚)는 생원시와 진사시에서 장원을 하였다. 김천령(金千齡)은 진사시와 급제에서 장원을 하였고, 김극성(金克成)은 생원시와 급제에서 장원하였으며, 김구(金絿)는 생원시와 진사시에서 장원을 하였고..

坡州 高麗大殿에 모셔진 姓氏別不遷位

파주 高麗大殿에 모셔진 姓氏別不遷位 No 姓氏別 門 中 別 住 所 代表者 1 晋州姜氏 殷烈公派宗會 경남 진주시 옥봉남동 622 개경제 姜 昌 根 2 공목공파종회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2동 234-46 진산회관 4층 강 보 원 3 殷烈公派宗會 서울 동대문구 청량1동 미주(A) 4-1302 姜 漢 榮 4 通溪公派宗會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2동 234-46 진산회관 4층 姜 輔 熙 5 殷烈公后忠貞公派宗會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 156-7 姜 萬 在 6 載寧康氏 宗門安靖公派 宗親會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8번지 삼성빌딩 504호 康 禎 鐸 7 曲阜孔氏 孤山公 宗會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 822 신성A 102-1201 孔 馻 鉉 8 淸州郭氏 大宗會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37-26 삼일프라자 1022호 郭 중 영 9 綾..